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쿼터 축소, 지역방송도 죽는다”

평화뉴스
  • 입력 2006.08.0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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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방송.미디어] 정석헌(TBC 기자. 노조위원장)
“국내 프로그램 쿼터 축소, 외국인 지상파 소유...여론마저 미국에 쥐어주는 꼴”


지난 7월10일부터 시작된 한미FTA 2차 본협상이 파행으로 중단되었다며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액면상으로는 양국의 협상내용과 과정에 대한 불만이 그 이유로 제기됐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강대국인 미국과 초국적기업들이 앞으로 남은 3,4차협상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술수와 책략적측면이 강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바꾸어 말하면 9월로 예정된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정상회담에서 협정을 밀어붙이기위한 압박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가 확고하게 또는 공식적으로 협상중단과 협상불가에 대한 마지노선을 제시하기 않고 있기 때문에 불안은 여전하다.


한미FTA는 ‘죽음의 거래’, ‘IMF 외환위기 10개가 한꺼번에 닥치는 재앙’이라고 통칭된다.
우리 사회 각 분야를 초토화시켜 경제주권 문화주권,그리고 우리의 생존권마저 빼앗기게 된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물론 언론과 방송도 예외일수 없는데다 특히 대외경쟁력이 약한 지역방송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산 프로그램 80% 편성 쿼터 축소, 미국 방송의 한국어 더빙, 외국인의 지상파 소유...국내 방송.미디어 사망선고”


정부가 협상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미국은 그동안 무역대표부의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끈질기게 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와 국산프로그램 80%편성쿼터 축소, 미국방송의 한국어 더빙 허용과 광고영업허용, 그리고 지상파의 외국인 소유금지 해제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번 2차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통신회사에 대한 소유지분율 49% 제한조치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미국의 요구대로 한국방송광고공사가 해체되면 기본적으로 이땅의 미디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광고공사는 방송의 기본이념인 공공성과 공익성실현, 그리고 민주주의 핵심인 여론과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마련된 기구이다. 광고공사를 통해 지역민방과 라디오방송,그리고 EBS등이 광고를 의무적으로 나눠받아 주요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주요 수입원이 하루 아침에 없어진다면 명맥을 유지하고 버틸 지역방송은 하나도 없고 지역성과 문화의 다양성,그리고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지역의 미디어가 설 자리는 없다.

신문도 마찬가지이다. 광고공사해체로 전체 신문광고의 3,40%가 줄어들게 되고 지역신문과 군소신문,전국 일간지마저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또 스크린 쿼터처럼 국내 제작프로그램 80%이상 의무방영이라는 편성쿼터가 무너지면 제작단가가 싼 미국산 저질 오락프로그램의 범람으로 국내제작프로그램은 경쟁에서 뒤쳐지고 이에 종사하는 방송현업인들은 비정규직과 실업자로 전락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CNN등 미국의 뉴스전문채널의 한국어더빙을 허용하면 지상파뉴스는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주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유럽,일본등의 주가에 관심이 쏠리는 만큼 한국의 투자자들이 미국의 뉴스채널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이런 토대위에서 미국 기업에 국내방송광고영업을 허용하면 국내 지상파뉴스시장은 가뜩이나 매출이 줄고 있는 형편에 더 반 죽을 수 밖에 없다.

종합적으로 이런 환경들이 맞물려 CNN등 외국산 뉴스를 50%만 더빙하고 편성쿼터가 무너진다면 기자들과 카메라기자들의 일거리는 반으로 줄수 밖에 없다. PD를 비롯한 외주제작사도 굶기는 마찬가지이다.


"외국인의 지상파 소유, 대구경북 지역이슈는 어디에..."


더욱 웃기는 요구는 외국인의 지상파 소유다.
외국인이 지상파(방송국)를 수요할 경우 우리나라의 여론주도권,문화주권을 미국에 쥐어주는 꼴이 돼 각종 선거나 법률제정등 우리의 이슈가 미국의 입맛대로 조절될 위기에 처한다.이렇게 되면 참여정부가 내세운 지역분권을 포함한 지역의 이슈가 왜 필요한 지...미국의 52번째 주로 전락한 대한민국 대구경북의 독자적인 논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지금까지 여론 독과점을 우려해 국내 재벌과 일간신문사가 지상파 방송국을 소유하지 못하게 막았지만 결국은 한미FTA협상을 통해 외국인에 의해 이런 물꼬가 터진다면 얼마나 넌센스인가?

마지막으로 한국의 통신회사에 대한 소유지분율 49% 제한조치를 완화하라는 집요한 요구이다.
국내에서 방송과 통신융합을 화두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하는 시점이어서 미국의 요구가 뼈아프게 느껴진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정통부와 방송위가 공동으로 규제틀 변화를 주장했다.

쉽게 풀자면 지상파와 케이블 TV, 위성방송,DMB로 규제하던 것을 컨텐츠와 전송(망)으로 분리해 규제하겠다는 뜻이다. 방송위는 컨텐츠를 규제하고, 정보통신부는 전송망을 규제하게 돼 더 이상 송출영역은 방송관할이 아니라 통신관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송출영역은 일정한 시간내에 송출공사 등으로 분할되거나 거대 통신사업자에게 매각, 또는 한미FTA협상을 통해 외국인 소유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이것은 앞으로 뉴미디어부문에서 미국 기업의 이익을 봐주겠다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 언론을 좌지 우지하겠다는 속셈이다.

미국과 FTA를 맺은 호주의 사례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드러난다.
호주는 FTA로 인한 탈규제화가 방송의 상업화와 질저하,편성의 다양성훼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편성쿼터와 세금우대정책을 통해 자국의 방송을 지키는데 급급했지만 통신을 개방하는 바람에 신매체는 보호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방송의 무료보편적 서비스, 공공성.공익성, 그리고 지역성이 한꺼번에 무너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방송국)로서 크게 3가지 영역에서 심각한 상황을 직면한다.

첫째, 지상파는 더 이상 망을 소유할 수 없게 되고, 졸지에 '종합프로그램공급업자'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케이블TV의 PP가 되는 것이다. 케이블TV 사례로 보면, SO는 전송계열영역이자 통신영역이고 PP는 컨텐츠영역이자 방송영역이다. SO에 채널 하나를 임대하기 위해서 PP가 사전에 뇌물을 건네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컨텐츠사용료는 포기하며 오로지 프로그램에 붙이는 광고에 목숨 걸어야 하는 운명이 곧 지상파에도 도래한다는 의미이다. (SO:System Operator.종합유선방송국 / PP: Program Provider, '방송채널사용사업자' 또는 ‘프로그램공급자’)

둘째, 지역지상파의 공멸이다. 규제 틀이 바뀌고 한미FTA가 이루어지면 한국 방송법의 고유한 특징인 '지역별 권역별 보호장치'가 사라지는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지역방송이 그토록 치열하게 '권역보호'를 주장하며 싸워왔지만 규제 틀 변화와 함께 외국인 소유로 전락하는 순간 ‘권역보호’라는 방송법 정신은 사라진다.

셋째, 지상파 라디오는 살아 남을 수 없다.
모든 정책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고 소외된 라디오가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다. 전송망이 통신으로 해석되고 개방된다면 지상파라디오의 생존 근거는 없어지고, 멀티미디어의 한 장르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송과 미디어분야에서 한미FTA협상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방송노동자와 현업인들의 관심도 크고 반대시위도 격화되고 있다. 단지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수행했던 방송의 이념인 무료보편적 서비스제공과 공공성,공익성,그리고 지역성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립근거와 정체성이 한미FTA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원점과 기초에서, 그리고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투쟁할 수 밖에 없다. 만약 한미 FTA가 체결돼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후보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영어로 유세를 하고 미국의 주지사선거를 방송들이 틀어댄다면 얼마나 웃길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참여정부가 하고 있다. 국내산 소가 웃을 일이다.


[시민사회 칼럼 80]
정석헌(TBC대구방송 노조위원장. 보도국 기자)

(이 글은, 2006년 7월 24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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