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지킨 사람들”

평화뉴스
  • 입력 2006.01.2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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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경...“인혁당의 올바른 재심과 장기수 북송을 바라며”

1. 믿음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로 충만해 있으며, 심지어는 그의 계율을 어긴 자에게까지도 똑같이 베풀므로, 계율을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예수는 믿었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듯이 우리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일생은 이른바 신약성서의 복음서가 전해 주듯이, 우리에게 이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완벽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예수에게서 믿음을 찾은 사람은 죽음에서 깨어나 천당에서 영원히 살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희망을 유태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과 국민에게 나누어주며,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에게 똑같이 베푼다고 굳게 믿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의 신자들은 그토록 열심히 그의 말씀을 세계 곳곳에 전파하였다.
로마로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자의 칼날을 피해 카타콤에서 피난을 겸한 예배장소로 이용하였다.
어둡고 침침한 깊은 땅 속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에서 그들은 광명과 생명과 평화와 안식을 누렸다.

그러다가 로마 당국에 체포된 그리스도인들은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밥이 될지언정 예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 소녀들조차도 성가를 부르며 죽어갔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이란 공포를 정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꺼이 죽는 것마저 할 수 있다"는 것을 로마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결국에는 로마의 엘리트들조차 명성과 부귀를 버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빈곤과 결핍을 택하게 만들었다.

2. 비극

일제의 강점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래서 이완용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식민지 역사라는 것이 매국노 이완용 한 사람에 수많은 애국자들이 대치하는 구도는 아니었다. 일본이 이룩한 근대화는 1905년 이전에 많은 조선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그 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변절시켰다. 일제 식민지 관리의 분할지배 전략에 이용당한 결과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조선인들이 식민독재에 부역했다.

일제 경찰의 약 40~50%는 한국인이었으며, 조선인들은 만주에서도 비교적 널리 활약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잔인함과 부패로 특별히 악명"을 떨쳤다. 조선의 독립군을 진압하는 데 이용된 기동대들은 일본 조직폭력배와 하층 한국인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특히 악랄하였다.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참상을 안다면 왜 일본이 그것을 은폐했고 또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남한 정부가 이를 방치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성적 노예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한다면 많은 한국여성들이 한국 남성들에 의해 동원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일본은 한국인끼리 싸우게 만듦으로써 한국의 민족정신을 파괴했고 그 결과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식민지 시기는 이처럼 아주 고통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어떤 기록도 입증할 수 없는 저항의 신화가 흠뻑 젖어 있기도 했다. 한국인 전체에게 공산주의자들의 지속적인 저항과 희생은 민족주의자들이 이따금 행한 폭탄투척보다 훨씬 더 강한 호소력이 있었다. 고문을 당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은 초췌해 보였으나 일본을 향한 그들의 단호하고 엄격한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3. 고난

2차대전이 끝난 뒤 강대국들이 한국을 분단한 것은 어떠한 역사적 정당성도 없었다.
만약 어떤 나라를 분단했어야 했다면 침략국인 독일처럼 일본을 분단했어야 했다. 냉전이 갖고 올 모든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분단들이야말로 한국을 분단한 이유였다. 그런 분단들은 전지구적 냉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일찍 한국에 찾아왔으며, 다른 모든 곳에서 냉전이 끝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1950년 내전의 원인은 다양했으며 많은 이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먼저 한국을 아무 생각 없이 갈라놓고 일제 식민지 정부기구를 그대로 재건한 미국과 그 기구에 봉직한 한국인들에게 책임이 있다. 또한 한국이 고대부터 지녀온 통합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인들이 그런 체제를 원하든 않든 간에 "사회주의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소련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리고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을 피할 수도 있었음에도 당시 한국 내부를 들여다보면 책임을 져야 할 인물들이 정말 많았다.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전쟁이 끝났을 때 한반도는 3년 간의 폭격으로 현대적인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남북한은 대량학살이 나라를 황폐하게 하고 1945년의 힘찬 기대를 악몽으로 바꾸어놓는 것을 목격했다. 진정한 비극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순전히 한국인들끼리 내부충돌 했다면 식민주의, 민족분단, 외국간섭 등으로 야기된 엄청난 긴장이 해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극은 이 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전의 현상으로 복구되었을 뿐이며, 오직 휴전만이 평화를 유지했을 뿐이다. 바로 지금까지 긴장과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4.양심

미국은 남한을 지배하면서 반공을 외치는 자면 과거의 어떠한 죄악도 묻지 않았다.
남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익으로 돌아선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친일 협력자들이 설치는 것에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위당 정인보는 미군정 당국자에게 공산주의자들은 이북의 술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반일애국의 기억 때문에 사람들을 사로잡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아수라장 같은 내란을 치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좌익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남한 당국은 그들을 간첩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일제 잔재를 청산한 북한 정부에 대한 정치적 충성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간수들은 전향서를 받아내려고 그들을 처형하겠다고 위협하고 고문했으며, 심지어는 그들에게 더욱 심한 압박을 가하려고 가족까지 처형한 예도 있었다.

그래도 믿음을 버리지 않자 그들을 아주 작은 독방에 몇 십 년 동안이나 가두어 놓았다.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도 친척을 만나는 것도 혹은 일체의 글읽기도 금지 당한 채 툭하면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그들은 감방에서 겨우 기아를 면할 정도의 식사만으로도 용케 버티며 스스로의 '양심'을 지켜내었다. 아마 예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로마의 법을 어기고 카타콤에서 박해를 받은 그리스도인들 못지 않게 그들의 감방 생활은 처절하였다.

김선명씨는 29세에 감옥에 들어가 끝까지 전향을 하지 않아서 73세에 나왔는데 그래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복역한 정치범이 된 것이다. 최석기, 박융서, 손윤규 씨는 중앙정보부와 법무부가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전향공작 과정에서 폭력전과자를 활용한 상습폭력과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이것은 식민지 시대에 반항자의 사상을 통제하고 전향시키려는 일본식 수법들의 악랄한 잔재였다.
이런 짓을 저지른 정권한테 우리가 과연 '민주주의'라는 말로써 위엄을 부여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5. 송환

어느 사회에서나 민주주의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선물이나 정치체제가 아니라 한 발짝의 전진을 위해서도 싸워 쟁취해야 할 그 무엇인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의미가 있다. 법과 제도와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미덕이다.

수많은 양심들이 수십 년에 걸친 고난의 희생을 했기에 남한은 이제 민주주의의 우방들이 역겹게 생각하지 않는 정치를 하게 되었고, 그 많은 양심 투쟁이 너무나 길고 험난했기에 우리 시대에 대한민국만큼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는 나라는 없을지도 모른다.

올해는 인혁당 사건의 올바른 재심과 더불어, 아직 생존한 장기수 분들의 의지에 따라 북송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높이고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더욱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용단이 될 것이다.

[시민사회 칼럼69]
송필경 (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이 글은, 2006년 1월 19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평화뉴스>는,
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시민사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2005년 11월부터는 다섯번째 필진이 매주 목요일마다 지역과 세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6(금) 문혜선(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구지부장)
1.19(목) 송필경(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1.26(목) 이두옥(대구여성의전화.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2.2(목) 김진국(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평화뉴스 www.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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