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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온 몸으로 견뎌낸 아픔..”
[성폭력생존자]..“지워지기 어려운 경험을 혼자 맞서게 함으로써 주저앉게 했다”
2006년 11월 30일 (목) 18:54:55 평화뉴스 pnnews@pn.or.kr
이제 나는 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안다.
여기 한 사람이 어깨를 들썩인다. 목이 메여오는 깊은 울음을 자신 안의 우물에서 건져 올리는 까닭이다.

이제 두 사람이 서로의 눈물을 닦아 준다.
이처럼 타인에게 자신이 수용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함께’ 라는 위안을 얻게 된다.
함께 울고 웃었던 ‘착한’ 시간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서로에게 귀가 밝고 순했던 시간.

   
제 2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는 표현 ‘하는’ 힘이 존재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 차마 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오롯이 울려 퍼졌다. 그로 인해 우리는 말함으로써 표현 ‘된’ 힘을 지니고 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언제고 이어질 내 기억 속의 ‘바다’이다.
깊은 맛을 가진 바다. 짠 맛, 시원한 맛, 바람의 나부낌도 느껴진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명상의 시간이 우리를 바다로 불러들인 것이다.

A씨가 울고 있다. 아무런 행위도,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흔들리는 촛불이 보이고, 피아노 선율만이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울고 있다. 나는 운다는 것이 슬픔, 분노, 아픔만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적극적인 현실에 ‘몸담기’이다. 지금, 여기,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기에 일어날 수 있는 행위이다.

이어 치유에 대한 이야기가 담백한 음성으로 나직이 읊조려졌다.
조명이 낮춰진 그 속에서 우리는 홀로이면서, 함께였다.


"나를 어떻게 볼까?...저는 그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자신을 지탱하는 가운데 생존자 A씨가 말했다. 울음을 온 몸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제가 입은 드레스를 보고 놀라셨을 거예요. 왜 이런 것을 입었을까 말이죠. 오늘 저는 제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에게, 여러분에게도 예뻐 보이고 싶었고,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그 미소에 마음이 찡긋한다.

“얼마 전 학교 근처 원룸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는데, 피해자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가야 했어요. 그 사건을 들은 친구들이 제가 있는 자리에서 말했어요. ‘저 인생은 이제 망했다.’ 저는 그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친구들이 마치 저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주변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아야겠다. 나를 어떻게 볼까? 내 인생이 망했다니, 더욱 더 숨기고만 싶었습니다.”

   
▲ '성폭력생존자'들의 작품을 한 남자가 바라보고 있다. 이번 행사에 처음으로 남자도 참가했다.
 


A씨는 이처럼 선뜻 말하지 못하게 만든 사회를 말해주었다.
사회가 각인하는 것, 각인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지는 것이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뜻하지 않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망했다’라고 하는가. 함께 살아가는 모두의 고백이 필요하다. 무관심함이 폭력이 아니었냐고 말이다.

생존자 B씨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서 이렇게 얘기 한다는 것을 가족들이 안다면 저를 죽이려고 할 겁니다.”
정작 손가락질 받아야 할 사람은 근친강간을 행하고도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멀쩡히 살아가는 그 사람(!)이 아닌가. 최초 피해 경험이 불과 10세였던 B씨는 그 후로 20년 동안 1년 중 300일 이상은 피를 쏟아내는 월(月)경 아닌 일(日)경을 가져야했다.

가장 가까운 거리의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게 하는 사회.
40년간을 침묵으로 일관하게 만든 남성성(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길러진 여성 또한 남성성을 학습 받았지 않았는가.)...그 남성성이 가진 폭력 앞에 ‘당신’도 울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 머리에서도 지워지기 어려운 경험을 혼자 맞서게 함으로써 피해자를 주저앉게 했다. 경험을 딛고 일어선 그를 생존자로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성폭력생존자 말하기 대회'가 열린 한 교회...'한지수첩 만들기'를 비롯한 참여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모두가 잊지 않고 선명히 기억하기를 바란다.

말하기는 들어주는 이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
물론 듣는 이를 설정하지 않거나, 혹은 그 자신이 되는 독백이 있을 수는 있다.
진솔한 말하기, 진심어린 들어줌, 그 속에는 어떤 말을 해도 나를 비난하지 않은 거라는 믿음과 지지, 격려가
오고 간다.

서울에서는 더 이상 비밀 장소가 아닌, 열린 공간에서 만민 공동회 형식으로 생존자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대구여성의전화]에서 주최한 이번 제 2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대회에는 남성 듣기 참여자들이 처음으로 참여했다.


"누군가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줄 수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손을 건네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성 참가자들이 이 대회에 참여하면서, ‘아, 저렇게 힘들어하는 구나.’ 더욱 보호해야 할 약자로 생존자들을 그저 관찰하거나, 자신이 계몽적으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갖지 않기를 주제넘게 바라보았다.

분명 느껴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로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를 알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집단적 ‘일렁거림’을 표현 할 수 없을뿐더러 그 축제의 기쁨을 ‘쉽게’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누군가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줄 수 있는 데워진 마음이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손을 건네고 싶다.

우리는 한 데 어울려 ‘바다’ 속에서 흐름을 같이 했다.
휘발성의 신기루로 없어져 버리는 게 아닌, 일상의 현실로 자리 잡을 건강한 기록을 남겼다.
당신도 그 기록을 함께 만들어주겠냐고.


   
[시민사회 칼럼 86]
글.사진 문은지(경북대 국문과 3년)


* [제 2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는 지난 11월 11일 대한성공회 대구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생존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피해경험을 말하고,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생존자들이 힘을 얻고 치유의 길을 연다”는 취지로, [대구여성의전화]가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했습니다. “내 가슴, 악수를 청하다”는 주제로 열린 올해 행사에는 성폭력 생존자와 단체 회원,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80여명이 참가했으며, 행사의 특수성 때문에 미리 말하기 참여자와 듣기 참여자를 모집해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글을 쓴 문은지씨는 이번 행사의 ‘기획팀’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글은, 2006년 11월 19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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