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아젠다는 철저하게 죽었다”

평화뉴스
  • 입력 2006.06.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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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시사칼럼]..."5.31지방선거 결산"
"'저주의 굿판' 같은 선거, 시민사회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선거가 끝났다. 잔치라기보다는 난리였던, 축제라기보다는 저주의 굿판이라고 할 법한 선거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했던, 5.31 지방선거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것이다.

어쨌든 홀가분하다. 지역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선택하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토대인, 그래서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선거판이 광풍에 압도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곤혹스러웠는데, 최소한 이제 그런 광풍은 수그러들 터이니 좀 지낼 만해지지 않겠는가?

그렇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광기를 털고, 광풍을 씻어내고, 당선자를 찍은 유권자든, 낙선자를 찍은 유권자든, 그리고 당선자든 낙선자든, 이제는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음 선거가 좀 더 나은 선거로 치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원해야 할 국가는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겠기에, 이번 선거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결산은 필요해 보인다. 몇 가지만 짚어 보도록 하자.


“중앙정치 대리전이 된 5.31지방선거...지역사회 아젠다는 철저하게 죽었다”

첫째, 말이 지역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였지, 지역사회의 현안과 아젠다는 철저하게 죽고 중앙당과 중앙무대 정치인들의 대리전이 된 선거였다. 내년 말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이니, 정권 심판론이니 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정당 공천에서부터 대통령후보와 중앙당에 충성할 인물을 내보냈지 지역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후보를 찾지 않았다. 중앙집권-집중의 체제를 지난 수년 동안 그토록 바로잡으려 애를 써 왔지만, 별 성과도 없이 거꾸로 각 지방들이 중앙에 강력하게 예속되는 계기가 되고 만 선거였다. 분명 지방선거였음에도, 역설적으로 지방의 실종을 확인하고 만, 막 싹트기 시작한 지역사회의 내생적-혁신적 발전 가능성마저도 철저하게 짓밟히고 만, 그런 지방선거였던 것이다.

둘째, 지방만 죽인 선거가 아니고, 각 지방의 민주주의도 사실상 짓밟힌 선거로 귀결되었다. 전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자치단체장뿐만 아니라 그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 의원들도 한나라당의 수중에 고스란히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사회 수준에서는 행정부와 그를 견제할 입법부 모두를 같은 당이 장악하고 만 것이다. 견제와 균형이 정치제도의 수준에서는 작동할 수 있는 근거를 잃어버린 것이다.

셋째, 정책은 실종되고 감정싸움만 난무한 선거였다. 정권심판론이 뒤덮기 시작하면서 벌써부터 정책과 인물 대결은 물건너가는 듯 보였지만, 특히 박근혜대표 피습 사건 이후 선거판은 ‘묻지마 선거’로 흘렀다. 인물 됨됨이도, 후보가 4년 동안 갈고 닦은 정책도, 비전도, 공약도 전혀 쓸데없는 것들로 길가에 버려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책 선거판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메니페스토운동이란 것도 시작해 봤지만,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집권여당 실패의 반사이익, 박근혜 피습의 표몰림...한나라당 승리, 정책검증의 결과라 볼 수 없다”

선거 결과와 관련하여 각 정당들에 대해서도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첫째는 압승한 한나라당이다. 지금쯤 천하를 얻은 것 같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한나라당에게는, 무엇보다도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압승의 내용이 그리 자랑스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냉정하게 따져보면 집권 여당의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이요, 박근혜대표 피습사건에 따른 표몰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더욱 냉정하게 해석해 보면, 한나라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열린우리당의 패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한나라당의 적극적인 정책 제시와 그에 대한 검증의 결과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나라당은 제 1야당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늘 반대하고 발목만 잡는 야당이 아니라, 국정의 한 당사자로 적극 참여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발목잡고 저항해서 상대를 넘어지고 실패하게 만들기는 쉬워도, 나의 정책과 자산으로 뭔가를 이뤄내기는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만에 빠지기보다는 압승의 숨은 뜻을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좀더 성숙한 야당, 어른스러운 야당,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를 고민하는 야당으로 국민의 가슴 속을 파고들지 않으면, 어제 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 쏠렸던 표심이 언제 또다시 밀물처럼 빠져 나갈지 모를 일인 것이다.


“열린우리당, 문제는 집권 여당의 무능...선거에 임하는 자세와 방법 모두에서 패배했다”

둘째는 완패한 열린우리당이다. 열린우리당에게는 열린우리당이 단지 선거 결과에서만 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선거에 임한 자세, 선거운동 방법에서도 졌다. 선거 과정 전반에서, 선거 과정 그 어느 곳에서도 집권 여당으로서 의연하면서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리 채이고 저리 치이면서 열린우리당은 어느 새 자존심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집권 여당으로서의 최소한의 체통도 지키지 못했다. 마치 선거를 포기한 양 읍소하고 싹쓸이만은 막아달라고 빌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 직전에 집안싸움하고, 차마 봐주기 힘들 정도로 처절한 모습이었다. 저런 꼴로 어떻게 1년 반이나 되는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책임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참패를 선거 게임에서의 패배로 해석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야당의 발목잡기를 탓하거나 유권자를 원망하는 것도 크게 빗나간 것이다. 문제는 국민이 대통령과 의회 권력 모두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혹은 지난 2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 집권 여당의 무능에 있었음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그간의 기득권을 모두 버린다는 각오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원칙과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모적 논란, 독선, 잘난 척, 말뿐인 개혁 등, 그동안 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게 퍼부어졌던 비판의 목록들을 깊이깊이 새김질하면서 하나하나 청산해 가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 중심의 정책, 겸손하고 국민을 떠받드는 자세, 통합의 리더십, 감동을 주는 정치를, 뼈를 깎는 심정으로 고민하고 머리맞대어 찾아야 할 것이다.


“기대에 못미친 민주노동당...지역당.지역주의에 그친 민주.국중당”

셋째는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이번 선거에서 많은 교훈을 얻지 않으면 미래를 가질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울산에서의 패배도 뼈아프지만, 정당득표율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집권 여당의 실패한 개혁, 말뿐인 개혁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에 기대기보다는 한나라당으로 흡수된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그 답은 우선 민주노동당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사표론 때문이라는 주장도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그동안 노동자와 농민, 서민에게 얼마나 믿음을 주었는지, 혹여 그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심어주진 않았는지도 겸허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 그 여부에 민주노동당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넷째는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이다.
먼저 민주당은 호남에서 2개 광역단체장을 당선시켜 부활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기뻐할지는 몰라도 철저하게 지역당으로 갇힌 모습을 보여 준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은 선거운동 때도 거의 호남에 집중하여 호남 텃밭만이라도 지키자는 전략으로 일관하였다. 사실상 스스로 지역당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서울광역시장 후보를 냈지만, 그 과정도 꼴불견이었다. 열린우리당 후보의 당선은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디 공당으로서 할 일인가? 원한과 저주와 분열을 재생산하는, 그것을 통해서 한 지역만이라도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정치관은 과거에 대한 집착이요, 미래에 대한 반역이 아닐 수 없다.

국민중심당의 경우는, 창당 자체부터 더더욱 노골적으로 구시대 유물일 뿐인 지역주의에 기댄 낡은 시도였다고 해야 옳다.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낡은 시도가 성공할 리 만무하다. 설령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길임은 자명한 이치다.


“유권자, 공약과 인물 냉철하게 비교했나?...젊은 세대의 무관심, 참여 없이는 미래도 없다”

끝으로 유권자 얘기도 좀 해 보자. 선거는 누구보다도 유권자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선거일은 유권자가 4년 중에 주인 행세를 제대로 하는 단 하루, 즉 유권자의 날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선거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유권자의 수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유권자에게도 문제가 없지 않았다.

첫째는 지나칠 정도로 비본질적인 것에 휘둘리고 분위기와 감정에 지나치게 휩싸였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항상 혈연과 학연이 판치고 지역감정이 선거 판을 휘저어 놓았던 것이 우리나라 선거 역사였지만, 이번 선거 역시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권 심판론과 박근혜대표 피습 사건이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과 냉철한 인물 비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후보의 인물 됨됨이도 정책도 메니페스토도 의미없었다. TV 후보 토론도, 애써 만든 선거 공보물도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래서야 누가 4년 뒤 선거를 위해 차분하게 정책을 개발하고 준비하는 일에 투자하겠는가? 선거 앞두고 이런 저런 이벤트와 사건과 선동과 지역주의에 기대어 당선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비용도 적게 들고 효과도 확실하다면, 누군들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겠는가? 그런 잘못된 관행을 정지시킬 이는 유일하게 유권자뿐인데 유권자의 그런 지혜는 이번 선거에서도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이다.

특별히 젊은 유권자의 정치 무관심과 투표 불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우리 지역사회와 국가에 대해 관심갖는 것,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건설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 층의 후배에 대해 무한 책임의식을 갖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덕목들이다. 그 신성한 일에 등 돌리고 앉은 젊은 층의 자세는, 정치가 극도의 불신 대상이 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잘못된 일이고 우려스러운 일이다. 젊은 세대의 참여 없이는 정치의 미래도 국가의 장래도 결코 밝을 수 없음을 젊은 세대는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무기력한 시민사회...보다 명확한 비전과 방향 감각을 찾아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도 이번 선거에서는 매우 무기력해 보였다.
선거의 의제를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했고, 선거 국면을 활용해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 내지도 못했으며, 또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의미있는 활동을 전개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필자는, 문제는 더 본질적인 데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5.31 지방선거에서의 무기력증을 반성하는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지금의 국가-시장-시민사회 구도 하에서, 또 지금 우리 사회가 통과하고 있는 거대한 역사적 전환의 길목에서, 시민사회단체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과제와 국면적 과제, 국가적 과제와 지역사회적 과제에 대한 보다 명확한 비전과 방향감각을 찾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아울러 앞서 지적했듯이 지역사회 수준에서 민주주의의 장치가 실종된 이번 선거 이후, 지역 행정부와 의회 모두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중차대한 몫이 시민사회단체에게로 넘어 왔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역 시민사회의 의식.문화 개혁과 지역 정치권의 민주적 개혁 모두를 감당해야 하는 시민사회단체 본연의 역할이 더욱 무거워진 것이다.

[홍덕률시사칼럼 65]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대학교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재단에 의해 해직(1993)됐다가 임시이사 파견 뒤 1년 만에 복직되기도 했습니다.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과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부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분권과 혁신’을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또, 대구KBS <화요진단>과 영남일보를 비롯해 신문과 방송에서 시사칼럼을 쓰거나 토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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