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널 사랑한단다. 민주야.."

평화뉴스
  • 입력 2007.03.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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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최경화
"누구든 부모를, 장애를 선택하지 않았기에.."


민주가 웃는다.
잠을 자면서 웃는 걸보니 배냇짓이다.
예쁘다는 말에 민주엄마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배가 고픈지 입을 삐죽하더니 울음보를 터트린다.
딸이라고 우렁차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다부지고 우렁찬 울음소리가 마음을 놓이게 한다.

출산 한달째.
젖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지만 아이를 안을 수 없는 엄마대신, 민주는 동네 아줌마가 태워주는 우유를 아주 힘차게 빤다.


좀많지 않을까 싶었던 우유를 다먹고도 쉽게 젖병에서 입을 떼지 않는 민주, 살짝 돌려 뺄려니 젖병 문 입술에 힘을 준다. 배가 부른지 커다란 눈을 뽐내면서 낯선 아줌마를 쳐다본다. 한달밖에 안된 아기가 봐서봤겠냐 만은 나도 냉큼 눈을 맞추고 봤더니 쌍꺼풀진 눈망울이 또렷하다. 건강하다. 몸이 불편한 엄마의 뱃속에서 한쪽으로 잔뜩 치우쳐진 채로 아홉달을 자란 민주는 이렇게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세상나들이를 시작했다.

1급장애인인 민주엄마아빠를 만난 건 지난해 연말이었다.
장애인 부모운동을 하시던 나리어머니께서, 장애를 가진 어린 부부의 사랑과 임신소식을 전하면서 너무 가슴이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메일을 보내오신 뒤였다. 그때 민주엄마는 임신 7개월이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민주엄마는 남편을 만나기전까지 시설에서 지냈고, 자신의 아들보다 몸이 더 불편한 며느리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시집식구들과는 함께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부모로부터의 자립이었지만 마뜩찮아하는 부모와 공간만 달리했을 뿐, 중증장애를 가진 그들에게 경제적인 자립이란 애시당초 있을 수 없었다.

작은 방에서 만난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의 아이를 잉태한 임산부답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임신 7개월이라는 그녀의 배가 너무 작았다. 그녀를 돌보는 나리어머니의 말씀으로는 태아가 한쪽으로 잔뜩 치우쳐져서 배가 크지 않다고 했다.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키시려는 듯, 흔들리는 몸 때문에 그 흔한 초음파를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의사의 소견으로는 태아가 건강하다고 했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요즘 초음파는 무척 정확하며 태아의 얼굴을 컬러로 볼 수도 있을 정도다. 산부인과에서는 초음파로 찍은 태아 모습을 CD에 담아준다)

함께 만난 그녀의 앳띤 남편도 행복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열네살 때 경기도 재활학교에서 중학교 동창으로 만난 이래, 십년의 세월은 강산뿐 아니라 두 사람간의 이해를 우정으로, 우정을 사랑으로 바꿔놓았다. 그 오랜 사랑의 결실을 이제 두달이면 보게 되는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들 부부는 장애를 가지는 순간, 행복이나 기쁨, 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가혹한 댓가를 치러왔다. 특히 성인인 이들에게 휘둘러진, 장애인은 무성(無性)이어야한다고, 무성(無性)일거라고, 무성(無性)이었으면 좋겠다는 강요나 편견, 바람은, 한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앞두고 가장 행복해야할 이들 신혼부부에게 극한 두려움과 걱정을 앞세우게 하였다.

어느 임산부인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확인하기 전까지 건강한 아기의 존재를 염려하지 않겠냐만은 성치않은 몸으로 아이를 가진 한 모성은 하루에도 열두번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지는 않았을까.

노산에 대한 편견이나 주변의 지나친 걱정으로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악몽을 꾸고 밤잠을 설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민주엄마의 아기에 대한 걱정이 영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때 민주엄마는, 자기를 버린 엄마지만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미움도 원망도 없다고, 그저 한번만 보고 싶다고 했다.


생명을 품고 엄마가 보고 싶었던 민주엄마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많이 울었단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면서도 울었다고 한다. 이제, 2.8kg의 건강하고 예쁜 딸아이를 낳았지만 친정이 있어 살뜰한 산후조리를 받을 것이며 형제가 있어 자랑을 할 것인가. 다만 몸이 불편해 일자리 갖기가 쉽지 않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아내와 딸을 지키겠다는 남편이 있고, 세상 부러울 것없는 예쁜 딸아이가 옆에 있어 행복할 뿐.

나중에 민주가 자라서 엄마아빠가 장애인이라고 다른 아이에게 놀림을 받으면 어쩌나, 그래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으면 어쩌나, 이게 제일 큰 걱정이라는 민주아빠는, 오늘도 딸아이를 쳐다보면서 팔불출이 되고 민주엄마는 아이는 엄마의 훈기로 자란다고, 하루종일 어눌한 말인따나 민주야를 불러대고, 자유롭지 못한 손인따나 아기 어루만지는게 일이다.

공주에게 어울릴만한 셔링이 예쁘게 잡힌 핑크색 내복을 사고, 내 아이에게 들어왔지만 남아서 새걸로 둔 방수요랑 여름 옷들, 아기 업는 띠랑 작아서 못입게돼 깨끗하게 빨아서 보관해둔 옷들을 양손에 들고 민주를 보러갔다. 그런데 민주는, ‘아직까지’라는 구태의연한 표현이 조금은 부끄러울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비록 구색을 모두 갖추지는 못했지만 새 이불이랑 새 옷이랑 새 아기용품들 속에서, 자신이 오로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배내옷만 여덟장이 들어올 만큼 민주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태어났다.

네 살박이 아들은 아가야, 민주야를 불러대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민주를 안고 우유를 먹이는 엄마에게 자기를 대신 안아달라고 시샘도 부린다. 아가 우유 다 먹으면 안아주겠다면서 아가 우유 잘 먹는지 보자고 하자 아들은 아가의 발에 비해 엄청나게 큰(?) 자신의 발과 아가의 발을 연신 만져대면서 좋아라한다.

나이 많은 노처녀 노총각은 사회적인 장애인으로 치부되는 분위기 때문에, 출산 전후에 잔뜩 마음이 약해져있던 나는 나이 많은 엄마인 것이, 부족한 것이 많은 엄마인 것이 아이에게 미안해 종종 울었었다. 이제 신체적인 장애인으로 아이를 길러야 될 민주엄마아빠의 마음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지금, 행복하면서도 얼마나 걱정이 많을 것인가?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편견과 차별에 얼떨결에 동승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살리라, 내 어린 아들을 보면서, 연약하지만 강한 생명인 민주를 보면서 다짐해본다.

누구든 장애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고, 누구든 장애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기에, 민주는 이웃이, 사회가 보살피고 키워야할 것이다. 민주가 신체장애가 없는 엄마아빠를 둔 다른 아기들보다 더많은 사랑을 받고 자랄 수 있도록 살펴보자. 자라면서 크고작은 잔병치레야하겠지만, 단단하고 총명하고 어여쁜 민주로 크기를 바란다.


[주말 에세이 32]
최경화(경북대 비정규교수)

최경화(40)씨는, SCN성서공동체FM PD와 영남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경북대학교 비정규교수로 사회학과에서 '매체예술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7년 3월 9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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