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할배가 다녀가신 집에서...”

평화뉴스
  • 입력 2006.08.1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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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이진이(방송작가)
“남도의 밥상, 낯선 이에게 저리도 따스한 할머니”

몇 달전 남해안 일대를 다녀왔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남해안 연안답사 길을 따라 가기 위해서였다.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하고 있을 무렵,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했다. 몰살 당한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남해안 연안을 직접 답사했던 바로 그 길을 따라 가던 길이었다.

경상남도 초계에서부터 수곡-진주-하동-쌍계-곡성-순천-보성-회령포로 이어지는 7백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었다. 짧은 일정 탓에 달려가듯 한 길이었지만, 길 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그렇게 고단하지 않은 여정이었다.

전라남도 보성의 득량이라는 곳에 가면 충무공이 며칠 묵고 간 곳이 있는데, 그곳은 ‘양산원’이라는 사람의 집이다. 이 집에는 아직도 양산원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혹시나 충무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여 그 집 앞을 서성이는데, 집 앞 개울에서 할머니 한분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양산원의 집 주변을 사진 찍다가 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하고 만다.

“어디서 오셨소?”
“예, 할머니. 대구에서 왔는데요. 이 집이 유명한 집이라면서요?”
“유명하긴 뭐가 유명한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 댁에서 주무시고 갔다던데요.”
“그걸 어찌 아는가? 맞아. 이 집에서 주무시고 갔다고 그라재.”
“그래서 유명하다는 거지요.”
“으잉.. 여기 우리 집이여.”

세상에.. 자기 집 앞을 기웃거리고 있는 사람을 아무런 적의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니. 괜스레 내가 더 민망해졌다. 더 죄송스러웠던 건,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들어와서 실컷 구경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조심스레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번에 할아버지가 나오신다.

“이 처자가, 충무공 할배가 여기서 주무시고 갔다고 해서 왔다는구만요.”

그 말에 할아버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신다.
예전에 당신의 할아버지에게서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면서 들어와서 구경을 하라고 하면서.

“어릴 적에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집은 요새 지은 거요. 옛날 충무공 할배가 주무시고 간 집은 지금 없고, 우리 할아버지한테 들은 얘기로는 여기.. 이 마당 여기 쯤이라고 하더구만.”

주름진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 옛날 양산원의 가옥이 있던 곳을 알려주신다.
지금은 상추를 키우는 텃밭이 된 곳. 여기서 충무공이 고단한 몸을 뉘이고는 각처에서 도착한 부하들이 모아온 정보를 기초로 새로운 전략을 짰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알고있는 모든 것을 내게 알려주려는 듯, 자세한 설명을 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부르신다. 점심을 먹고 가라는 것이다.
집구경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어떻게 밥까지 얻어먹냐고 그랬더니 할머니 말씀이 정말 명언이다.

“밖에 돌아댕길 때 배가 고프면 그게 젤로 서러운 것이여. 나도 처자만한 딸이 있고 아들이 있어서 그래. 괜찮응께 밥 먹고 가더라고. 촌에는 젤로 흔한 것이 쌀이여. 그랴서 줄 게 밥밖에 없어. 그러니 마음 편히 묵고 가더라고.”

그 밥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안방까지 들어가서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었다.
충무공께서 주무셨다는 가옥이 있었던 자리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던 상추를 한웅큼 뜯어서는 쌈장과 함께 내놓으셨고, 남도의 밥상에서는 아주 흔하게 나오는 묵은 김치와 갖가지 젓갈, 그리고 배추시래기국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감동의 밥상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할머니는 자식들 이야기를 펼쳐놓으셨다.
고개를 끄덕이며 밥 한그릇을 다 비울 즈음에 후식으로 먹으라면서 유자차와 엿을 내오신다. 모두가 당신 손으로 직접 만든 것들이다. 남도에는 유자가 흔하다. 뒷산에서 자라는 유자를 따서 곱게 저며 꿀과 함께 절여놨다가 이렇게 차를 만들어 먹는단다. 쌀로 만들었다는 엿도 시중에 판매되는 엿과 다르다. 부드럽고 쫄깃하면서 단맛이 적다. 심심풀이로 먹기 딱 좋다.

할머니는 손목이 좋지 않으시단다.
지난 겨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목을 꺾여 예전처럼 살림을 못한다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스러워 했다. 열아홉에 시집올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늙을 줄을 몰랐다면서... 문득 할머니의 까만 눈동자에는 그 옛날, 삼단 같은 머리칼에 빨간 댕기를 매던 열아홉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밥도 잘 얻어먹고, 좋은 이야기도 듣고, 또 필요한 정보도 얻고 사진까지 찍고나니, 몸과 마음이 어찌나 든든하던지... 가는 길에 마시라면서 물까지 채워주신다. 뜻밖의 호의에 마음이 훈훈해져서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내 어머니 같고, 우리 할머니 같고.. 어쩌면 저리도 따스한가? 낯선 이에게 아무런 사심없이 베푸는 호의 앞에 울컥 눈물까지 나오려고 한다.

여러 곳을 여행 다니면서 느낀 건데, 세상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정하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내가 만났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를 당신의 손주처럼 생각해서인지, 안쓰러워하면서 친절을 베풀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 아닐까 싶다. 밖에서 그네들의 딸 또래를 보면 친딸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래서 내 딸처럼 이뻐하고 염려해주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마음 말이다.

남도의 밥상에서 마주한 어머니의 마음, 갑자기 집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여행을 떠나면 집에 전화도 잘 하지않던 무심한 딸, 이제는 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길을 나설 때 꼭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진이(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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