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우린 유권자도 아닙니까”

평화뉴스
  • 입력 2004.03.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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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조차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
...투표권 있어도 투표할 여건이 안돼




◇ 비정규직과 건설일용직의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노동자들.(3.11.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앞)

대구시 서구에 사는 50대 김모씨는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번에도 투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건설 일용직 노동자인 김씨는 요즘 아침 7시에 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야만 한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이미 저녁 8시가 훌쩍 넘어버린다. 선거 소식이 자주 들리지만 생계를 위해 새벽에 나갔다 밤에 들어오는 김씨에게는 투표도 힘든 일. 새벽에 좀더 일찍 일어나 투표하고 출근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재작년 대통령 선거 때도 마음에 두고 있는 후보가 있었지만 결국 투표하지 못했다.

달서구의 40대 박모씨도 같은 처지. 박씨는 성서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선거일이 임시공휴일이지만, 그날도 당연히 출근해야 한다. 투표를 하기 위해 중간에 나가게 되면 무급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박씨는 이미 투표를 포기한 상태.

비정규직.일용직 노동자 대구만 30여만명...회사 배려 없이는 투표도 못해

“우리나라 3600만 유권자 가운데, 800만명이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이며, 대구만해도 약 30여만명으로 추정된다”고 민주노총은 밝혔다.
특히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주소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객지의 공사현장도 마다않고 일을 한다. 투표일에 출근 시간을 2시간 늦추거나 퇴근 시간을 2시간 앞당긴다 하더라도, 객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소지로 와 투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이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은 하루 생계와 맞먹는 일이다.

또, 출근시간을 늦추면 그나마 일부는 투표를 할 수 있겠지만,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새벽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투표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대부분의 회사에서 이러한 배려조차 거의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게다가, 이들은 노동조합에도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회사 쪽에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에서는 선거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했지만, 실제로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은 투표권을 보장받기 어렵다. 정부가 선거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고 있지만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휴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결국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환경의 문제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대구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갖고 “비정규직과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각 사업장에 대한 지도.감독과 선거일을 법정공휴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대구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노동계의 요구 사항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노동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사업체 쪽에 공문을 보내고, 투표를 방해한 사업장에 대해 조사하는 정도”라고 답했다.


◇ 민주노총 대표들이 비정규직의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3.11.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민주노총 대구지역 건설노동조합 조기현 위원장은 “노동자의 참정권 보장 문제는 단순히 투표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현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서명 작업을 할 것과, 투표 방해 행위에 대한 신고 포스터 부착, 비정규직의 연쇄적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계속 투쟁하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노동자들의 참정권 요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작년 ‘2002 대통령 선거’ 때도 이와 비슷한 항의와 요구가 있었지만, 선거철이 지나자 흐지부지 돼 버렸다.
이 문제가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되는 이유는 단순히 참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있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은 현재 전체 노동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급속히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는 미약하다.
결국 이들이 노동자로서 제공 받아야할 근로 환경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조차 참여하기 힘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만큼은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정부가 과연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일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글.사진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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