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떠난 이야기..”

평화뉴스
  • 입력 2006.10.2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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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이주영(기자)...“길바닥에서 별을 주웠던 그곳으로..“

얼마 전 취업을 앞둔 대학생 20여명에게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한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1시간30분여의 강의를 정리하며 내가 한 말은 기자를 하든, 다른 직업을 갖든 먼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충분히 고민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키 큰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게 가장 문제에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죠?

미안해요. 거기에 대한 답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마음 한 켠이 서늘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당신보다 2년 먼저 취업의 길을 밟았으면서도 나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사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고. 가끔 견딜 수 없는 공허감에 쩔쩔맨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늦은 여름 휴가 때, 낮과 밤이 뒤바뀐 그곳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휘청거리는 마음을 다스릴 곳이 필요했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서른 살이 되려면 아직 5년이나 남았는데, 도대체 너 벌써 왜 이러는 거니. 마음이 대답했다. 일단 날 이 곳에서 끄집어내 2년 8개월 전, 길바닥에서 별을 주웠던 그곳으로 데려가 줘. 시끄럽고 미친 사람들의 도시, 뉴욕으로 말이야.

아직도 생생하다. 2002년과 2003년을 잇는 겨울.
나는 사람보다 소 떼가 더 많은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주 작은 사립대학의 교환학생이라는, 조금 나른한 신분의 스물 두 살이었다. 겨울방학이 되자 무작정 18시간짜리 버스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지만, 돈이 넉넉하지 않아 잼과 식빵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호스텔의 작은 주방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신기하게도 뉴욕의 혹독한 겨울 거리를 몇 시간씩 걸어 다녀도 춥거나 외롭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삶의 비밀을 하나 둘씩 전해줬다. 만나는 모든 풍경이 내게 속삭였다.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 믿는 만큼 이뤄진다는 말, 이젠 알겠지?

그 생생한 삶의 비밀을 다시 엿듣기 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태평양 상공에서 일주일간 지켜야 할 ‘여행자 수칙’을 만들었다. 적어도 하루에 한 편의 시를 쓰고 한 장의 그림을 그릴 것.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에게 자주 물어볼 것. 서두르지 않고 많이 걸을 것. 자주 웃을 것. 우연을반가워하고 인연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

그러나 맨해튼에서 발견한 것은 마치 마감을 1분 앞둔 기사를 쓰는 것처럼 조급하고 서두르는 내 모습이었다.
버스가 빨리 오지 않으면 답답해했고 길을 헤맬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장소만 뉴욕으로 바뀌었을 뿐 나는 ‘여행자’의 옷을 입지 못했다. 더구나 비까지 내려 바지와 운동화를 모두 적셔버리고 말았다. 길가엔 우산도 쓰지 않은 한 여자가 ‘HELP ME’라고 쓰인 종이를 앞에 둔 채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나도 그만 빗 속에 고개를 파묻고 싶었다.

패잔병처럼 타임스퀘어 근처의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예술인들의 거리, 윌리엄즈버그...
예술인들의 거리, 윌리엄즈버그...
안녕.
안녕. 커피 한 잔이요.
우유는?
조금만 넣어주세요.
그런데 너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요.
아름다운 곳에서 왔구나. 즐거운 여행 되렴.

지친 내게 예쁜 미소의 그녀가 내민 커피와 따뜻한 말이 마음을 스르르 감쌌다. 잊고 있었던 여행자 수칙이 떠올랐다. 서두르지 말 것. 우연을 받아들일 것. 나는 아무 것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참 단순한 건데 말이야.

다음 날 아침, 호스텔 버스정류장 앞 슈퍼마켓에서 나를 위해 향긋한 흰색 장미 한 송이를 골랐다. 그리곤 맨해튼 32번가 고려서점에 들러 정이현의 소설을 산 뒤 예술가들의 거리인 브루클린 윌리엄즈버그로 향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곳은 산타클로스처럼 수염을 기르고 까만 모자를 쓴 남자들과, 길고 까만 치마에 검정 스타킹을 신은 여자들이 유령처럼 걸어 다니는 곳이었다. 나는 마치, 1900년대의 유태인 마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 발을 내디딘 브루클린의 모습이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로어 맨해튼으로 나왔다. 이곳에 온 김에 챌시 마켓이 떠올랐고, 그곳에서 스시를 먹고 녹차를 마셨다. 딸기 아이스크림을 들고 주방용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 흘러나왔다. 나즈막히 따라 불렀다. 평화로웠다.

그리곤 센트럴 파크. 몇 년 만에 그네를 탔다.
형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 세 살 꼬마에게 박수를 쳐줬다. 분수대에 앉아 물소리를 들었다. 맨발로 잔디를 밟았다.
지도 없이 돌아다녔다. 배가 고프면 먹었고 다리가 아프면 쉬었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엔 작은 헌책방에 들러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를 샀다. 학교 시네마테크에서 동명의 영화를 보고 친구와 벤치에 앉아 ‘죽고 싶다’고 말했었던 스무살 무렵의 늦은 밤이 떠올랐다. 책을 가만히 껴안았다. 이 책을 거쳐갔을, 이름 모르는 이들의 체온이 느껴졌다.

센트럴파크, 그네 타는 남매...
센트럴파크, 그네 타는 남매...


시간이 지날수록, 유명한 관광지와 박물관에 들어가는 대신 건물 앞 계단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나는 기묘한 평온함에 안도했다. 2년여 만에 처음으로 ‘평화’를 발음할 수 있었다. 무빙워크에서 조차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내가, 두 발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아 다리를 쉬게 하는 데에 이렇게 오랜 시간과 아득한 공간이 필요했다.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 것 아닐까. 계획대로 되는 것 하나도 없고 늘 시행착오와 실수를 반복하지만 결국 천천히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면, 강도 만나고 그네도 타고 헌책방에서 내마음을 적셨던 책도 만나고 100년 전 유태인 마을도 만나는 것처럼, 인생도 결국 흐르는 대로 놔두니 비로소 제대로 가는 것 아닐까.

내가 삶을 이끌지 않아도 삶이 나를 이끄는 대로 맡기면, 지도가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편안해지는 것 아닐까.

일주일 간의 ‘외도’ 끝에 나는 다시 하루에 8개의 신문을 읽고 수십 통의 전화를 걸고 받고 택시 안에서 화장을 하는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이젠 당분간 새까만 발바닥을 하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닐 여유도, 즉흥적으로 행선지를 바꿔 버스에서 내릴 수도, 지하철 벤치에 앉아 출근길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배낭을 매고 꿈꾸는 표정으로 길을 걷는 여행자를 보며 부러움과 추억에 눈물이 날 지도 모르겠지.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참 좋다. 여행을 떠올리며 늦은 밤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게 됐고 커피 한 잔에도 뉴욕의 따뜻한 오후 풍경을 찾아낼 수 있으니. 아, 어쩌면 이것이 내가 찾은 삶의 비밀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것에 감동하고 웃을 수 있게 돼서, 참 고맙다.

[주말 에세이 18]
이주영(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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