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할수록 그리움은 짙어진다"

평화뉴스
  • 입력 2007.03.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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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이진이(방송작가)
"가난한 풍요, 거친 삶이 주는 안온함을 느끼고 싶다"

평화뉴스에서 연재하고 있는 ‘삼덕동 술집골목’ 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늘 오고가는 거리를 색다른 관점에서 하나하나 짚어가는 것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도 10여년 전의 내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해서였다.

오래된 앨범 같은 그 풍경 속에는 영화보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함께 영화모임을 만들었던 친구들, 중고음반가게 우드맥에 앉아서 음악 이야기를 하며 노닥거렸던 친구들도 있었다.

아무런 약속 없이도 만날 있었던 사람들, 따스한 햇살이 내리비치는 삼덕동 문화 1가를 오가던 사람들, 수줍게 웃음을 주고받았던 그리운 얼굴들이 필름처럼 스쳐가기도 했다.

그때 삼덕동은 가난한 우리들에게 더없이 즐거운 놀이터였다.
커피믹스 한잔을 마시면서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맥주 한잔을 놓고도 영화 이야기, 음악 이야기로 밤이 새는 줄 몰랐다. 주머니가 가벼웠지만 한국도서가 있었기에 책도 제법 사볼 수 있었고, 밥 먹을 돈은 아껴도 영화관 갈 돈은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주변에 그득 했으니까 말이다.

그 무렵 찹쌀떡처럼 붙어다니던 후배가 한명 있었다.
나보다 서너살 어린 친구였지만, 우리는 궁합 잘 맞는 부부처럼 늘 함께 삼덕동을 활보하며 다녔다.
돈도 없고, 미래가 불투명했기에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할 때도 많았지만, 우리가 잘못 살고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돌이켜보니, 정말 그보다 더 행복한 시절은 없었던 것처럼, 10여년전 삼덕동에서의 일상은 참. 행. 복. 했. 던. 한. 철.이었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그 후배와 얼마 전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대화 도중 평화뉴스에 난 삼덕동 시리즈 기사를 보여줬다. 나야 지금도 대구에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삼덕동에 가볼 수 있지만, 서울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그에게는 그 기사의 내용이 무척이나 새삼스러웠던 모양이다. 갑자기 서울살이의 팍팍함을 늘어놓더니, 먹고 살기 바빠서 그 좋았던 시절도 잊고 살았던 것 같다면서 속상해했다.

후배는 나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였다. 남들보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웃었다.
알고 싶은 것이 어찌나 많았던지, 눈동자는 늘 호기심으로 반들거렸다. 영화 모임의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영화와 음악에 입문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좀 뒤진다고 생각했던지, 늘 남들보다 두배, 세배, 더 빨리, 더 많이 움직였다. 내가 영화를 한편 볼 때 후배는 두편, 세편을 보고,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서 책 사고 음반을 사 모았다. 제 아무리 머리 좋은 놈도 열심히 하는 놈에게 못 당한다더니, 얼마 가지 않아서 그 후배의 문화적 역량은 놀라울 정도로 성숙해져버렸다.

그러던 녀석이 요즘은 서울에서 맞벌이 해가며, 애 키우고 집안 일 한다고 정신이 없다.
책 읽을 시간도 별로 없고, 영화관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돈 많이 버는 것보다, 조금 가난하게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언제부턴가 그게 아니더라는 것이다. 부동산 광풍, 치열한 경쟁, 말 안 통하는 직장동료들, 교육 문제에 사활을 거는 젊은 부모들 틈바구니에서 자기도 어느새 서울의 보통 생활인이 돼버렸지만,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싶단다.

후배의 꿈은 소박하다.
직장생활 하면서 조금 모은 돈으로 도심 변두리의 작은 집에서 조용히, 즐겁게 사는 것, 자본주의의 달콤함보다는 거친 삶이 주는 안온함을 느끼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치는 전혀 없지만, 아이들이 마구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고, 텃밭에다 찬거리 채소를 키울 수 있는 집이면 좋을 것 같단다. 돈 많이 못 벌어온다고, 성공 못한다고 남편 타박할 일도 없고, 애들 교육문제로 속 끓이지 않는 삶, 그런 인생을 가꾸고 싶었단다.

그게 어디 그 후배만의 꿈이겠는가?
누군들 저 정글 같은 사회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피 터지게 싸우고 싶겠는가?
널뛰는 집값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른 집 애들 과외한다는 소리에 괜스레 조바심나는 삶을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소박한 삶이란 현대인에게 사치가 돼버린지 오래이다.
모두가 가난한 평화를 원하지만 사회의 구조가 그런 것을 허락치 않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정말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하고, 너무 많은 용기를 가져야 한다.
비겁하다고 말해도 좋고, 핑계가 좋다는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만큼 약한 소시민이 아니던가?

사실 삼덕동도 많이 변했다.
10년전, 15년전, 문턱의 닳도록 드나들던 삼덕동의 풍경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덕동’이라는 말과 함께 기분이 묘해지는 것은 그곳에 ‘가난한 평화와 풍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덕동이 변하면 변할수록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다.
좀 궁색한 자기포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리운 시절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움마저 없다면 우리는 ‘지금’을 이겨나가기 너무 힘들 것이다.

훗날 서울의 후배가 대구에 오면 함께 삼덕동에 가봐야겠다.
아직 남아있는 작은 술집에 앉아서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가난한 풍요’를 만끽했던 시절을 추억해봐야겠다. yy


[주말 에세이 33]
이진이(대구MBC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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