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와 비밀의 태양"

평화뉴스
  • 입력 2007.06.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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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이은임.
"나도 모르게 나를 비춰주던 사람들.."


5월 17일.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을 클릭, 클릭하다가
그 한 줄의 뉴스를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경북 의성. 차로 1시간 거리면 갈 수 있는 곳에서 평생을 사셨는데,
나는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다.

<몽실 언니>를 읽으며 자랐던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됐고,
이제 내 딸아이가 <강아지 똥>을 읽으며 자란다.

그 긴 시간동안, 아무런 교류는 없었지만, 내가 느끼지 못했지만,
그냥, 거기 살아계셨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위안이었던 모양이다.
멍하니 있던 나는 잠시 울었던가...
커다란 상실감과 함께...

그동안 같은 지역에,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가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과 고마움이
그제야 느껴졌다.


5월 23일.
영화 ‘밀양’이 개봉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모자 푹 눌러쓰고, 그냥 슬리퍼 질질 끌고 가서,
별 기대도 없이 봤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사람들은 ‘신’과 ‘용서’가 이 영화의 화두라고들 하는데,
몇몇은 현실 기독교를 부정한다고 하는데...

몇 년 간 기도도 하지 않고, 성당 근처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못 느끼지만,
어디선가, 늘...
비밀스런 ‘태양’이 나를 비춰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돌아온 전도연의 모습은,
마치 ‘몽실 언니’같았다.


밀양.
만날 지나다니던 그곳 지명의 의미가 ‘비밀의 태양’이란다.
그냥, 그 제목이 주는 따뜻함에 대해, 나는 오래 생각해 보았다.
Secret Sunshine...

내게도 너무나 많은 ‘비밀의 태양’들이 있다.
사실 그 ‘비밀’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태양이다.
태양이 옅은 햇살을 흩뿌리면서, 그 스스로를 비밀에 부친다.
여기 있다고, 내가 널 비춰준다고, 생색내지 않는다.

내가 그를 보지 않을 때에도,
화내고, 소리 지르고, 오해하고, 때로는 무관심 할 때도,
나를 비춰주던 수많은 사람들.

권정생 선생님처럼,
어느 날 그 관계가 끊기기 전까지,
나는 어쩌면 영원히 그 비밀을 모르고 살아갈 지도 모른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모든 관계들.
‘나’란 사람은 나와 연결된 그 무수한 끈과,
그들이 내게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한 시간, 느낌, 경험의 퇴적물이다.
아마도, 긴 시간이 지나서야 형태가 드러날 것이다.
그 층층의 무늬를 규정하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때때로,
거미줄에 어리는,
햇살에 반짝이는 무지개를 본다.

하늘을 바라본다.
햇살을 느껴본다.
권정생 선생님이 생전에 했던 인터뷰의 한 토막을 가만히 중얼거려 본다.

『바람도 살고 햇빛도 투명하고 교회종소리도 들려오지.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야.
내가 두 그릇의 물을 차지하면 누군가 나 때문에 목이 말라 고통을 겪는다는 걸 깨달아야 해.
그래야 올바른 세상이 되지』

유월의 첫날이다.
여름이 오고 있다.
이제,
태양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주말 에세이 42]
이은임(TBC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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