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아들 맡긴 지 6년.."

평화뉴스
  • 입력 2006.12.1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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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정희경(방송작가)
"우리 엄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 되기가 자신 없어집니다"

큰 아들 경준이와 함께...
큰 아들 경준이와 함께...

"에구.. 그럼 뭐 비행기는 물 건너 간 거네"

10여 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 오신,
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인척쯤 되는 아주머니께서
보자마자 대뜸 이러십니다.
비행기는 일찌감치 포기하라고요.
아들만 둘이니까.

딸 둔 부모는 비행기 타고
아들 둔 부모는 이제 기차도 못 얻어 타
버스나 겨우 탈 거라는 얘기가
바다 건너 일본에도 수시로 들렸는 지
쯧쯧쯧.. 혀까지 차며 아주 안쓰러워하십니다.

생각해보면 나도 아들이 아닌 딸이니,
그리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다 싶지만,
후세의 딸들은 비행기를 태워줄 것이라
굳은 믿음을 주는데
지금의 이 딸은 그저 죄인일 뿐이니 헛웃음도 웃질 못하겠습니다.



일한다는 핑계로
친정 엄마 손에 아들을 맡겨 놓은 지 벌써 6년.

처음에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손자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차 하시더니
그 일이 손에 익자마자 청소에, 빨래에, 쓰레기 처리에...
결국 우리 엄마
딸 네 살림살이 절반 이상을 떠맡고 계십니다.

거기다 2년 전부터는 둘째 녀석까지 업고 사시니
안 그래도 골 밀도 낮다는 허리뼈가
얼마나 더 버텨줄지 아무도 장담을 못합니다.

하지만,
이미 받는 게 너무 익숙해진 딸 탓에
엄마의 일은 나날이 늘고,
이 딸의 얼굴은 나날이 두꺼워지고,
그렇게 6년이 흘렀고,
앞으로 또 여러 날이 흐르겠죠.

간혹 아들만 둔 엄마들 사이 오가는 얘기 중에
아들이 둘 이상이면
천국행 티켓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딸 보다 키우기가 배 이상 힘들다는
아들뿐인 엄마의 서러움 담긴 위안이랄까요.
어쨌거나 그 천국행 티켓을 드린다고 해도
분명 이 딸 주머니에 고이 넣어주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 되기가 자신 없어집니다.

[주말 에세이 23]
정희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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