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리대, 정말 '이거다' 싶었다"

평화뉴스
  • 입력 2007.05.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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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이은정...
"천생리대를 선물하는 멋진 남성을 기대하면서.."


천생리대를 들고 남자 교사들에게 물었다. “이게 뭔지 맞춰보세요.”

알록달록한 천에 똑딱단추까지 달린 천생리대를 요리조리 들고 살펴보던 남자 교사들이 갸우뚱거리며 갖가지 엉뚱한 대답을 했는데, 그 중 압권이 ‘손잡이’, ‘마스크’ 였다. 엉뚱한 상상력에 배를 쥐고 웃었지만 어찌 이리 모를까 싶기도 하고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다.

여성의 월경 자체가 불결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터부시 되어왔기 때문에 결혼한 남성들조차 생리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볼 기회가 잘 없었을 것이다.

생리대를 보이는 일은 칠칠치 못한 여자로 치부돼 허리조차 못펴는 극심한 생리통도, 생리 때문에 날카로워지는 신경도 모두 스스로 감내해야만 했다.

많은 여성들이 휴가를 떠나기 전에 미리 약을 먹어 월경날짜를 조절한다거나 삽입형 생리대를 쓰는 것은 여성 스스로도 월경은 불편한 것, 짜증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요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면서 대안 생리대를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일회용 생리대를 새하얗게 염소표백하는 과정에서 다이옥신 찌꺼기가 남는다거나, 미국에서 1980년에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과 관련된 ‘독성쇼크증후군’으로 38명의 여성이 사망한 일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썩는데 백 년이 걸린다는 일회용 생리대를 버리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연간 일회용 생리대 판매가 29억 1천 800만개라니. 그것은 처리과정에서 다시 유해물질을 내뿜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천생리대를 쓰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새지는 않을까, 표나지 않을까, 무엇보다 매번 삶아야 하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생활협동조합에서 천생리대를 사놓고 선뜻 쓰지 못하고 망설였지만 막상 써보니 정말 “이거다!” 싶었다.
똑딱단추는 붙이는 일회용 생리대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고 천의 흡수력이 좋아서 샐 염려가 전혀 없다.

무엇보다 짓무름, 가려움, 따끔거리는 불쾌감이나 역겨운 냄새도 전혀 없다.
생리대를 굳이 삶지 않고 물에 담궈 두었다가 손으로 비벼 빨아도 문제가 없다.
특히, 천생리대는 생리량에 따라 크기와 두께도 다르게 만들 수 있어서 크기별로 사야 하는 일회용 생리대에 비할 수가 없다.

물론, 천을 구입하고 도안대로 재단하고 꼼꼼하게 바느질을 해야 하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단체나 모임에서 함께 모여 천생리대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열기도 하고 천생리대를 팔기도 한다.

함께 모여 생리대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즐겁다.
갖가지 생리 경험과 쓰는 요령을 듣고 이야기 하다보면 여성으로서 내 몸을 새롭게 보게 된다.

무엇보다 천생리대 속에는 ‘월경 = 금기’ 라는 공식을 무너뜨리고 여성의 자의식을 찾는 과정이 있다.

성년의 날(5.21)이 다가온다.
이번 성년의 날에는 천생리대를 선물해 보면 어떨까.
여성들은 물론이거니와 남성들에게도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여성의 생리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천생리대를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멋진 남성을 기대하면서.


[주말 에세이 39] 이은정
이은정(37)씨는 지난 1월까지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과 소식지 <지빠귀와 장수하늘소>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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