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치하다. 그래서 맘껏 자유롭다"

평화뉴스
  • 입력 2007.04.2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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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조윤숙..
"인생에서 두번째 잘한 선택은 '유치 패밀리' 만든 일"


대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가 미국에서 왔다고 해 동창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옛추억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학교 정문에서 만났다.

미국에서 온 친구는 '미국식'으로 인사를 하겠다며 학교 정문에서 친구들에게 만나자마자 포옹을 하였다. 당황해 하는 남자친구들에게 그래도 한국이라서 뽀뽀는 참았다며 짓궂게 장난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 처음 보는 친구도 있었고, 간혹 얼굴을 간간히 본 친구도 있었지만 우리는 대학교 1학년때의 그 기분으로 돌아가서 놀았다. 학교 다닐 때 너를 좋아했었다고 고백하는 친구도 있었고, 왜 같이 콘서트 간 것을 기억 못하냐고 핀잔주는 친구도 있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우리는 마흔의 나이의 사회적인 위치에서가 아니라 대학교 1학때 처음 만난 그 기분으로 유치하게 웃고 즐겼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 상황에서 옳은지, 맞는지, 이 이야기가 상대를 당황스럽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면서 놀았다. 유치하게 노는 것이 이렇게 마음을 열고 만날 수 있는지, 신기했으며 친구들과 헤어지고도 그 기분을 생각하면서 내내 즐거웠다.

있는 그대로 나를 표현하는 것! 지나치게 유치하리만큼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정말 편하다. 살아가면서 순수했던 학창시절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회적인 상황에 나를 맞추면서 살아간 적도 많았다. 별로 사회적인 지위가 있지도 않지만,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 하는 ‘Social Position' 때문에 나 아닌 나로 살아간적도 많았다.

독특하고 개성 강하고 자유로운 내가 조직에서 10년동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대구여성의전화]가 수직적인 조직이 아니라 수평적인 조직이며, 평등을 지향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여성의전화를 만난 것이다.
여성의전화를 만나지 않았으면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닌, 다른 껍데기에 쌓여 살았을른지도 모른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힘든 삶을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하였는데, 여성의전화에서는 여성으로서의 겪었던 힘든 삶이 이해되고 수용되고 위로받는 경험들을 하였다. 그 경험들은 나의 과거의 삶들이 치유되는 과정이었다.

왜 여성의전화 회원들이 여성의전화를 만난 것이 행복하며, 인생에서 잘한 선택이라고 이야기 할까?
단체가 무슨 사이비 종교도 아닌데, 어떤점이 많은 사람들을 끌리게 하는 매력이 있을까? 그것은 무엇인가 잘 해야만 하고 노력해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성의 삶을 지지하고 수용해서가 아닐까? 유치한 인간의 냄새와 채취를 그냥 사랑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담공부를 시작하고 나는 많이 변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내 삶이 희망과 긍정으로 변한 계기가 되었다.
힘들지만 자신의 모습을 만나고 직면해 나가면서, 나의 모습을 알에서 깨어나듯이 만나지고 다른 여성들의 삶도 만나지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꼭 순위를 매길 수는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두 번째로 잘한 선택이 상담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감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여성의전화를 선택한 이후 가장 잘한 선택은 ‘밴드’를 결성한 것이다.

2005년 9월 친한 친구들이 의기투합해서 ‘밴드’를 결성하였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가장 유치한 이름인 ‘주식회사 유치 패밀리’이다. 복잡하고 무거운 세상에서 일에 치인 사람들이 더 가볍고 더 단순하게 유치하게 놀기 위해서이며, 유치한 사랑, 유치한 분노, 유치한 싸움 등 세상의 모든 유치함을 함께 노래하기 위해서이다.

'유치'라는 건 알몸 그대로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아이를 얼르는 엄마의 말이 얼마나 유치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또 얼마나 유치한가?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우리의 삶이 또 얼마나 유치하리만큼 숭고한가?

인간의 다양한 페르소나(persona)가 있는데 세상에서 보여지는 우리의 페르소나(persona)가 지적이고 교양있어 보여질 수가 있지만, 속 깊은 우리의 본질은 유치해서 그래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유치'라는 단어를 거꾸로 하면 '치유'가 된다.
유치해져야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진정으로 만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다.
이렇게 유치를 신봉하는 나는 정말 유치한가 보다. 그래도 이렇게 유치한 내가 참 좋다.


[주말 에세이 36]
조윤숙(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이 글은, 2007년 4월 13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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