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창밖, 봄 햇볕도 행복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6.03.3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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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조윤숙...
"세상에 고마운 사람들, 하늘도 나무도 바람도 아름답다"


2주전에 평화뉴스에서 ‘주말 에세이’ 원고청탁을 받고 난 후부터 나의 일상들은 모두 주말 에세이의 소재가 되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 내가 만나는 사람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사회가 변해가고 있는 것들에 민감해하면서 2주를 보냈다.

하루를 마치면 컴퓨터에 앉아 일기를 쓰듯이 글을 적었는데 마무리 된 글이 하나도 없다. 나는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글로 잘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욕구가 많고, 나의 꿈이 소설가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정말 못 쓴다. 원고청탁이 와서 쓰는 글 뿐만 아니라, 보도자료나 성명서를 쓰는 것도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이다.

2주동안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나는 행복하였다. 내가 느끼는 것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소중하고, 하늘도 나무도 산도 바람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의 삶을 외면하면서 무디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도 소중하게 느끼면서 사는 것이 나에겐 큰 행복이었다.


“엄마처럼 옷을 사 주신 선생님”...

지난 주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옷집에 와 있는데 집에 가는길에 들리라고 하셨다. 옷집을 가니 이미 상가들은 불이 꺼져 있었으며 문을 닫을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옷가게 주인과 선생님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선생님은 봄에 강의할 일도 많은데 옷을 사주고 싶다면서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쇼핑을 나온 어린아이처럼 분홍색 블라우스를 고르고 쟈켓을 골랐다.
선생님은 많이 사주고 싶으시다면서 마음껏 고르라고 하셔서 바지도 사고 티셔츠도 샀다.
옷을 한아름 안고 옷집을 나오는데 나는 옷을 안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안고 나오는 것 같은 행복을 느꼈다.

어릴때부터 나는 혼자 결정하고 독립적으로 살아야만 했다.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5남매의 넷째로서 가정에서는 있는 둥, 없는 둥 살았으며 아프지도 않았고 특별히 가족들 속을 썩이지도 않으며 고만고만하게 그냥 살았다. 청소년기에는 엄마랑 같이 옷집에 가서 옷을 사는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오늘은 엄마랑 같이 마음껏 옷을 사는 기분이었으며, 든든하고 행복하였다.


“같은 남자로서 미안하다며 내게 사과한 어느 남자”...

지난 주말에는 천안에서 열린 코칭 교육을 다녀왔다.
교육생 중에 대구출신의 남자가 있었는데 내가 교육 중 예전에 남자에 대한 분노가 많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남자는 나에게 남자에 대한 분노가 왜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여성의전화>에 일하면서 가해자로 접한 사람들에게 분노할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 남자는 같은 남자로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그때 나는 대단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내가 남자에 대한 분노에 대해 이야기 했을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사고를 버려라! 아직까지 피해의식을 가지고 사느냐!는 반응과 이해를 한다는 반응 두가지였는데, 같은 남자로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남자로서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의 딸과 아들에게는 성역할 고정관념 없이 자유롭게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왜 여성운동을 하게 되었는지, 여성의전화는 어떤 단체인지 물었으며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데 소명을 가지고 사회 변화를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이 대단해 보인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여성운동을 시작할때부터 지금까지 운동을 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TV에서 여성단체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너무 나서지 마라는 염려와 주의의 전화를 하신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의 운동을 이해해 주지는 않아도 비난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삶의 고통과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을 지지 받으면서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얼었던 마음을 녹이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한순간 나의 얼었던 마음이 녹아지는 경험을 하였으며 세상을 용서하고 세상과 화해되는 느낌을 받았다.


“10년지기 같은 1년된 친구”...

며칠 전에 1년동안 외국에 있다가 귀국한 친구가 있어 1년전 그 친구를 송별식을 했던 그 멤버들이 모여 환영식을 하였다. 우리는 1년동안 만나지 않았어도 어제 만난 친구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친구는 원래 워낙 좋은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 같았다. 우리들은 나이 차이가 고만고만 하긴 했지만 10년동안 존칭을 깍듯이 사용하며 예의를 지켰는데 그 친구가 제안할 것이 있다고 하였다.

이제 서로 말을 놓고 존칭을 빼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제일 나이 어린 친구는 ‘내가 제일 좋네!’하면서 친구가 생겨서 좋긴 하지만 오빠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있어서는 선배같고 멘토같고 든든한 후원자 같은 느낌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친구란 참 특별한 존재인데 새로운 친구가 또 하나 생긴 것이 너무 반가웠다.


“병원 소개해서 가는 사람 못 봤다며 시간을 내 같이 가자는 친구”

성대결절이 생겼다.
누구보다도 건강에 자신있었는데 작년 가을부터 기침이 나고 목소리가 쉬어지고 목이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사무실 근처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어 내과에 들렀더니 이비인후과에 가라고 하였다.
이비인후과가 어디있지? 하면서 기침을 하면서 점점 쉬어지는 목소리와 친해지면서 그냥 지냈다.

작년 연말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 출장을 갔다가 목이 너무 아프고 기침이 나서 잠깐 시간을 내어 연합 사무실 근처의 이비인후과 병원에 갔다. 의사는 나에게 성대결절이 생겼으며, 위산이 역류해서 목을 간질거려 기침도 나는 거라면서 성대결절이 조금만 더 심해지면 전신마취해서 수술을 해야 되니 조심하라고 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어주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나? 내가 푹 쉴수 있나? 내가 말을 하지 않을수 있나?
나는 의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는 대구 사람이어서 이제 병원에 오지 못하니 약을 많이 지워달라고 했다. 약을 한 뭉큼 받아들고 대구에 왔다. 대구에 와서도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그냥 스트레스 받고, 쉬지도 않고, 말을 많이 하고, 캠페인 하면서 구호 크게 외치면서 살았다.

목소리는 점점 갈라지고 쉬어지고 있었으며 강의를 조금만 해도 그날은 목소리를 전혀 쓸수가 없을 정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친구랑 통화하는데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물어 성대결절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 친구는 병원에는 갔느냐며,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강의를 한 날 저녁에는 목이 잘 쉰다면서 목이 좋은 날도 많다고 하니 아침에 통화해도 그 목소리면 심각하다며 잘 아는 이비인후과가 있다고 했다. 병원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 병원 소개해서 가는 사람 못 봤다며 시간을 내어서 같이 가자고 했다. 세상에나~~ 아프다고 병원에 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지만 병원에 같이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어제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서 언제 병원에 갈수 있느냐면서 병원에 예약을 하겠다고 했다.


“언니 같은 쉼터 이모들”...

작년부터 쉼터에 입소해 있는 가정폭력피해자들과 함께 집단상담을 하고 싶었다.
기회가 되어 어제부터 6주동안 집단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쉼터의 이모들은(쉼터에서는 입소자를 이모라고 부른다) 너무나도 밝고 사랑스럽고 이쁜 사람들이었다. 사람을 꽃으로도 때릴수 없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이쁜 이모들을 남편들이 구타를 하고 학대를 할까? 아이들을 데리고 또는 아이들을 놔두고 집을 나온 이모들의 마음은 오죽 힘들까? 나는 이모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우주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면서 재미있고 즐겁게 집단상담을 하고 난 후 쉼터에서 일하는 활동가랑 술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활동가는 여성의전화에서 와서 너무 행복하며, 많은 것을 알아간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으냐고 했더니 세상과 여성의전화는 정 반대라는 것이었다.

세상에서는 여자이기 때문에 착해야 하고 순종적이어야 하고 자신을 억압하면서 살았던 부분들이 여성의전화에 와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도 수용이 되고, 세상에서 비난받던 것들이 여기에서는 수용이 되고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스러워 지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사람을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수용되고 이해받는 부분들이 좋다고 하였다.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많지만 우리가 하는 운동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행복해하면서 사랑과 행복에 도취되어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받은 많은 사랑들...사람들과 더 많이 나누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여성의전화>에 온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성학대학원에 입학하던 25살부터 여성의전화에서 회원활동을 하였다.
그때 나는 분기탱천하였다. 남자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해 분노가 가득하였다. 가정폭력 피해 내담자를 보면 왜 맞고 사느냐고, 왜 이혼하지 않느냐고 했으며, 성폭력 피해 내담자들에게는 왜 고소하지 않느냐고 강요하였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점점 더 살아보니 왜 그들이 이혼을 하지 못하는지, 왜 그들이 고소를 하지 못하는지 점점 이해가 되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자신의 욕구를 찾아나가고, 자신의 힘을 기르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성주의 정체성 발달단계의 빠져있음, 새겨둠에서 이제 점점 참여단계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옷을 사준 그 선생님은 엄마 같다.
코칭교육에서 만난 그 분은 아빠 같다.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한 친구는 오빠 같다.
쉼터 이모들은 언니같고 쉼터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동생같다.
친구처럼 지내자고 하는 친구는 절친한 10년지기 친구같다.

원가족만 가족인가?
나에게 있어서 친구도 새로운 가족이고 선배들도 새로운 가족이고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들도 나에게는 새로운 가족이다. 여성의전화도 나에게는 든든한 울타리이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 창밖을 보는데 그냥 내가 버스 의자에 앉아 있고 밖의 햇볕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나의 삶이 이렇게 점점 행복해지고 있음에 감사한다.
삶이 고통스럽고 아프기도 하지만 또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들을 많이 느끼면서 나는 그렇게 소박하게 살고 싶다.
내가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들을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많이 나누면서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주말 에세이 11]
조윤숙(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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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주말 에세이 1>- 이은정..."진이할매의 담배가게..." (2005.9.16)
<주말 에세이 2>- 이은정..."신문지로 싼 가을 들꽃다발" (2005.10.8)
<주말 에세이 3>- 김명희..."남편이 된 후배, 그도 나만큼 행복할까? (2005.10.29)
<주말 에세이 4>- 이은정..."사랑 큰 농사꾼 시어머니..." (2005.11.8)
<주말 에세이 5>- 차정옥..."당신은 약속시간을 잘 지키시나요?" (2005.11.26)
<주말 에세이 6>- 정혜진..."난민의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며..." (2005.12.10)
<주말 에세이 7>- 이춘희..."말구유에서 태어난 '홈 리스' 아기 예수" (2005.12.24)
<주말 에세이 8>- 이은정..."손수건의 추억" (2006.1.21)
<주말 에세이 9>- 이진이..."김광석, 서릿발 같은 청춘은 늘 아팠다" (2006.1.27)
<주말 에세이 10>- 이은임..."수요일 밤의 아름다운 전화" (200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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