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이영기”

평화뉴스
  • 입력 2004.03.1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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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연합 이영기 의장 ‘간암 말기’ 투병
...“힘찬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병과 싸워 이겨야지'라며 밝게 웃고 있는 이영기 의장(사진.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병과 싸워 이겨야지"라며 밝게 웃고 있는 이영기 의장(사진.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간암과 친구돼 꼭 이겨낼 겁니다.
올 연말에 힘찬 모습으로 다시 만나 꼭 술한잔 합시다”

[민주주의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의장 이영기(40).

대구지역 사회운동에서 그의 이름을 빼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수십여개의 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주주의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의장에다, [대구경북민중연대] 공동대표와 상임집행위원장, [대구경북통일연대]의 상임공동대표까지 맡고 있다.


뛰어난 언변이나 거창한 경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직, 민족과 민중과 함께 해 온 헌신적인 삶. 그리고 그 헌신적인 삶으로 우직하게 걸어온 한 길이었기에, 지역 활동가 그 누구도 그를 중심에 두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의 헌신적인 삶이 댓가를 요구하고 있다. 통일의 외침으로, 억압받는 노동자의 삶으로, 모든 착취와 모순을 깨기 위한 투쟁의 현장으로 뛰어다닌 청년 이영기. 이제 그의 삶은 “제 몸을 돌보지 않은 댓가”를 요구하고 있다.
“간암 말기”. 지난 10일 대구의 한 병원에서 손을 내저었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찾아간 서울의 큰 병원에서도 지난 16일 ‘간암 말기’라는 최종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현대 의학이 풀지 못하는 병을 안은 채 어제(18일) 대구로 돌아왔다.
이제 그는, 큰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께 이 모든 사실을 말씀드리고, 오는 22일 강화도의 어느 수도원으로 요양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늘 그렇듯 당차게 말한다. “스스로의 통제력도 과학이죠. 스스로를 이겨내 꼭 돌아올겁니다. 올 연말에 멋지게 술한잔 합시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문병온 후배들과 함께...(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문병온 후배들과 함께...(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당찬 목소리. 이 의장은 대구시 칠곡에 있는 한 후배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다. 19일 오전에 그 곳을 찾아 이 의장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당찬 그 목소리가 언제나 변함없기를 바라며...

중학교 마치고 17살에 서울 공장으로...공안사건으로 4년간 옥살이도

경북 김천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이영기 의장. 주민등록증엔 ’67년 생으로 돼 있지만 자신은 ’64년생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께서 내 동생 출생신고 할 때야 내가 호적에 빠진 줄 아셨다네. 벌금 조금만 내면 고칠 수 있었는데 그게 없어 그냥 ’67년 생으로 됐다더만. 3년 벌어 살았지 뭐 허허...” 그래서 이 의장과 동생의 호적상 나이 차는 불과 11개월.

막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생 때만 8번이나 전학해야 했던 이 의장은, 김천에서 중학교를 마치자 마자 서울로 갔다. 그때가 ’80년. 그의 나이는 불과 17살. 이 의장은 배고픔에 한풀이 하듯, 서울의 한 제과공장에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그는, 당시 ‘위장취업’한 한 대학생과 어울리며 착취받는 노동자의 삶에 눈을 뜨고, 그릇된 세상에 대한 학습과 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87년. 노동자의 신분으로 6월 항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죄스러움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결국, 서울과 부천에서 공장과 식당일을 하던 그는 이듬 해 ‘88년 초에 대구로 내려왔고, 이 때부터 대구지역의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에 헌신하게 됐다.

대구에 온 그는, 지난 ’88년 [새로운 청년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하며 지역 청년운동을 시작해 ’92년에는 [새로운 청년회] 회장을 맡았다. 또, 당시 10여개의 청년단체로 구성된 [대구청년단체 대표자협의회] 회장과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조국통일위원장을 맡아 통일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93년에는 청년과 학생들로 구성된 [조국통일선봉대] 대장을 맡아 전국 곳곳을 다녔고, 지금의 [민주주의 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창립에 참여하며 지역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하게 됐다.

모진 고문..."구국전위"사건, 반드시 진실 밝혀야
통일을 외치던 이 의장(사진.이영기 투병대책위원회)
통일을 외치던 이 의장(사진.이영기 투병대책위원회)

그러나, 이것도 잠시. 통일운동에 힘쓰던 그는, 지난 ’94년 자신도 알지 못하는 ‘구국전위’라는 공안사건으로 붙잡혀 4년동안이나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게 뭔 조직인지 나는 전혀 몰랐지. 나는 그냥 통일운동 한다고 다녔을 뿐인데, 갑자기 간첩조직이니 뭐니 하며 잡아가데” 지난 ’94년 6월 13일 새벽. 서울역에서 붙잡힌 그는, 서울 홍재동에 있는 경찰청 소속 ‘대공분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한 이틀동안 뭐 묻지도 않고 계속 때리기만 죽도록 때리더만...”

결국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조직의 간부라는 죄목으로 4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때 ’94년 6월은 북한과 미국의 전쟁위기설이 한참 나돌때였지. 그래서 흔히 말하는 ‘국면전환용 공안사건’이 필요했던 모양이야...” 대구경북지역의 통일운동가 10여명과 함께 붙잡혔던 그는, “아직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몸이 나으면 꼭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진실을 밝혀야지”라며 결의를 다진다.

이 의장은 억울한 4년간의 옥살이를 마친 뒤 더욱 힘차게 세상과 싸웠다. 감옥에서 나온 이듬 해 ’99년부터 4년동안 [민주주의민죽통일 대구경북연합] 집행위원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지금도 이 단체 의장을 비롯해, [대구경북민중연대] 공동대표와 상임집행위원장, [대구경북통일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자신을 부르는 지역 곳곳의 현장을 뛰어다니며 민중의 아픔과 늘 함께 해왔다. 수없이 많은 농성과 집회...그 속에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은 없었다.

이 의장은 아직 총각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3명의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적지 않다. ‘큰아들의 요양’을 어머니께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일이나 모레쯤 말씀드려야지...건강하게 돌아와야지 뭐...”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민중을 절대 대상화 하면 안돼"


이 의장은 그간의 치열했던 지역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한동안 보지 못할 후배들을 생각하며 당부를 잊지 않았다. “대구경북 시도민이 보수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을 대상화한 건 기득권과 우리의 잘못입니다. 절대 민중을 대상화 하면 안됩니다.”
또,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면서, “언제나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 연말엔 술 한잔 해야지?' 이 웃음 그대로 꼭 한잔 합시다(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올 연말엔 술 한잔 해야지?" 이 웃음 그대로 꼭 한잔 합시다(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이제 먼 길을 떠나게 될 이 의장. 그를 아는 누구도 “아름다운 청년”이란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이미 대경연합에서 마련한 그의 ‘투병’ 홈페이지에는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청년”이라 부르며 많은 글을 올리고 있다. 그것은 그의 헌신적인 삶이 오롯이 한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직하게 걸어온 헌신적인 삶..."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더 열심히 해야지"

흔히 말하는 ‘재야운동’. 힘겨운 삶에 지쳐 떠나가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이 더 돋보이고, 그 헌신에 댓가를 요구하는 병마가 그렇게 안타까운 것이다. “모든 것이 사람과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는 내일 오후 동성로에서 열리는 [반전 평화의 날] 집회에 참가할 생각이다. 그동안 함께 활동해 온 여러 동지(同志)들과 재야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동안 보지 못할 대구. 이 곳에서 힘차게 한번 더 외치고 싶기 때문이다. “전쟁을 반대한다, 파병을 철회하라”. 이제 그와 함께 한 많은 이들은 믿을 것이다. “그 외침 그대로 병마와 싸워 꼭 이겨 돌아올 것을...”
이영기 투병대책위원회 홈페이지(http://young.uristory.net)
이영기 투병대책위원회 홈페이지(http://young.uristory.net)

이영기 투병대책위원회 http://young.uristo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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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 대구은행 061-08-051810-3 (예금주 : 이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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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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