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 힘찬 날개짓을 꿈꾸며"

평화뉴스
  • 입력 2006.01.20 08: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애인 지역공동체 박명애(52)신임대표..."장애인 스스로 밖으로 나와야”
'2살때 소아마비, 장애 두려워 방에만..질라라비 야학 다니며 40대에 새 삶�

장애인 지역공동체 박명애 대표
장애인 지역공동체 박명애 대표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예요. 장애인들이 내가 살아온 사회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살수 있도록 해놓는 것”

올해부터 [장애인 지역공동체] 대표를 맡은 박명애(52)씨.
그녀는 2시간이 넘는 길을 다니며, ‘질라라비’에서 공부했던 학생이기에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안다.

[장애인 지역공동체]는 장애인들이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2000년 3월 문을 열었다. '질라라비'는 그 일환으로 장애인들의 이러한 삶을 위해 [장애인 지역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 야간학교이다.

'질라라비’는 '닭의 시조'의 순수 우리말로 지금은 날지 못하지만 그 만큼 억셈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사라져 숨겨져 있던 날개를 펴고 멋지게 하늘을 날 질라라비 학생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대구시 동구 효목동 아양교 근처에 장애인 학교를 빌려 저녁에 20여명의 질라라비 학생들의 수업이 이뤄진다.

2명의 장애인이 실무적인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이곳에는 ‘질라라비’ 장애인 야간 학교 운영외에 장애인들이 혼자서 거주하는데 필요한 주거나 이동 등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질라라비 홈페이지 http://www.jangjigong.org/jillalabi/
질라라비 홈페이지 http://www.jangjigong.org/jillalabi/


박명애 대표는 4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이 곳을 알게 돼 ‘질라라비’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박대표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난 후, 하반신을 쓰지 못해 방에서만 지내야 했다.
박대표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장애를 가져 방에서만 지내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오히려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동생들이 하는 것을 보고 어깨 넘어로 한글을 깨우치고 젊은 시절의 대부분은 책을 통해 세상을 접했다.

30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1남1녀을 키우는 동안에도 밖을 나오지 않던 박명애씨.
그녀가 사회에 나오기로 결심한 것은 자식들 때문이였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가정환경조사를 하는데 부모 학력난에 쓸게 없는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질라라비를 알게 됐어요”

박대표는 질라라비를 안 뒤에도 그 곳에 입학하기까지 8개월을 고민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만큼 밖을 나가야 한다는 두려움도 컸기 때문이다.
“많은 장애인들이 집에서만 지내기를 강요받고 있었요. 환경이 받쳐주지도 않을 뿐더러 가족들도 나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예요”

그런 면에서 박대표는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박대표의 딸은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공부에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에디슨도 50살에 꿈을 이뤘는데 결코 늦은게 아니라”며 학교 가는길에 항상 함께 해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컴퓨터 관련이나 서류작업 같은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딸은 박대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다.

장애인 지역공동체 홈페이지 http://www.jangjigong.org/
장애인 지역공동체 홈페이지 http://www.jangjigong.org/
박대표는 “[장애인 지역 공동체]를 통해 시설이나 가정에서 갇혀 살고 있다 싶이 하는 장애인들이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고,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진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 지역 공동체]가 비영리 단체로서 후원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이런 일을 해 나가는데 재정적 어려움도 있다. 당장에 다른 장애인 특수학교 건물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장애인 지역공동체]가 곧 이사를 가야 할 형편에 놓였다. 현재 빌려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 특수학교가 법인이 되면서 다른 시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법 규정 때문이다. 그리고 자원봉사 해줄 선생님 구하기도 어렵고 차량지원을 받을 수 없어 오기가 불편해 공부를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박대표는 [장애인 지역공동체]의 이런 어려운점을 이미 다 알고 시작하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박대표는, "횡단보도에 서 있는 소방차안의 소방수가 차안에서 옷을 갈아 입는 것을 보면서 가면서 준비해 나가도 늦지 않을 수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대표는 장애인들에게 말했다.
“내가 사회에 나와서 깨달은 점은 운명이란 생각에 주어진 대로 산다면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바꿔야 하고 사회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거죠”

글.사진 평화뉴스 김정화 기자 pnsun@pn.or.kr / chobom@hanmail.net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