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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신공, 거짓에 대한 불감증”
[홍승용 칼럼 22]...
“학계에 널리 퍼져 있는 베끼기, 제발 자기 글을 쓰시라”
2006년 01월 09일 (월) 11:27:03 평화뉴스 pnnews@pn.or.kr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논란의 와중에 배아줄기세포의 신화는 날아갔더라도 깊이 생각할 거리는 남아 있다. 서울대 조사위의 공식 발표가 곧 나오겠지만, 이미 논문조작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이 드러났다.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과학자로서의 황 교수에게는 별로 할 말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황 교수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그의 원천기술에 대한 팬들의 기대와 사랑도 식을 줄을 모른다.

거짓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어 뒷맛이 미묘하다. 이 불감증은 거짓이 정치판이나 전쟁터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연과학자의 데이터 조작에 맞먹는 인문과학자의 사기는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편의적 발췌번역을 포함한 자료들의 가위질과 짜깁기로 저서나 논문 전체를 도배하더라도, 인용했다는 사실이나마 성실히 밝히면 양반이다. 여기까지는 설혹 학문적 가치의 차원에서 비웃음을 살지언정 표절 비난에서는 면제된다. 문제는 아예 인용했다는 사실조차 밝히지 않고 통째로 블록 이동하여 자기 저서라고 거리낌 없이 내놓는 일들이 특히 대학교재들의 경우에 비일비재하다는 데에 있다.

표절에 무감각해지기 위한 훈련은 일찍부터 시작된다.
입시 공부에 찌들 수밖에 없는 고등학생까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 과제물이라는 것을 작성하기 시작하면, 남의 글을 고스란히 베끼는 것을 대개 당연시한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자료들 가운데 적당한 것들을 찾아내 필요한 대로 편집만 하면 대부분의 과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졸업논문을 쓰면서도 별 문제의식 없이 적절한 주제를 정하여 몇 가지 자료를 편집해내는 것이 관례화되고 있다.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표절 개념이 없다.
그래서 교수들이 표절신공을 잠시 발휘하여 두툼한 교과서를 뚝딱 만들어내 팔아먹고 연구 성과를 올려도 무서운 제자들의 눈초리를 전혀 의식할 필요 없다.

온갖 식언과 위선과 악의적 정보왜곡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제발 표절만은 하지 말자고 목소리 높이면 무슨 썰렁 개그 취급받을 것 같다. 그래도 학생들에게는 표절하지 말고 자기 글 쓰라고 가르치고 싶다. 자신의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남의 글을 아무 생각 없이 베끼는 데에 길들면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버릇도 함께 생긴다.

물론 “지배계급의 사상이 어느 시대에나 지배적인 사상”이라는 강력한 학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내 생각이라는 것이 남의 생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눈감을 수는 없다. 내 생각은 나 혼자만의 독자적인 작품이 아니라, 내가 접하는 온갖 대상들, 문제들, 남의 생각들 등과 부딪치고 얽히는 가운데 재구성해내는 것일 뿐이며, 기존의 생각들에서 약간 앞으로 혹은 빗나가게 한걸음이나 반걸음쯤 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내 생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정말 내 생각인지, 남이 심어놓은 바이러스나 악성코드와 뒤섞여 있는 것은 아닌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검증 도구인 개념들이나 감각들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수시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검증 자체도 주체적인 사고의 중요한 일부다. 그렇게 한걸음 혹은 반걸음이라도 나가는 부분 내지 빗나가는 부분이 없다면 사상의 발전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의 생각에 의지하는 버릇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옳든 그르든 대세에 동조하기, 통념과 선입견에 눈감고 매달리기, 보수언론의 보도 그대로 믿기, 국정 교과서 달달 외우기, 기존 이데올로기 떠받들기 등등. 이러한 사고방식은 삶의 자세와도 유착되어 있다.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기, 권위자 혹은 강자에게 의지하기, 비굴해지기, 약자 혹은 하급자 천시하기, 기회주의와 편의주의에 빠지기, 세상 좀 바꾸자는 사람들 혐오하기 등등.

우리의 인문학계는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들의 능력을 얼마나 길러내고 있는가? 사고하는 원천능력을 학자들 자신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 이런 물음은 데이터 조작이나 표절에 대한 도덕적 재단 혹은 지적소유권 시비 따위와 별도로 우리 사회의 해방수준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대중들 없이는 해방된 미래도 없다.
학생들이여,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제발 자기 글을 쓰시라. 짧아도 좋고 유치해도 좋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저 막강했던 황교수 팀이나 브릭에 드나드는 젊은 과학도들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려 애쓰는 우리들 모두가 그렇게 애쓰는 만큼 미래사회의 주역이다.

홍승용(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 독문학 교수)

홍승용 교수님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자랐으며, 서울사대 독어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대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문예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학이론], [부정변증법], [프리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등의 역서와 [루카치 리얼리즘론 연구], [저항의 아름다움], [변혁주체] 등의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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