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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 속의 혹성"
[주말 에세이] 류혜숙...
"갑자기 찾아온 녀석들로 투지가 올랐다"
2007년 05월 25일 (금) 09:27:31 평화뉴스 pnnews@pn.or.kr

CT 촬영은 늘 불만이다.
내 머리 속이 정말 저렇게 검정과 흰색의 명암들로밖에는 차 있지 않는 걸까, 겨우 무채색 덩어리들의 조합이라니.
이건 거의 모욕적이다. 게다가, 특히 이번 경우에는.

내 머리 속에 혹이 있다. 물로 가득 찬 혹.
“요기, 요기 보이지요? 음, 소뇌 근처에. 뭐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고. 두통의 원인이 전적으로 그것에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이 불만족스러운 확인이 지시하는 것은 일종의 반항, 더 나아가 반란, 나를 전복시키려는 쿠데타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누구나 자신 속에 혹성을 가지고 있다.
행성이라고도 하고 별이라고도 하지만, 가끔 뭐가 불만인지 저렇게 시위를 하며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혹이라고 하고, 심한 경우에는 아주 악독한 성질을 품고 예고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조금 소심한 녀석일 경우 악독을 가장한 물기를 품고 나타나는데, 나의 경우가 그렇다.

동공의 뒤쪽이나 저 세반고리관의 곡선 어디쯤에, 혹은 갈비뼈 사이나 허리춤에 느슨하게 숨어 있지, 그렇게 반짝반짝 노란 빛을 발하는 별로, 파랗고 희게 흐릿한 행성으로나 있지, 그러면 어디에 있든 죽도록 이뻐해 줬을 텐데. 혹성만이 시커멓게 저모양이다. 누누이 말했었다. 눈에 안 띄게 박혀 있으라고. 그래도 빛나는 것들은 빛난다고.

물기 품은 혹성이다 보니 잘 자라고 잘 먹고 죽지도 않는다.
태생이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하지는 못하는 물건이라 주는 대로 덥석덥석 거절하는 법이 없고, 배부르면 늘어지는 모습이 가관이다.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떡하니 들어앉은 폼새만 봐도 그 성질을 쉬이 알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월세도 내지 않는 주제에 그 성가심이란!

그 혹성에는 두 사람이 산다. 원래는 한사람이 살았는데 이것 역시 허락 없이 파트너를 들였다.
때때로 무더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는데 그때는 아예 ‘부재중’ 푯말을 걸고 잠자는 게 최상이다.
처음 한 사람이 살았을 때는 나와 부딪는 일이 많았다. 비만 오면 몸이 아파 죽겠는데 저는 좋다고 난리였고, 싸움꾼에 술꾼에, 그러다가도 컥, 말문 막히게 감성적이었다가 피하나 나오지 않을 것처럼 냉정해 졌다가, 한마디로 하루에도 스물 네 번은 족히 변하는 변신 괴물을 무슨 수로 대적할까. 분위기 좋은 술집으로 불러내 부어라 마셔라 고주망태로 만들고 나면 그나마 몇일 잠잠해지긴 했다.

둘이면 좀 나을까? 어디! 처음에는 조곤조곤히 투닥거리더니, 나중에는 치고 박고 싸운다.
지구의 시간으로 따지면 일, 이분 정도가 그 작은 혹성에서는 스물 네 시간이쯤이 된다. 그러다 보니 싸움의 강도도 24배가 된다. 나는 그 꼴을 보면서 처음엔 아주 난감하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중재에 나서보지만 곧 에잇, 참다못해 둘 다 잠재워 버릴 양으로 강력 어퍼컷을 날린다. 녀석들은 잘 쓰러지지도 않는다. 중얼중얼 웅얼웅얼 각자 등 돌리고 앉아서 주절주절. 이러니 머리가 안 아플 수가 있나.

텅 비우는 것이 나을까.
내 속에서 저 혹성을 축출하여 그 두 사람을 우주의 미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나을까.
혹은 완전히 폭발시켜 제거해 버리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작은 알약 크기의 폭탄만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순 악질로 악독한 녀석이었다면 한판 승부 맞짱이라도 뜰 텐데.
그러나 나는 먼저 궁금하다. 도대체 반란의 이유가 뭐냐.

쓰다.
아니, 아니. 저 혹성이 감히 반란을 해서가 아니다.
반란의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궁금함을 가장해 한번 되 물어보는 데에 회유의 속셈이 있는 것도 안다.
다소 병적 과속의 비약일지는 몰라도, 일종의 총체성에 대한 인식이 왔다. 모든 일들이 나의 계획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 갑자기, 문득, 어쩌다, 부지불식간에, 우연히 온다. 오는 듯 했는데 벌써 이미 와 있다. 모든 사건과 생각과 시간과 공간으로 만들어진 생이라는 총체가 기면 발작증처럼 갑자기, 갑자기, 갑자기의 연속이다.

그 갑자기 다가오는 것들과 대적하면서, 대적하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살아간다는 의미다.
갑자기와 갑자기 사이에 있는 눈꼽만한 쉼표에, 그것이 전부인 양 웃고 울고 행복하고 불행해 하면서. 정석도 해답도 없다.

때문에, 그것에서, 그로부터 하나의 증명으로 살고자 했다.
저 혹성의 상태와 행태는 ‘현재’의 나를 가장 단순 명료하게 증명하고 있다.
<중재능력, 없음. 싸움 능력, 없음. 균형감각, 없음. > 이 빌어먹을 증명에 대한 낭.패.감. 나는, 이렇게나 풋내 나고 이렇게나 미미하다.

적어도, 찾기 위해 대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적어도, 저 녀석들의 싸움에서 도망치지 않는다고, 그렇게 용을 쓰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나? 아니. 이번 녀석들의 반란 덕에 투지가 100이상 올랐다. 이것이 나의 기특한 면이지 하고 큭큭 웃음까지 난다. 마지막 증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하나의 인식이 의미하는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야 한다.


   
[주말 에세이 41]
류혜숙(평화뉴스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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