“2005, ‘망년(忘年)’ 할 수 없는 이유”

평화뉴스
  • 입력 2006.01.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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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칼럼67] 김진국(대구경북인의협 공동대표)...
“황(黃)비어천가 불러대던 언론, 나라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회지도층”<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연거푸 이어지는 망년회에 세파에 찌든 몸을 내맡긴 채 한 해를 마감하는 모습은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올해도 변함없는 우리들의 일상 풍경입니다.

예년과 견주어 망년회 자리가 한결 조촐해지고 조금은 썰렁해 보일지라도 망년회는 망년회입니다. 많은 기대를 품고 시작했던 한 해가 안타깝게 실망으로 마무리되었다 할지라도 또 맞닥뜨리며 살아야 할 한 해에 대한 기대와 각오를 다지는 자리가 망년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손이 부끄러울 정도로 결실없는 한 해를 살았던 사람들도 당당하게 망년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망년회는 승자와 패자가 함께 하는, 반성과 격려와 다짐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나'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이기에 그리 부끄러울 것도 없고 그리 내세울 것도 없는, 그래서 한 해 동안 켜켜이 쌓여있던 앙금과 원망과 가슴 한 구석에 똬리 틀고 있던 분노까지도 훌훌 털어 내는 그런 자리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망년회만으로는 쉽게 털어 낼 수 없는 감정이 있습니다.
만신창이 몸이 된 채 사지를 흐느적거릴 정도로 술이 취해도 용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망년회의 계절로 접어들던 2,005년 12월의 어느 날을 누군가가 우리 과학의 국치일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는 언론의 국치일이라고도 했습니다. 그것 뿐 이겠습니까? 학문의 영역에 검찰을 끌어들임으로써 학문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학문의 국치일이었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여야 할 망년회 자리가 ꡒ맞춤형 줄기세포가 있네 없네ꡓ, ꡒ황우석 교수를 믿네 못믿네ꡓ로 다투며 너와 내가 갈가리 찢어진 갈등과 분열의 12월이기도 합니다.

실체도 없는 국익에 취해 헛된 포만감에 젖어 힘겹게 버티어 온 세월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는 12월입니다.
분노의 돌팔매를 피해 제각기 살 길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공모자들의 모습이 더 할 나위없이 측은해 보이는 12월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올 12월이 조금 길게 느껴질 뿐 여전히 공모자들의 당당한 모습은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지경이 되어서도 그들이 이처럼 당당하면서도 뻔뻔스럽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우리 국민들의 망각능력을 믿기 때문이겠지요. "요즘은 바빠서 황 교수 안 만났다"라고 내뱉은 황금박쥐 멤버의 말에서 박쥐근성이란 게 바로 이런 거로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참담한 배신과 환멸의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더 두려운 것은 우리 앞에 내던져 질 또 다른 한 해입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 하고 또 살아가야만 하는 한 해입니다. 우리 언론이 줄기세포를 신령 섬기듯이 펼친 한 판의 굿판은 온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들만큼의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신통력을 가졌던 줄기세포 허브의 약발이 떨어진 지금, 황(黃)비어천가를 불러대던 언론들은 이제 무슨 노래를 불러댈까요?

재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 뒤 너도나도 앞 다투어 해 뜨는 바닷가로 몰려가기 시작하면 '희망찬 새해' 라는 말과 함께 언론의 또 다른 굿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지면은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임하는 정당대표들의 출사표로 도배가 될 것이고. 우리는 그 정치가 환멸의 정치이며 배신의 정치인줄 뻔히 알면서 또 집단최면에 걸려들겠지요. 우리들만의 탁월한 망각능력도 되살아나면서....

망년회를 통해 한 해 묵은 것들 다 잊어버리고, 다 털어 내버리더라도 한 가지 사실은 꼭 기억해두었으면 합니다.
나라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은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늘 사회지도층이라 불려졌던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역사적 사실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것이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그리고 진정한 국익을 만들어 내는 힘은 ‘그들’ 만의 국익을 위해 희생만 당했을 뿐 그 국익을 한번도 나누어 받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

김진국(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신경과 전문의)

(이 글은, 2005년 12월 29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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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부터는 다섯번째 필진이 매주 목요일마다 지역과 세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2.8(목) 문혜선(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구지부장)
12.15(목) 송필경(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12.22(목) 이두옥(대구여성의전화.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12.29(목) 김진국(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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