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의 추억"

평화뉴스
  • 입력 2006.01.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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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8] 이은정
...“코흘리개 장난감, 상처 싸매주던 손수건, 지금은...”

어릴 때부터 뭘 모으는 게 취미였던 나는 아직도 손수건을 모아 놓고 요것조것 번갈아 쓰기를 좋아한다. 나는 손발에 땀이 많은 체질이라서 한겨울에도 손수건은 필수다.

손수건이 가장 유용할 때는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 쓴 안경알을 닦을 때다. 손수건은 같은 무늬가 잘 없다. 특별한 행사나 기념일로 무늬를 삼은 손수건도 있고 구호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손수건도 있다. 가끔은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나만의 손수건을 만들기도 하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손수건은 아껴두었다가 선물로 주기도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여덟 살짜리 신입생의 표시는 왼쪽 가슴에 달린 하얀 손수건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지지리도 콧물 흘리는 아이가 많았는지.

물을 잘 먹고 바짝 잘 마르기도 하는 손수건은 장난감이었다.
물속에 손수건을 넣고 흔들어 대면 물결 따라 일렁이는 손수건이 하얀 치마를 입은 공주가 되기도 했다.
수건돌리기 놀이를 할 때 내 등 뒤에 손수건이 떨어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손수건으로 눈 가리고 하는 놀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너무나 재미있어서 행사 프로그램에 종종 넣곤 한다.

레이스가 달린 손수건은 성숙한 처녀의 상징이었다.
긴 생머리를 손수건으로 묶은 처녀들이 그렇게 순수하게 빛나 보일 수 없었는데 손수건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칼이 뺨에 흘러내리기라도 하면 그 부드러운 자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고등학생인 큰언니가 다리미로 레이스 달린 손수건을 다려서 살짝 향수까지 치는 걸 보면 너무나 부러웠다. 큰언니는 하얀 손수건에 색실로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는데 나는 가끔 큰언니의 손수건을 훔치기도 했다. 금색실로 포장을 한 손수건 세트는 스승의 날 선물용으로 그만이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손수건은, 좋아하는 남자 선배의 얼굴을 감싸서 최루탄 연기를 막아주기도 했다.
데모를 하다가 다치면 손수건으로 싸매 주곤 했다.

그런데 휴대용 휴지가 널리 쓰이면서 이제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잘 없는 것 같다.
웬만한 공중화장실에는 젖은 손 말리는 기계가 있거나 빳빳한 일회용 종이를 달아 놓기도 한다.
손수건이 들어가 있을 주머니에는 휴대폰이 꽂혀 있다. 손수건이나 수건, 걸레가 닦던 모든 것들을 휴지가 닦는다.
휴지는 필수품이 되었다. 어떤 이는 인도와 중국이 화장지를 우리처럼 쓰게 되면 머지않아 열대림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휴지의 표백은 환경과 관련한 주요 문제 중에 하나다.
휴지를 하얗게 하기 위해서 표백제 말고도 많은 화학약품과 많은 수처리제를 쓰는데, 그것은 환경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다.

내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한테도 무작정 휴지를 쓰는 어른을 볼 때이다.
나도 가끔 휴지로 아이 입을 닦아 주거나 콧물을 닦는데, 종종 휴지의 하얀 조각이 남거나 아이 입에 녹아 들어간다. 그럴 때마다 휴지에 묻은 표백제와 먼지를 생각하면서 가슴이 뜨끔해진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소변 볼 때도 휴지를 쓰는데 휴지에 남이 있는 표백제가 자궁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변기 옆에 소변용 수건을 달아놓고 딸아이와 같이 쓴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예쁜 손수건에 색실로 이름을 새겨 줄 것이다.
아이들과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재미있는 놀이도 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흐뭇한 어린 날을 기억하고 엄마의 사랑을 생각하길 바라면서.

이은정(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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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주말 에세이 1>- 이은정..."진이할매의 담배가게..." (2005.9.16)
<주말 에세이 2>- 이은정..."신문지로 싼 가을 들꽃다발" (2005.10.8)
<주말 에세이 3>- 김명희..."남편이 된 후배, 그도 나만큼 행복할까? (200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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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8>- 이은정..."손수건의 추억" (200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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