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버스 타는 사람들"

평화뉴스
  • 입력 2007.05.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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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정희경(방송작가)...
"그 안으로 들어가면 빛나는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한 할아버지가
소주 한 병을 들고 편의점을 나오더니
뭐라도 묻었는지 손으로 쓱쓱 닦아서는
군복 비슷한 바지의 큰 주머니에 소주를 넣고
자전거에 오르는 지금 시각,
뚜뚜뚜뚜~~~
오전 6시다

신호대기 중인 버스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그때부터
혼자 별별 생각을 다 한다.
‘얼굴빛이 맑은 것으로 봐서
술에 절어 사시는 분은 아닌 것 같고’
‘염색은 왜 안 하셨을까??
하긴 그 모습이 더 멋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자전거까지 갖고 온 걸 보면
이 근처에 사시는 분은 아닌 모양인데..‘
‘궂은 날씨에 다리라도 쑤셨나?’

출렁거리며 다시 출발하는 버스 탓에
후두둑 생각에서 깨어나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에는 몸집 좋은 한 아주머니가 떡 상자를 들고 버스에 오른다.

‘어머나, 벌써 떡집이 문을 열었나?’
‘아유 배고파.’
‘저기 저 상자 안에는 무슨 떡이 들었을까?’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시선이 뜨거웠던지
손수건으로 꽁꽁 싼 물통을 꺼내
한 모금 들이키고는
씨익~~ 날 보며 살인 미소를 날려준다.

봄 개편으로, 아침 방송을 맡게 되면서
요즘 이렇게 이른 시간, 버스를 타는 경우가 많다.
아이 유치원 보내고
느긋하게 아니 게으르게 앉아 시간만 버리다
오후 12시쯤이나 돼야
신문을 펼쳐들기 시작하던 이전과 달리
새벽 4시만 조금 넘어가면 마음이 바빠져 안달이다.

아침형 인간?
대체 누가 그런 말은 만들어낸 거야.
힘겹게 잠을 깨야 하는 새벽마다
툴툴대며 내뱉는 말이지만...
하지만 이렇게 버스 안에서
‘아침형 인간’을 만나는 건 참 좋다.

새벽 출근
오전 퇴근
오후 낮잠
그다지 바람직한 일상은 아니지만,
사이쇼 히로시의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처럼
시간을 잘 활용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허겁지겁 정신없이 달려
버스 속 안으로만 들어가면
그 어떤 아침보다 빛나는 아침이 날 기다리고 있다.

[주말 에세이 38]
정희경(방송작가)




(이 글은, 2007년 5월 4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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