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관행
“젊은 기자들이 바꿔야”

평화뉴스
  • 입력 2004.03.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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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와 접대,인사청탁, 제식구 감싸기까지...
언론계 잘못된 관행, 스스로 개혁해야

총선이 한달 반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천경쟁과 얼굴 알리기가 한창인 요즘. 대구지역에서 출마할 예정인 모 정당인측이 기자들에게 촌지를 돌렸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지난 20일 금요일. 이 정당인측에서는 기자 간담회를 마친 뒤 돈봉투를 하나씩 나눠줬다는 것이다. 다행히, 기자들이 이 돈봉투를 모두 돌려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물론 모두 돌려줬겠지만, 아직까지 기자에게 돈을 건네는 정치인이 있고, 그 정치인이 그 자리에서 무안당하지 않은 것 만으로도 ‘반성의 여지’는 충분하다.

“촌지와 접대”, 사라지지 않는 언론계의 관행


지난 2월 초. 대구지역의 한 경찰 간부가 모경찰서 출입기자들에게 돈봉투를 돌린 일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취재하던 평화뉴스 기자에게 모 일간지 어느 젊은 기자가 던진 말이다. “이런 거 보도되면 기자들이 피해보는거 아시죠?”
물론, 이른 바 ‘촌지 기사’로 상당수의 깨끗한 기자들도 ‘기자들은 다 그럴꺼야’라는 식의 멍에를 써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촌지 소문’에 연루된 기자라면 먼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아직까지 비교적 ‘젊은 기자’로 불리는 그였기에 놀라움이 더욱 컸다.
어쩌면, ‘언론계 촌지’를 문제삼는 기자가 오히려 더 바보스러울 지도 모른다. 그런 내용이 지역의 주요 일간지에 보도된 것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계의 촌지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구지역에서 15년이상 취재활동을 한 기자라면 ‘월사금’이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심지어 지난 ’90년대 중반까지도 일부 규모 큰 관공서에서는 출입기자들에게 매월 정기적으로 촌지를 주었다”고 한 40대 기자는 고백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

촌지만큼이나 기자의 도덕불감증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접대문화’다. 흔히 말하는 ‘비싼 술집’에서 접대받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외국까지 다녀오는 ‘관광성 접대’는 반드시 짚어봐야 할 문제다. 태풍 ‘루사’가 몰아쳤던 지난 2002년 여름에는 지역 모대학의 ‘해외 자매대학 견학’이라는 이유로 일부 출입기자들이 며칠동안 외국을 다녀왔고, 지난 해에는 지역의 한 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에 출입기자가 따라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그 해외연수가 ‘낭비성 연수’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뒷말이 더 많았다.
기관이나 단체가 더 많은 홍보를 위해 기자들에게 접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기자들이 받는 접대문화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론의 비판’에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우리사회의 잘못된 ‘고비용 접대문화’를 계속 부추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거창한 이유를 뒤로 하더라도, 적어도 ‘공직자의 접대문화’를 비판하는 언론이 스스로 ‘접대문화의 주인공’이 되어서야 독자들 앞에 어떻게 당당할 수 있을까.

인사청탁, 제식구 감싸기...스스로 무너진 ‘무관의 제왕’


“인사철이 되면 기자들 청탁에 난감할 때가 많지요. 안 들어 줄수도 없고, 들어주자니 딴 사람을 밀어내야 하고...” 경상북도지역에서 장학사를 지냈던 한 교육공무원의 말이다. 이 공무원은 교원인사철에 ‘000기자 부탁’이라는 메모를 여러번 받았다고 한다. “기자 부탁을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공무원이 잘 있겠어요?”
또 다른 한 행정공무원은 “기자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공무원도 있다”고 말했다. 말단 공무원은 기관장과 마주 앉을 기회도 잘 없지만, 출입기자들은 서스럼없이 기관장을 만나 이런 저런 부탁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자의 힘’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인사철만 되면 언론사 주위를 맴도는 공무원이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이쯤되면 ‘무관의 제왕’이라는 기자의 힘이 ‘정당하지 못한 일’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없을리 없다.

“제식구 감싸기”. 어떤 사건을 취재하다 그 사건에 기자나 언론인이 연루돼 있으면 피곤해진 기억이 있다. 동료 언론사나 언론인의 잘못을 다른 사건들처럼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쓰기가 좀 그렇다”는 식의 편집을 책임지는 ‘데스크’ 의 입장이 작용하기도 한다.
또, 사안이 큰 비리 사건에 연루된 기자가 있더라도 ‘ㅇ모씨’처럼 성씨조차 붙는 경우가 드물다. 왠만하면 알 수 있는 ‘좁은 언론계’에 대한 배려도 있겠지만, 같은 언론인으로서 이른 바 ‘피해가는’ 경우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경찰, 공무원이 자체 감사에서 ‘징계수위’를 조절하면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제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을 쏟아낸다. 언론계가 이런 스스로의 논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은 젊은 기자들의 몫”


오랜 관행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것을 고치기 위한 ‘스스로의 자정 노력’은 끝없이 계속될 때 조금씩 그 관행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젊은 기자들’이다. 이미 오랜 관행에 젖은 중견기자들은 뒤로 하더라도, 아직 때묻지 않은 젊은 기자들만큼은 스스로의 변화에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특히, 젊은 기자들은 지역사회의 최일선에서 세상 이야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젊은 기자들만큼은 언론계의 잘못된 관행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개혁. 그것은 언론계의 오랜 관행을 하나씩 바꾸어 내는데서 시작된다. ‘보수적’, ‘폐쇄적’이라는 우리 언론계의 거듭나기. 결국에는 젊은 기자들의 어깨에, 작은 다짐에 달려있다. 우리 언론이 정말 ‘사랑받는 언론’, ‘당당한 기자’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2.28. 평화뉴스 창간일에
편집장 유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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