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두근거렸으면 좋겠다”

평화뉴스
  • 입력 2006.11.10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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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류혜숙(문화전문기자)
“행복은 리듬이다. 리듬을 가지고 흘러가는 시간이다”

“행복해져라.”
직장을 그만두려는 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다였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근 이년간 잊을라 치면 번번이 터져 나오던 ‘이놈의 직장’이었다.
내가 참을성이 좀 있고 착한 심성이었으면 지치지 않고 응, 그래, 끄덕끄덕 해 줄 수 있었겠지만 결국 “다시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 하지마라”고 매몰차게 잘라 버렸었다. 공허한 토로, 어차피 되돌아가는 부메랑 같은 불만들, 묵어도 너무 묵어 시어빠진 김치 같은 그것. 그것을 매번 다독여 줄만큼 여유도 참을성도 착함도 내겐 없었다.

착실한 학생기를 거쳐 착실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던 언니.
노후를 걱정하고 목돈이 든 통장을 몇 개씩이나 가진 언니와 나는 무척 다르다.
돈을 제대로 벌어본 적도 없고, 당연히 벌어놓은 것도 없으며 노후 따위를 걱정해 본 적도 없다.
굴곡 많은 학생기, 졸업은 기적, 다니던 대학원도 못 볼꼴은 안보겠다고 뛰쳐나왔으며, 밤새 깨어있는 게 좋아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은 사래질 친다. 언니는 그런 나를 ‘사회부적응자’ 또는 ‘유아적 퇴행자’라며 고개를 휘휘 젓곤 했다.

“꿈만 갖고 어찌 살래? 좋아하는 것만 하고 어떻게 사니?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구체적인 향후의 계획까지 이야기하는 이번의 ‘갈등’에는 분명 무언가 끝장을 보려는 의지가 묻어있다.
동의를 구하려는 안쓰러운 눈빛을 보며 ‘사회부적응자’ 에다 ‘유아적 퇴행자’인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는가.
내 멋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 별별 발광을 다 해도, 아직 행복한지 모르겠는걸.
그러니, 그것으로 네가 지금보다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진심으로 “행복해져라.”


“씩씩한 C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B도...그렇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얼마 전, 갑자기 사표를 썼노라고 폭탄선언을 한 C와 몇몇의 술자리가 있었다.
축하와 격려, 걱정과 다독임이 이어졌던 자리. 그의 얼굴에는 많은 감정들이 있었다.
단호함, 아쉬움, 시원함, 두려움, 용기백배한 불끈함까지...

이런 감정들은 비단 C의 것만이 아닐게다.
그곳에 모였던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가졌을 것일게다.

그때 B가 말했다.
“며칠 전부터 가슴이 뛰어요. 두근 두근. 그때 생각했어요. 살아있구나. 오랫동안 난 죽어 있었구나.”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행복은 리듬이다. 리듬을 가지고 흘러가는 시간이다. 두근두근 하고 심장이 뛰는 것이다.
불행은 행복의 반대가 아니라 리듬의 한 조각이다. 행복의 반대는 행복의 부재다. 직선이다.
흐르지 않고 단지 지속되는 시간이다.

영어로 시간이 가는 소리를 틱 톡(tik tok)이라 한다. 틱은 시작을 톡은 끝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틱 톡은 심장이 뛰는 소리라 한다. 시간은 흘러야 하고 심장은 뛰어야 한다.
매 순간을 시작하고 살아야 한다. 행복이란 그렇게 음악적인 삶이다.

행복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행복은 자신에 대한 책임이고 의무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이며 스스로에 대한 무책임이다.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지. 매 순간이 시작이다.

다시 시작할까 갈등중인 언니도, 씩씩한 C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B도, 여전히 발광중인 나도, 그리고 당신과 당신과 당신, 그대들 모두도 매 순간을 시작하고 살길, 그렇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두근거렸으면 좋겠다.

[주말 에세이 19]
류혜숙(평화뉴스 문화전문기자)
pnnews@pn.or.kr /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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