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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간하지 않은 삶이란.."
[주말에세이] 차정옥(동화작가)
"지극한 마음 그리운 날, 쓰라림도 다 벗인 양 살고 싶다"
2007년 04월 27일 (금) 12:35:44 평화뉴스 pnnews@pn.or.kr
   
절친한 친구가 필리핀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일 년이 될 지, 몇 년이 될 지 기약 없이 떠난다기에 오지 말라는 걸 굳이 배웅을 하러 나갔다. 젊은 날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친구를 기꺼이 축하했지만 아무리 좋은 곳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간다고 해도 그를 오래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그 동안 그 친구 덕에 내 삶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떠올렸다. 사람 만나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게 꼭 먼저 전화를 하고, 먼저 안부를 묻곤 하던 것도 그 친구였다. 당분간은 까칠한 내게 먼저 전화해서 안부를 물을 사람이 없겠구나 싶어, 그에게 먼저 전화해서 더 자주 안부를 묻지 않았던 내 무심함을 자책했다.

일을 마치고 들어가는 길에 바람이 좋아서 걷고 싶을 땐, 밤 12시에 불쑥 전화를 해도 눈곱을 떼어 내며 목 늘어난 셔츠에 슬리퍼를 끌고 나오곤 했었던 일도 떠오른다. 동네 공원을 함께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는데 올 해는 바람 좋은 봄밤을 혼자 걸어야겠구나 생각도 했다. 상념이 길어지니 눈이 젖고 마음이 아렸다.

누군가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게 보여준 사랑과 정성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헤어진 연인이든, 오래 못 보는 친구든, 영영 떠나버린 가족이든... 추억의 힘은 때로는 살아가는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가슴 아프게 누군가를 추억하고 그리는 일은 늘 삶의 에너지를 샘솟게 한다. 그 친구와의 추억 덕에 더 씩씩하게 더 감사하며 하루하루 보냈다.

그런데, 며칠 뒤 컴퓨터를 켰는데 네이트를 통해서 그 친구가 쪽지를 보내왔다.
반가움에 채팅이란 걸 해봤다. 애들한테 얘기만 들어봤지, 처음 해 보았는데 그런대로 즐거웠다. ‘ㅋㅋ', 'ㅎㅎ’ 이런 것까지 섞어서 잡담을 주고받았다. 서울에 도착해서 먹었던 저녁이며, 비행기에 내려 처음 만난 필리핀의 첫인상이며, 숙소까지의 경치...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따위 한 시간여 미주알고주알 생중계를 하는데... 이건 원, 이웃에 있을 때 보다 더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눴다.

대화를 끝내고 나니, 잘 지낸다니 반갑기도 했지만, 보내던 날 내 눈물과 며칠동안 그를 추억하던 내 마음이 괜한 사치와 허영인 양 느껴져 혼자 머쓱해졌다.

모든 것이 편리하고 가까운 세상. 그런데 그게 그다지 기쁘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아마 그건 그와 함께 간절하고 애틋하며 지극한 마음이 함께 사라져버렸기 때문일 게다. 갖가지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제는 감정조차도 선택해서 관리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지독한 아픔 따위는 되도록 선택하지 않으려 하다보니 지극한 기쁨과 행복도 모르고 살아갈 밖에.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근래에는 지극한 마음을 가져본 기억이 별로 없다.
병이 될 지극함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참'이란 수식을 붙일 만한 마음도 그다지 없었던 듯하다.

지극한 마음이 그립다.
외로움과 지극하게 통하고 나면 사람이 귀해진다.
사람을 만나서 감정을 나누는 모든 시간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절절히 느껴진다.

만나는 이에게 최선을 다해 감정을 나누고 싶고. 너무 자주 만나면 상대의 귀함을 잊을까 겁이 나고,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껴서 만나는 마음. 좀 더 좋은 얘기를 들려주려고 얘깃거리를 모으고, 감동을 차곡차곡 재우며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던 사이, 얼마나 성장했는가 들려주고 싶어서 두근거리는 그 설렘, 그런 설렘들이 삶을 신선하게 만든다.

또, 불편함과 지극하게 통하고 나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어린 시절 제삿날 쓸 무채를 팔이 퉁퉁 붓도록 썰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무를 채 써는 채칼을 잡을 때마다 그것과 그것을 만든 그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된다.
무 하나 채 써는 내내 기분이 좋다. 그런 감사가 삶을 빛나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깝고 편리해진 세상, 마음의 외로움도 싫고, 몸의 불편함도 귀찮은 인생들이 자꾸 늘고 있다.
그러니 지극함조차 사라질 밖에. 눈물로 간하지 않은 삶이란 밍밍하기 짝이 없어 너무도 맛이 없다. 삶이 좀더 외로워도 좋으니, 불편해도 좋으니, 기쁨이든, 슬픔이든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든, 모두 다 벗인 양 살아가고 싶다.

두보가 이백을 그리워하며 노래했던 그 마음.
'죽어서 헤어지면 슬픔에 목이 메이고, 살아서 헤어지면 가슴은 쓰라리다'는 그 쓰라림이 너무도 그리운 날이다.

[주말 에세이 37] 차정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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