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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의 아름다운 지구인으로 살기"
[주말에세이] 이명희.
"처음으로 자동차를 샀다. 내 몸이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2007년 06월 22일 (금) 09:45:42 평화뉴스 pnnews@pn.or.kr
   

얼마 전 중고자동차를 하나 샀다.
새 자동차도 아니고 중고자동차라니...

뭐 특별할 거 없는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대학 때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하고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동안 어쩌다 사람들이 그 흔한 운전면허증 하나 없냐는 이야기를 할 때면 늘 말하곤 했다.
도시에 사는 이상은 운전면허증 딸 생각이 없다고..
또한 자동차를 소유할 생각도 없다고..

그러던 내가 남편을 설득하여 50만원하는 중고자동차를 산 것이다.
출퇴근시 시내버스를 타고, 어쩌다 볼 일 보러 갈 때 버스타고, 지하철 갈아타는 일이 힘들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옮겨야 할 짐이 많거나, 대중교통으로 가기에 애매한 거리 등등 아주 가끔 자동차가 있으면 참 편리하겠다 싶은 상황이 있다.

나보다 더 자동차에 있어서만큼은 타협하기 싫어하는 남편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난 자동차가 필요치 않으며, 먼 훗날 하이브리드차가 저렴해진다면 모를까 그 이전에는 석유에 의존하는 자동차를 소유할 생각이 없다는 그를 어찌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가 있었겠는가..

겨우 '우리가 자동차를 가진다고 해도 출퇴근은 여전히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다.
무거운 짐을 운반해야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많이 불편할 때 그때만 자동차를 사용하자' 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남편이 설득을 당해 주었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없을 땐 아예 포기하고 의존하지도 않던 것이 막상 생기고 보니 슬쩍슬쩍 타게 되었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오늘은 짐이 너무 많아서 혼자 들고 가기엔 힘들어서, 오늘은 버스가 잘 안다니는 곳에 다녀와야 하니까 등등 혼자 나름 이유 있는 핑계를 대며 내 몸이 자동차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아침에 버스에 앉아 짧은 시간이지만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기도 하고, 거리를 구경하던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운전대를 잡은 순간 눈앞엔 수많은 자동차와 신호등, 도로표지판만 보였다.

오늘날 대기오염의 상당 부분을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고 도로정체의 주원인이며, 그로 인해 숲이 있던 자리가 도로와 터널로 변하고 있으며, 자동차를 소유하고 타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자동차에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나 또한 자동차라는 편리한 기계에 아주 쉽게 정복당해 버릴 위기에 놓인 것이다.

어제는 비가 오는 가운데 잠시 나갔다 와서 자동차 문을 잠그고 난 후 한참을 쳐다보고 있자니 이 놈이 “너도 별 수 없지? 너도 갖고 보니까 자꾸 타게 되지?”하며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너무나 부끄러웠다.

올바른 신념을 갖는 것, 건강한 삶의 가치관을 갖는 것 그 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그 신념대로, 가치대로 실천하는 거란 걸 새삼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몇 년전부터 ‘명희의 아름다운 지구인으로 살기’란 메모가 붙어 있다.
집에 온 손님들은 그 메모가 재밌는지 열심히 읽어보기도 하고, 한 두개 읽고 웃기도 하고, 칭찬을 하기도 한다.
메모의 내용은 ‘일회용 랩, 호일, 키친타월은 구입하지도 쓰지도 않는다. 시장이나 마트에 갈 땐 장바구니를 가져가고 소량일 땐 그냥 가방에 넣어온다. 육식은 월 1-2회로 제한한다. 사용하지 않는 전기 코드는 뽑아둔다. 두 달에 한 번씩 흙을 밟는다..’등등이다.

결혼 후 살림을 맡아 살게 되면서 스스로 지키고자 결심한 원칙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잘 보이는 냉장고에 붙여 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메모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겠다. ‘자동차는 주 1회 꼭 필요할 경우에만 사용 한다’라고...

자동차를 소유한지 겨우 한 달 정도 된 지금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는 책제목처럼은 할 수 없겠고, 별거한 부부들처럼 아주 가끔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정도에서 그치기로 마음먹는다. 단 재결합할 가능성은 없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이혼 할 것을 늘 염두에 두고서...


[주말 에세이 45]
이명희(대구사회연구소 사무국장. 전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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