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교양 없는 우리 어머니”

평화뉴스
  • 입력 2006.08.0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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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차정옥(동화작가)
“돈 낸 만큼 남 잘 부리는 게 교양이 돼 버린 사회에서..”



얼마 전, 볼 일 때문에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일을 다 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서는데 후다닥 뛰어나가던 아이 하나가 과자 봉지를 내 앞으로 휘익 버린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못 참고 한마디 했다.

“얘, 봉지를 아무렇게나 버리면 되니?”
“어차피 청소하는 아저씨가 치워요.”
이상한 소리 하는 아줌마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아이가 불쑥 대답했다.

“그래도 아저씨가 치우시려면 얼마나 힘들겠니?”
“돈 받잖아요.”

그 아이의 자본주의적 사고에 나는 한 마디도 더 못하고 물러서고 말았다. 아하, 저게 바로 요즘 아이들 생각이구나. 머리가 어질어질 울렸다.

그 어지럼증 사이로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나는 우리 어머니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여태 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헌신과 생이 여성의 가장 큰 미덕으로 강요되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남다른 기억이 하나 둘 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내가 어머니를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여기게 된 것은 조금 다른 까닭 때문이다.

예순을 한참 넘기셔서야 일손을 놓으신 어머니의 몸은 요즘도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세월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날도 눈 앞이 자꾸 흐려지신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안과를 찾게 되었는데, 평소에도 많이 붐비는 병원이라 미리 전화로 예약을 했다. 예약 시간을 맞추어서 병원엘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세 시간 네 시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도 있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 놓은 덕에 빨리 진찰을 마치고 올 수 있었다. 의사는 백내장 증상이 보인다며 다음날 다시 나와 보라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어머닌 날더러 예약할 필요 없다면서 혼자 가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전화 한 통화면 되는데 왜 그러시냐고 했지만 어머닌 주섬주섬 옷을 챙기시며 기어이 혼자 나가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들어 갈 때 미리 와서 기다린 다른 환자들 보기가 미안하셨던 것이다.


'남을 부리는 삶'과 '남을 섬기는 삶'...

아무 문제없는 합리적 절차조차도 양심에 찔려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찌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노인네의 답답한 행동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육십 평생을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며 억척스레 육남매를 키워내신 어머니께서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하기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머니는 식당 같은데 가서도 절대로 물이나 반찬 같은 것을 가져다 달라고 시키지 않는다.
자신이 손수 가져다 드신다. 아버지는 비싼 식당에 와서 종업원들을 잘 부릴 줄 모르는 어머니께 늘 교양 없다고 타박하셨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저 사람들도 바쁜데, 뭐 이런 거까지 시키는교.’ 하시며 말꼬리를 흐리시고, 아버지는 ‘그게 저 사람들 일인데, 우리는 돈 내고 오는 손님 아이가.’ 하시며 혀를 차신다.

돈 낸 만큼 남을 잘 부리는 것이 교양이 되어 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리한 정보를 더 빨리 알고 있는 사람이 더 편하게 사는 것이 정당하다는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은 아버지나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정말 한마디로 ‘교양 없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인간다움으로부터 멀어져 더 계산적이고 더 형식적이어야만 교양 있다고 평가되는 우리 사회가 정말 교양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남을 부리는 삶’과 ‘남을 섬기는 삶’ 가운데 누구의 삶이 더 아름다운가? 나의 편리함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어떻게 그것을 눈감을 수만 있는가?

더구나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그 교양이라는 상식이 자꾸 부유한 자와 남성들에게 편리한 생활양식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여성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섬기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고. 가난한 자들은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섬김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섬기고 배려하는 일이 여성과 가난한 자의 몫이 되는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우리는 숱한 역사를 통해서 그 진리를 이미 알고 있다.

돈보다 인간을 배려할 줄 아는 어머니.
그 인간을 배려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편견도 마다않으시는 우리 어머니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날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말복이라는 핑계로 수박 한 덩이를 사들고 찾아뵈었다.

“엄마, 덥지예?”
“이래 덥은 날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집에서 가마이 노는 사람이 뭐시 덥노?”

나는 교양 없는 우리 어머니를, 이래서 사랑한다.


차정옥(동화작가)
* 차정옥(35)님은, 200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화)로 등단해 동화작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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