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엄마들, 참 아름답습니다"

평화뉴스
  • 입력 2007.05.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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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락 칼럼]
[서평 - 담장 허무는 엄마들]...
"피로 쓴 듯 아프지만 희망을 보았습니다"


1.
지난 70, 80년대 대구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시내 한 복판과 각 대학 앞에 있던 소위 ‘사회과학 서점’을 기억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일동 옛 매일신문사 맞은편에 있던 신우서적, 옛 시립도서관 골목에 있던 마가서점, 대명동 계명대 앞 청산글방, 영남대 앞 남도서점, 경북대 앞 일청담 서점 등이 얼핏 기억에 떠오르고 시기적으로는 조금 뒤이기는 하지만 반월당의 하늘북 서점도 잊기 어려운 곳이다.

알려진 바처럼 이들 서점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보통의 상업적인 서점은 아니었다. 우선 서점의 주인들이 평범한 장삿군이 아니었다. 학생운동권에서 활동하다가 운동의 전술적인 차원에서 아예 서점을 경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대 지식인이나 운동권학생들이 이곳에서 교양과 새로운 사상의 파고를 탐구했고, 변혁운동의 동향을 엿보기도 했으며, 동지들끼리 은밀한 연락을 주고받는 중요한 포스트 역할을 이들 서점이 담당하기도 했다. 일종의 지적인 사교클럽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이 소중했던 것은 당시 책을 좋아했던 가난한 (운동권)학생에게 책값을 깎아 주기도 하고 외상으로 책을 주기도 했다는 점이다. 나 역시 당시에는 가난한 문청 시절이라 이들 서점을 애용했다.

특히 나는 시내 중앙통에 있던 신우서점의 단골이었다. 처음에 어떻게 해서 인연을 맺었는지는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에서의 추억은 많이 남아있다. 그 서점의 주인은 전 아무개라는 미혼의 여성이었다. 대부분의 사회과학서점 주인이 운동권에서 전술적 전향(?)을 감행한 대학물 먹은 먹물 출신 남성들이었던데 비해 그 서점 주인은 ‘시골 큰누님’을 연상케 하는 통 크고 마음씨 좋은 시골(고령?) 출신 고졸여성이었다. 이 점이 내게는 퍽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서점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운동권학생 뿐 아니라, 문학청년, 학보사 기자, 진보적인 교수들 다양했다. 신간을 읽기도 하고 잡담을 하다가 보면 어느새,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가 된다. 마음씨 좋은 주인 아가씨는 혼자서 식사를 하기 어려웠던지 매번 서점에 있는 손님에게도 빵이나 밥을 제공했다. 당시 나도 그 혜택을 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인데 물론 당시에도 빵을 얻어먹을 때는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사실 예삿일이 아니었다. 책값도 깎아주고 빵까지 사먹였으니 그 서점 영업이 온전할 리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 그래도 몇 년간은 버티다가 결국 그 서점은 사라졌다.

시인 박인환의 싯구처럼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인지 서점은 없어져도 추억은 남아있다. 지금도 그 서점 언저리를 배회하던 내 청춘을 생각하면 어떤 아련한 감회들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 우정과 사랑을 쌓았다. 내가 시인으로 등단한 창작과 비평사의『마침내 시인이여』라는 엔쏠로지를 처음 발견한 곳도 이 서점의 진열대 위였고(아, 그때의 감격이란!), 지금의 처와 연애시절 주로 만난 곳도 이곳이었고, 영남대 교수이던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을 시내에서 만날 때도 반드시 이곳을 약속 장소로 이용했으며, 독문학자이자 우리나라 “최 일급 독일어 번역가”(이건 염무웅선생의 표현이다.)인 대구대 홍승용 교수를 염 선생의 소개로 알게 돼 처음 만난 곳도 이곳이다.

어느 날 그 서점에 경북대 국문과 출신의, 얼굴이 유난히 해맑은 운동권청년이 나타났다. 징역까지 살고 나온 열혈파였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그 청년과 누님같던 서점의 여주인이 결혼했다.(전 씨의 표현에 따르면, 가난한 운동권 제적생 불쌍해서 밥 챙겨주다가 그만 평생 밥을 챙겨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요즘 대구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신창일 선생이다.) 나도 80년대 초반 경북 안동의 어떤 고등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아서 대구를 잠시 떠났다. 일요일에나 가끔 그 서점에 가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아마 서점은 주인 전 씨의 대학 진학과 경영난 등이 겹치면서 끝내 문을 닫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가끔씩 들리는 풍문에 이들 부부가 아기를 낳았는데 ‘장애’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마음씨 좋고 헌신적이었던 부부에게 하느님이 가혹한 시험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은 점차 내 번잡하고 바쁜 일상적인 생활과 관심에서 밀려났다.

2.
지난해 겨울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진행하던 대구기독교방송 시사프로 <라디오 세상읽기>가 ‘성서공동체FM’ 라디오에서 월 1회(매월 넷 째주 금요일 오후 3-4시) 중증 장애아를 가진 엄마들이 자체적으로 직접 제작해 방송하는 ‘담장 허무는 엄마들’ 이란 프로가 화제라고해서 이 엄마들을 모시고 대담을 준비했다. 그때 대담 대상이었던 두 분의 엄마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옛날 신우서점의 여주인이었던 전정순 씨였다. 나는 약간의 흥분과 기대에 휩싸였다.

그러나 정작 그 대담에 전 씨는 나오지 못했다. 이유인즉 딸 신나리 양의 서강대 경제과 입학 면접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 사이 간간이 풍문처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전정순 씨는 우리사회의 불합리한 장애인 시설이나 정책, 편견 등을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싸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 결실을 보는구나 싶어 내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최근 일군의 어머니들과 함께 전 씨가 나를 찾아왔다. 노란 표지의『담장허무는 엄마들』(봄날, 2007)이라는 책을 가지고서.

이 책에는 짱구 엄마 양금자 씨, 창호 엄마 이선희 씨, 도훈이 엄마 주정남 씨, 승현이 엄마 이미숙 씨, 성우 엄마 배하영 씨, 현웅이 엄마 이명숙 씨, 현중이 엄마 전득숙 씨, 세영이 엄마 윤지연 씨, 민정이 엄마 마성희 씨, 강림이 엄마 권한미 씨, 진곤이 엄마 배남숙 씨, 정현이 엄마 우순옥 씨, 용훈이 엄마, 창록이 엄마 이순화 씨, 상원이 아버지 홍석기 씨, 경주 엄마 금영혜 씨, 민지 엄마 박예준 씨, 경임이 엄마 김주영 씨, 훈이엄마 장영화 씨, 나리 엄마 전정순 씨, 박명애 씨(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 나리의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문자 교장, 양범식 특수교사, 장애복지학자 강민희 박사, 김명희 아동발달교육원장의 글이 전체 3부로 나눠져 있다.

책의 편제는 제1부 ‘다음 세상에도 나는 너의 엄마’ 2부는 ‘담장 허물기’ 3부는 ‘아름다운통합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선천적인 장애아도 있고 사고를 당해 후천적인 장애를 얻은 아이도 있다. 책을 펼치기 시작하면 장애아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맞서 고투하는 엄마들의 진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제목이 ‘다음 세상에도 나는 너의 엄마’이다.

나는 이 말 속에서 장애자식에 대한엄마들의 큰 사랑과 함께 어떤 죄책감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글을 읽어보면 엄마들은 아이의 장애가 자기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원죄의식으로까지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엄마들에게 과연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담장 허물기’는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허물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기록이다. 이 담장 허물기에는 엄마들의 피눈물이 서려 있다. 그리고 3부 ‘아름다운 통합 이야기’는 장애아 교육의 새로운 대안인 통합교육에 대한 사례들이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차례 책에서 눈을 뗐다. 너무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서 도저히 더 읽어 나갈 수 없었다. 방외인인 내가 그럴진데 실제로 글을 쓴 엄마들의 아픔과 슬픔은 얼마나 클까? 실린 글들 편 편마다 모두 피로 쓴 듯 아프지만, 그런 아픔을 극복하려는 희망과 불굴의 용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관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이에 맞서 당당히 싸울 때 인간의 가치와 존엄은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인간의 존엄이나, 용기, 희망의 실체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도록 해 큰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박문자, 양범식, 김명희선생과 같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도 큰 소득이었다. 특히 박문자 교장선생님의 글은 기록의 구체성, 따듯한 휴머니즘이 실린 문체 등으로 인해 특히 감동적이었다. 아울러 성서공동체FM 라디오가 ‘담장 허무는 엄마들’에게 과감하게 시간을 할애해 준 것도 뜻있는 시도로 보인다. 지역, 민중 밀착형 방송의 중요한 사례가 될 듯하다.

마지막으로 모든 엄마의 글이 다 의미 있지만 그 가운데 두 엄마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겠다.

“이런저런 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 등 뒤에는 수년이 넘도록 결석도 치료도 한 번 거르지 않았던 모진 엄마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 지금 언제까지 싸워야할지 모를 장애란 친구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싸우면서 정도 들겠지만 때론 알 수 없는 분노, 원망, 시비, 미움 같은것이 나를 성가시게 할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젊음을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는 장애라는 명함을 가지게 되겠죠? 우린 그 고통만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고통이 있다는 걸 아는데서 아는 데서 나오는 연민, 우리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달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결코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고 느낄 때, 장애라는 선을 긋지 않는 ‘내’가 되는 길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세영이! 엄마)


“담당자를 만나서 프로그램을 알아보니 장애유형별, 연령별로 프로그램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아서 마음에 차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자리가 없다. 1년 이상 기다려야 자리가 날까 말까란다. 혹시나 해서 갔는데 주간보호센터에도 민정이의 자리는 없었다. 복지관의 집단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아이는 그래도 선택받은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든 아이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다”(민정이 엄마)

세영이 엄마 글에서 우리는 장애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이들을 단순히 연민의 시각이나 값싼 동정의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를 읽을 수 있다. 비장애인도 언제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그런 구체성을 누구나가 갖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조건이 그러하고 후천적인 환경과 문명의 조건이 그러하다.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에 대한 인식과 관계를 통한 깨달음 속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도 없어질 것이다.

민정이 엄마의 글을 읽으면 우리나라는 장애인 시설이나 정책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 했구나 라는 보다 실질적인 인식에 도달한다. 정책적으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사회정치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인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담장 허무는 엄마들』에서 우리는 새삼 실감하게 된다.

오랜만에 찾아 온 옛 벗과 함께 실존의 부피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을 가능케 해준 ‘담장 허무는 엄마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성서공동체FM [담장 허무는 엄마들]...지난 1년간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http://www.scnfm.or.kr)
성서공동체FM [담장 허무는 엄마들]...지난 1년간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http://www.scnfm.or.kr)


[김용락 칼럼 22]
김용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시인. 경북외국어대 교수. daegusc@hanmail.net)
*. 1959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김용락 시인은, 지난 '8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뒤 <푸른별>, <기자치소리를 듣고 싶다>, <민족문학논쟁사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냈으며, 지금도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을 맡아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일보] 논설위원과 [대구참여연대]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경북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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