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춘 자의 겸양이 더없이 필요한 때"

평화뉴스
  • 입력 2007.04.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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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의 고사성어]
"그대 귀 씻은 구정물을 내 망아지에게 먹일 수 없소"



* 기산지절(箕山之節)

[뜻]
굳은 절개나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기산지조(箕山之操), 기산지지(箕山之志)라고도 한다.

[자의]
: 키 기
: 뫼 산
: 갈 지
: 절개 절

[출전]
한서(漢書) (포선전)


[내용]
중국 전한(前漢) 말의 정치가로 '신(新)' 왕조를 세운 왕망(王莽:BC 45∼AD 23)이 설방(薛方)에게 관직을 주려고 하였으나 설방은 "요임금과 순임금 때 아래로 허유(許由)와 소부(巢父)가 있었는데, 지금 임금께서 요순시대의 덕을 드높이려 하시니 저는 기산의 절개를 지키려고 합니다[堯舜在上下有巢由今明主方隆堯舜之德小臣欲守箕山之節也]"라고 말하며 벼슬자리를 거절하였다.

흔히 가장 이상적인 시대라는 뜻으로 ‘요순시대’를 말한다.
이 말은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성군 요임금과 순임금의 통치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시대에서도 현실을 떠나 숨어사는 은자가 있었다.

중국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동남쪽에 있는 기산(箕山)은 요임금 때의 고사(高士)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은둔했던 산이다. 허유(許由)의 자(字)는 무중(武仲)이며 본시 패택(沛澤)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던 어진 은자(隱者)였다. 그는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도 않았고,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의(義)를 지키고 살았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요(堯)임금은 천하를 그에게 물려 주고자 찾아갔다.
이 제의를 받은 허유는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렇게 천하를 잘 다스리신 요임금께서 어찌 저같이 볼품없는 자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말없이 기산(箕山) 밑의 영수(穎水) 근처로 가버렸다.

요임금이 다시 구주(九州 : 중국 전토)라도 맡아 달라고 청하자 허유(許由)는 이 또한 거절하였다.
더러운 말을 들은 허유는 영수(穎水) 물에 자신의 귀를 씻었다. 이 때 소부(巢父)가 조그만 망아지 한 마리를 앞세우고 걸어오며 그 광경을 보고 허유(許由)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귀를 씻으시오?" 허유가 대답했다. "요임금이 찾아와 나더러 구주(九州)나 천하를 맡아 달라고 하기에 더러워진 귀를 씻는 중이요".

이 말을 듣자 소부(巢父)는 큰 소리로 웃으며 답하였다.
"숨어 사는 은자(隱者)라는 것은 애당초부터 은자라고 하는 이름조차 밖에 알려지게 하여서는 아니 되는 법이오. 한데 그대는 여지껏 은자라는 이름을 은근히 퍼뜨려 명성을 얻은 것이오". 그리고서는 소부는 망아지를 몰고 다시 영수(穎水)를 거슬러 오라 가 망아지에게 물을 먹이며 말하였다. "그대의 귀 씻은 구정물을 내 망아지에게 먹일 수 없소"

뒤에 허유가 죽자 요임금은 기산(箕山) 위에 묻고 그의 무덤을 기산공신(箕山公神)이라 하였다.
이 두 고사(高士)의 절개와 지조를 이른바 기산지절(箕山之節) 또는 기산지조(箕山之操)라 하였다.

구직난이 심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배부른 소리가 될지 모르나,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한 발짝 양보가 얼마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갖춘자의 겸양이 더없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청봉의 고사성어 43]
- 서예가 청봉(靑峰) 이정택 선생님의 글입니다 -

* 1960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청봉(靑峰) 이정택 선생은,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로,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과 <한국 서협 대구지부> 사무국장을지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청봉의 고사성어>를 통해 옛 성현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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