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죽음의 굿판’ -한미FTA"

평화뉴스
  • 입력 2006.07.3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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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보건.의료] 김진국(인의협)...
“광우병에 치솟는 약값, 누구를 위한 협상인가”

한미 FTA 2차 협상이 결렬되고 난 뒤, 한 인터넷 신문은 “희망이 보인다”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본 희망은 온 국민의 강력한 저항의지였을 뿐,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한 희망이라거나 정부의 태도가 변한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2차 협상이 결렬된 것은 의약품.의료기기 협상 분과에서 미국 측이 국내약가조정제도를 트집 잡은 것이 빌미가 된 것인데, 정작 한미 FTA에 구걸하다시피 매달리고 있는 것이 한국 정부란 점에서 2차 협상이 결렬된 것은 미국 측에서 볼 때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결정이다.

약가 조정제도 철폐는 FTA 협상 선결과제로 한국 정부가 이미 수용한 상태였고, 이는 2차 협상 차 한국에 온 미국의 케틀러 대표가 확인까지 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한국 정부가 협상의제로 들고 나온 것이 미국 측은 못마땅했을 수도 있고, 더 이상 협상을 진행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9월에 예정되어 있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손쉽게,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도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제약산업은 몰락하고 약값는 하늘을 치를 듯 치솟게 된다”

지금 보건복지부가 약가조정제도는 주권국가의 정책과 제도로써 한미 FTA 협상 대상이 아니라며 강경한 태도를 내 비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태도에 진정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약가와 관련된 미국 측의 요구가 약품의 보험등재방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내 약가결정과정에서 정부가 배제된 미국의 제약업계가 참여하는 독립적 이의신청기구 설치를 요구하고 있고, 특허기간의 연장을 통해 복제품 생산에만 거의 의존해왔던 한국제약업계 전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내용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의료체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의제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정부는 미국 측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 지,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협상전략은 무엇인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약품의 보험등재방식에 대해서는 미국 측이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미국의 나머지 요구사항을 한국 정부가 다 들어주고 나면 한국의 제약산업은 몰락하게 되고 약값은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게 된다.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검역 완화? 독극물이나 다름없는 밥상을 받게 될 위기”

또 한가지, 이번 2차 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또한 4대 선결과제 중의 하나이긴 하였지만, 미국산 쇠고기 중에서 한국 정부가 수입을 허용한 것은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였다. 광우병 감염지역에서 사육된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도 광우병 감염 우려가 높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공인된 사실이기 때문에 협상 대상이 될 수조차 없었으나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 축산업계는 이것도 모자라 광우병 위험부위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의 전량을 수입하도록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번 협상에서 논의된 것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허용 범위가 아니라 한국의 수입 농축산물의 검역제도였다. 우회적인 전략인 셈이다. 미국의 요구는 한국의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검역기준이나 검역절차, 수입통관절차를 완화하거나 간소화해달라는 것이고, 원산지나 유전자조작 표시여부를 의무화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고쳐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 FTA를 체결하는 대가로 우리는 독극물이 다름없는 밥상을 받아 안게 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금지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국내 쇠고기 시장의 44%를 미국산쇠고기가 점유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전 세계 유전자조작식품의 70%가 미국에서 생산된다는 사실, 그리고 국내 식량자급율이 20% 내외(그나마 쌀 빼면 5%)에 머물고 있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 한미 FTA 협상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진행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죽음의 굿판’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한미 FTA 협상 체결 자체를 지상의 목표로 삼고 달려드는 한국 정부가 협상 중단을 선언하지 않는 이상, 상품 교역을 둘러싼 협상의 차원을 넘어 교묘하게 한국의 법과 제도를 겨냥하고 있는 미국의 협상전략에 대해서 마땅한 대응 수단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


“서비스산업의 규제 철폐, 부패의 국제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싼 논란과 시민사회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제조업 분야의 업계들조차 실익이 별로 없다는 평가를 내놓자 정부는 뒤늦게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한미 FTA는 불가피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의료, 법률, 교육, 통신, 금융 서비스산업은 이윤창출을 위한 상품이기 전에 인간의 삶을 위한 필수공공재로써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서비스 산업이 국민을 위한 필수공공재로써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면허나 자격을 가진 전문직능집단들이 독점적인 이익을 누려왔던 성역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 사실은 최근에 터져 나온 현직 부장판사와 검사, 경찰간부가 연루된 법조비리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 법률, 교육과 같은 전문서어비스 시장의 개혁과 경쟁력강화는 개방을 통해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의료비리, 법조비리, 사학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정부의 관리, 규제기능 부재와 시민사회의 견제기능이 성숙하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원인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서비스 시장 개방은 정부의 각종 규제제도를 철폐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경쟁력강화 이전에 부패의 확대재생산과 부패의 국제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더 크다. 반면에 이미 1차 협상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투자자-정부 중재제도로 인해 정부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외국자본의 부패에 대해 아무런 통제수단을 갖지 못하게 된다.


“소신과 양심에 따른 결단? 최고 통치권자의 ‘고독한 결단’은 단 한번도 성공한 적 없다”

이런 무모한 협상을 계속해야 되는 지는 상식선에서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것이 대통령의 “소신과 양심에 따른 결단”이라고 하니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이게 무서운 거다. 과거 최고통치권자가 내린, ‘고독한 구국의 결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현대사에서 최고 통치권자의 ‘고독한 결단’이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시민사회 칼럼 79]
김진국(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신경과 전문의)

(이 글은, 2006년 7월 1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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