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에 대한 근본적인 세 질문"

평화뉴스
  • 입력 2007.05.1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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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한미FTA, 두 나라가 다 같이 이익을 얻을 수 있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미간의 자유무역협정(FTA) 결과를 긍정적으로 보는 국민이 더 많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 중에는 협정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 큰 나라하고 씨름해서 그만해도 잘 했다고 너그럽게 봐주는 사람, 어차피 맞을 매라면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남보다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쓴 웃음을 짓는 사람 등 다양해 보인다.

경제학자를 포함한 경제 전문가의 지지도는 일반 국민보다 더 높다고 한다. 전문가라면 사적인 이해관계나 현실론을 떠나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성찰을 해야 한다. 단순히 시장지상주의에 물들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필자와 같은 비전문가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근본적인 세 질문을 던져본다.


첫 번째 질문은 자유무역의 이론적 근거가 좀 미심쩍다는 것이다. 교과서에는 자유무역의 근거로 리카도의 ‘비교우위설’이 나온다. 갑, 을 두 나라가 A, B 두 상품을 생산하는데 갑 나라 내에서는 A의 생산성이 B보다, 을 나라 내에서는 B의 생산성이 A보다 높다고 하자. 이 때 두 상품 모두에서 갑의 생산성이 을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갑은 A, 을은 B의 생산에 특화하여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두 나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리카도의 설명이다.

비전문가인 필자가 보더라도 비교우위설은 자체는 틀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비교우위설에는 ‘각국이 국내적으로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의 생산에 특화하여 자유무역을 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 과연 각국이 이 전제처럼 특화를 할까? 글쎄다. 특화의 이익보다 독점의 이익이 더 클 경우에는 갑이 두 상품 모두를 생산하여 을에 수출하려고 할 것이다. 또 이미 각국에 A, B 두 산업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특화를 위해 산업구조를 변경하는 데 드는 고통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처럼, 자유무역으로 두 나라가 다 같이 이익을 얻는 경우는 제한적이지 않을까?

또 특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A의 부가가치가 B보다 높다면 A의 생산에 특화하는 갑이 상대적으로 유리해 진다. 갑은 을에 비해 점점 더 부유해져서 두 나라 사이의 격차가 커진다. 또 A가 B보다 더 필수적인 상품이라면 갑은 A를 을을 위협하는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을 내다본다면 을은 ‘특화-자유무역’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당사국의 경제적 이익? 그것이 각국의 자기결정권보다 더 소중한가"

두 번째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높이는 것이 자유무역의 이상이라면 왜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만 추구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 즉 이민의 자유는 같이 추구하지 않는가? 리카도의 가정처럼 갑이 A, 을이 B의 생산에 특화한다고 하더라도 갑 국민 중에 A보다는 B를 생산하는 나라에 사는 것을 더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을 국민 중에 B보다는 A를 생산하는 나라에 사는 것을 더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나라가 서로 이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자유무역의 궁극적 이상에 합치하지 않나?

물론,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대량 이민이 갑자기 발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이민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자유무역과 자유이민을 별개인 것처럼 다루어도 되는가?

세 번째 질문은, 설령 자유무역이 당사국의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킨다고 해도 그것이 각국의 자기결정권보다 더 소중한가 하는 점이다. 자유무역에 지장을 주는 무역 장벽에는 관세 장벽과 비관세 장벽이 있다. 그런데 비관세 장벽 중에는 그 나라 국민의 자유와 행복에 관한 취향 내지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도 있다. 이걸 ‘장벽’이라고 불러도 좋은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런 ‘장벽’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각국의 문화가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다. 생물의 종의 다양성이 중요하듯이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를 원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LMO의 국내 생산과 수입을 다같이 금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 음란물에 대해 엄격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별것 아니게 취급되는 ‘음란물’의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FTA 사례 중에는 ‘공공질서, 미풍양속, 보건위생, 환경’과 관련해 정부가 협정에 위배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조차, 허용사항 열거 (positive list) 방식은 너무 좁다. ‘자유무역을 방해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은 조치는,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차별이 없는 한 모두 허용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후퇴금지 원칙? 체결 당시에 예측하지 못한 변화는 어떻게 하나"

국가의 자기결정권과도 관련된 것으로서, 한미 FTA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투자자와 국가간의 소송 (ISD, investor-state dispute) 제도와 후퇴금지(ratchet) 원칙도 의문이다. ISD는 협정을 위반하는 국가에 대해 외국 투자자가 제3의 국제기구에 제소하는 제도다. 후퇴금지 원칙은 이 협정에서 정한 수준보다 자유무역의 관점에서 더 후퇴하는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제3의 국제기구가 각국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판정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십중팔구 이런 국제기구는 세계기준(global standard)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기준 또는 서구기준을 적용하게 될 것이다. 또 후퇴금지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FTA 당사국이 체결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한 사정 변화가 생길 경우,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한미 FTA를 지지하는 많은 경제 전문가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주기를 기대한다.
한미 FTA를 둘러싸고 수많은 토론이 있었지만 필자는 아직 이에 대한 답을 보지 못했다.

필자는 시장반대론자가 아니다. 시장을 잘 활용하면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 증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왜 언급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문가조차도 자유무역과 한미 FTA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전문가에게는 이미 답이 나와 있는 너무나 쉬운 문제여서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김윤상 칼럼 2>
김윤상(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행정학과 )



(이 글은, 2007년 5월 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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