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 한 첫 여행..

평화뉴스
  • 입력 2007.01.1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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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이진이(방송작가)
"설경 눈부신 금강산, 어머니 환한 얼굴이 내 눈에 아렸다"

2007년 새해를 금강산에서 맞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녘 땅에 발을 디뎠다는 것도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나에게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건 어머니와 함께 한 최초의 여행이어서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나는 나에게 약간의 방랑벽 같은 게 있다는 걸 느꼈다. 대학시절 소리소문없이 우리 땅 이곳 저곳을 자주 밟았고, 여행을 떠나면 집과 가족을 쉽게 잊곤 했다.

자연스럽게 여행지에 도착한 후에는 집에 전화조차 잘 하지 않았고, 그게 여러번 반복되다보니 가족들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는 가족들과의 여행이란 나의 머리에도, 식구의 사전에도 없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러고보니 중학교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여름방학 때 가족들과 함께 설악산을 간다고 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어떻게 가족 모두가 다같이 여행을 갈 수 있단 말인가? 먹고살기 바쁘셨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단 한번도 가족여행을 제안하신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 친구네의 여행은 참으로 낯설고, 조금은 호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기야 우리 또래들 중에 가족 모두가 함께 설악산이니, 제주도니, 아니 가까운 팔공산이라도 다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이었겠는가? 모두가 하루하루 밥벌이에 바빴다. 부모들은 악착같이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처럼 가족 모두가 놀이동산을 가거나, 아버지가 주말과 휴일을 가족들을 위해 쓰기 시작한 게, 사실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거, 모두들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우리 가족들도 몇 년전부터 가족여행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명칭은 거창하지만, 그저 설 연휴나 추석 연휴 때, 가까운 가야산에 가서 온천을 하고, 해인사를 구경하고 오는 것이 다였다. 지난해에는 1박 2일로 경주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마냥 신기했다. 우리도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가는구나.. 하면서. 식구들과의 여행은 다른 여행과 달랐다. 내가 일 핑계로, 혹은 머리를 식힌다는 명목으로 전국 곳곳을 찾아다닐 때나, 큰 마음 먹고 배낭을 짊어지고 외국의 낯선 거리를 거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 푸근하고 여유있고, 아늑하다는 것이 내가 가족여행에서 느낀 그 무엇이다.

가족들이 함께 하는 여행에서, 어머니들의 주요쟁점은 먹거리다.
식구들이 나가서도 배를 곯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우리네 어머니들은 고작 경주 나들이에도 바리바리 뭔가를 싸려고 한다. 널린 게 식당이고, 먹거리인데도, 어머니들은 김밥을 싸고 통닭을 시키고, 과자와 음료수를 챙긴다. 그리고 식구들은 여행지에서 그 음식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먹고는, 배를 퉁퉁 두드리며 게으름을 부린다. 거기다 심심하면 명승지를 찾아 한번 휙 훑어보고, 산책을 하거나 딴 짓을 하며 뒹굴대는 것, 그런 게 가족여행이라는 것이더라.. 나이가 한참 들고서야 알았다.

어머니와 함께 한 금강산...먼훗날, 나는 또 이날을 떠올리지 않을까? 어머니의 아버지 생각처럼...
어머니와 함께 한 금강산...먼훗날, 나는 또 이날을 떠올리지 않을까? 어머니의 아버지 생각처럼...


그러니 어머니와 단둘이 여행을 한다는 건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우연찮게 금강산을 가게 됐고, 혼자 가느니, 어머니 금강산 관광 시켜드린다는 생각으로 은근슬쩍 어머니의 의사를 떠봤는데, 대뜸 가시겠다고 하신다. 자식이라는 작자들은 부모 마음을 못 헤아리며 사는 게 맞구나 싶었다. 내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어머니는 걱정부터 하시지만, 사실 당신이라고해서 미지의 그곳이 왜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싶다. 그런 마음을 몰랐던 내가 참으로 부족한 딸이구나 하는 생각에, 진작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마련하지 못한 것이 미안스러웠다.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오르고, 만물상을 오를 때, 어머니는 나보다도 더 산을 잘 타셨다.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분이라 그런지 산 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연세가 있으신데도 거뜬히 산을 오르는 건 어쩌면 여행의 힘인지도 모른다. 원래 여행지에서는 평소보다 몇배의 힘이 솟구치는 법이니까.

저녁에 온천을 가서는 어머니 등도 밀어드리고, 머리 마사지도 해드렸다. 살갗이 서로 닿자, 육친의 정이 더욱 살갑게 느껴졌다. 온천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둘이서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우리가 친구여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이 운명적인 굴레가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걸 금강산에서 절실하게 느꼈다.

여행 도중 어머니는 어릴 적 고향 이야기를 자주 하셨고,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어쩌면 당신의 딸과의 호젓한 여행길에 어머니는 당신의 아버지가 생각난 건지도 모르겠다.
먼훗날 나는 또 이날을 떠올릴 날이 있지 않을까?

아직은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이런 기회를 좀더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부모가 생존해있고, 그래서 그와 더불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해묵은 문구이긴 하지만, 살아생전 부모는 평생 자식을 기다리지만, 그 시간을 자식이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기다리지만, 시간은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좀 낯간지러운 다짐이긴 하지만, 올해는 어머니께 좀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경이 눈부셨던 금강산에서 정작 내 눈을 아리게 했던 것은 환하게 웃던 어머니의 얼굴이었으니 말이다.


[주말 에세이 27]
이진이(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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