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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염무웅 선생의 고백"
[김용락 칼럼]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하늘을 우러러 당당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2007년 03월 13일 (화) 10:14:14 평화뉴스 pnnews@pn.or.kr
   
▲ 염무웅 전 영남대 교수
 

인간은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會者定離 生者必滅은 불교적인 용어이다. 무릇 인간관계라는 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다. 이 헤어짐에는 말 그대로 옷깃을 스치는 정도의 가벼운 헤어짐도 있고, 한 사람의 영혼을 흔들 정도로 심각한 헤어짐도 있을 수 있다.
이 헤어짐과 소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불가에서는 이미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인간들의 근원적인 고통을 방어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각설하고 지난 2월 28일 정오, 나는 영남대학교 교정을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 대학에서 27년간 봉직하고 퇴임하는 문학평론가 염무웅 교수의 정년퇴임식에 참여하고 빠져 나오는 길이었다.
어려운 시대, 두 번의 해직과 여러 고초를 겪은 후 뒤늦게 대구에 있는 이 대학에 안착해 무사히 정년을 하게 된 선생의 퇴임식을 문학하는 몇 동료와 함께 진심으로 축하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대 초반에 선생을 만나 처음에는 습작시를 보여주고 문학에 대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 이 대학에 계시던 선생을 찾아뵈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종래 인생의 큰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겨 보게 될 뿐 아니라 나에게 찾아온 이 큰 행운에 대해 앞으로도 오랫동안 감사해야 할 것 같았다.

이날 염무웅 선생의 공식적인 퇴임식에 앞서, 지난해 12월 5일 영남대 인문관 203호 교실에서 퇴임 고별강연이 있었다. 선생이 재직한 이 대학 독문과 주최로 바깥에는 알리지 않고 교내에서 자그마하게 치루는 의식이었다. 나는 우연히 이 행사 소식을 접하고 고별강연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강연은 이 학과에서 올해 정년퇴임하는 또 다른 한분과 함께 이루어졌다. 염무웅 선생의 본명은 홍경이다. 무웅은 필명이다. 그러니까 이 강연은 염홍경 교수의 강연인 셈이다.

강연 시간은 20분 정도로 강연치고는 짧았다.
강연 서두에 선생은 퇴임을 앞둔 근래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5.16장학금...가슴 속에 묻어두었다가 정년퇴임식 자리에서 기어코 언급하는.."

자신의 꿈 이야기로 서두를 이끌었다.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50대 나이의 사무원 차림의 사내가 다가와서 “당신 대학에서 5. 16장학금(이 장학금은 당시 5. 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서울대학교의 우수학생에게 주었던 장학금이다-글쓴이)을 받았네. 그런데 왜 그 뒤에는 왜 반 유신운동에 앞장서는 배은망덕한 일을 했느냐”는 질책의 말을 이어나갔다고 했다. 사실 선생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4년 중 3년 반을 가정교사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그전에 장학금을 받고, 거기다가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것이었다. 사실 당시는 대부분의 대학생이 가난했기 때문에 가정교사를 하는 게 일반적인 풍속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5. 16 장학금을 받은 게 꺼림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남에게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선생은 70년대 문인으로 반 유신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다. 그러나 이날 강의에서는 반 유신대열의 말미에서 활동했던 것처럼 자신을 낮추었다.

그러면서 과분한 비유인지 모르겠다는 전제를 달면서 자신이 받은 5. 16장학금과 지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독일 작가 퀸터 그라스의 소년 시절 나치 병사 복무 전력 고백을 언급하기도 했다. 퀸터 그라스의 나치 소년병 복무 고백 건은 각자 생각에 따라 찬반이 분분할 수 있는 문제이고 좀 더 세밀한 논란이 필요한 것이지만, 한국의 가난한 청년이 당시 막 출범한 군사정권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국립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나는 이 사실을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가 정년퇴임식 자리에서 기어코 언급하는 선생의 자세에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하늘을 우러러 당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식인으로서 선생의 염결성과 윤리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깊은 감동과 함께 어떤 찡한 여운의 감정이 가슴속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이어 선생은 80년도에 정치학자 이수인 교수 등의 도움으로 영남대에 부임했다고 밝혔다.
정치,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서울에서 조금 비껴나 시골에서 공부나 좀 해보겠다고 대구로 작정하고 내려왔다고 했다. 그랬던 것이 어느덧 27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말했다.

선생의 강의는 이어졌다.
며칠 전 서울 인사동에서 길을 가는데 한 중년의 사내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면서 자신은 영남대를 졸업한 동문인데 당시 선생에게서 A플러스를 받았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1980년 5. 18을 전후해서 대학에 장갑차가 주둔하고 출입을 통제해 정성적인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노트나 리포트를 받아서 성적을 처리했는데 그 때 신군부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리포트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사실도 술회했다.


'자본의 악마'에게 영혼이 속아서...

과연 80년 당시 암울하고 급박했던 대학가의 풍경을 강의실에서 선생의 마지막 고별 강연을 듣고 있는 이 신세대 대학생들은 어느 정도나 이해를 할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어 선생은 자신의 스승관을 털어 놓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스승이나 교사는 지식뿐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해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초중등학교 교사는 스승 같은 데 대학 교수는 선생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을 첨언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대학에는 성추행 교수도 있고 정작 연구는 안 하면서 계획서를 잘 써서 연구비를 잘 타내는 교수도 수두룩하다고 오늘날 교수 사회일각의 타락을 질타하기도 했다.

선생은 한양대에서 첫 강사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중등학교 교사 경험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한양대에 출근할 때 뱃지(옛날에는 대학생들이 대학 뱃지를 달고 다녔다.)를 달지 않았다고 수위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40여 년을 대학 강단에서 보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밝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은 미국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얼쇼비치의 이야기를 따 왔다. 얼쇼비치는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바 있고, 그의 ≪희망의 인문학≫이 번역되기도 했다. 얼쇼비치가 뉴욕의 감옥에서 여성 중죄인에게 당신은 어째서 여기 왔나? 어쩌면 범죄를 줄일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빈부차이가 큰 나라이고, 문맹률은 우리나라보다 크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 여성 범죄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중산층과 같은 정신적 교양을 갖게 인문학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클라멘트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실 가난한 사람이 그대로 가난에 머무는 이유는 인문학과의 만남이 제도적으로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가난한가? 라는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게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클라멘트 과정에서는 문, 사, 철과 예술, 윤리학 등 5개 과목을 가르친다.


큰 그늘을 드리웠던 선생의 빈자리...

선생은 고별 강연을 하면서 독문과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인문학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자본의 악마’에게 영혼이 속아서 그렇다는 의미심장한 말씀도 했다. 그러면서 인문학을 하는 게 희망의 프로젝트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희망은 나뿐 아니라 인류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말씀도 거듭 덧붙였다.

27년을 영남대에서 강의를 했는데, 영대 독문과 교수들이 세계에서 가장 사이가 좋다고 말한 동료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어느 대학할 것 없이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의 반목에 대해 조크를 던지면서, 교수들끼리 사이가 좋다는 것은 놀기 좋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공부를 안 한다는 의미도 된다고 말해 청중 속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러면서 80년대 대학생과 그 이후의 대학생들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나 실망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학생의 탓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탓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선생은 타이타닉 호를 예로 들었다.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혼자 탈출하기는 어렵다.
배 전체의 방향을 틀어야하고, 다 함께 배를 탈출해야한다는 시사하는 바가 큰 말씀으로 20여 분의 강연을 마쳤다.
청중들은 열렬한 박수로 선생의 대학에서 공식적인 마지막 강연에 화답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자의 한 사람이자 선구적인 민중문학 이론가인 선생의 고별 강연은 이렇게 끝났다.
평생을 자신의 개인적 안녕보다 이웃과 사회공동체,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고투해온 선생답게 마지막 강연도 이웃과 사회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은 이제 대학교단이라는 공적인 자리를 떠난다.
크게는 대학사회와 한국문단, 작게는 대구지역사회와 영남대에서 큰 그늘을 드리웠던 선생의 빈자리를 앞으로 누가 채울 것인가? 이제 대학은 신학기 개강으로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퇴직과 신임 임용은 해마다 이 맘 때면 겪는 의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누군인가에 따라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선생의 퇴임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해 본 생각이다.

   
[김용락 칼럼 22]
김용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시인. 경북외국어대 교수. daegusc@hanmail.net)
*. 1959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김용락 시인은, 지난 '8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뒤 <푸른별>, <기자치소리를 듣고 싶다>, <민족문학논쟁사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냈으며, 지금도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을 맡아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일보] 논설위원과 [대구참여연대]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경북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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