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독서마저 시험지옥?”

평화뉴스
  • 입력 2004.04.2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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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능력검증시험, 학부모와 독서단체 반발
...“감동을 숫자로 매길 수는 없다”




◇ 최근 동화읽는어른모임 회원들이 '독서능력검증시험'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최근 대구시 북구 태전초등학교에서는 ‘독서능력검증시험’이라는 특별한 시험이 치러졌다. ‘전국독서새물결모임’에서 주관하는 이 시험은 1~10까지 단계가 있고, 각 단계마다 30~500권의 책이 시험범위로 정해진다. 시험 신청자는 객관식 90%, 주관식 10%의 시험을 치게 되고,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인증서를 받는다.

대구시 북구 구암동의 30대주부 윤종순씨는 이 소식을 처음 듣고 깜짝 놀랐다. 윤씨는 평소 자녀의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았지만 “시험까지 만들어 독서 지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저마다 느끼는 독서의 기쁨을 객관식 문항으로 만들어 수치화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됩니다. 설사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높은 등급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그것이 책을 읽고 느끼는 감동과 똑같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독서능력검증시험, 책도 읽고 인증서도 받고...학부모 등, 강요된 책읽기는 독서의 본질 왜곡

학부모들 사이에는 윤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동구 신암동의 이모씨는 “저희 아이들도 책을 좋아하지만, 그것으로 시험을 친다고 하면 ‘싫다’는 말부터 먼저 나와요. 시험 때문에 즐거워야 될 독서가 즐겁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교육에 역효과를 불러오는 거 아닌가요?”라며 “아이들 사교육비 때문에 안 그대로 허리가 휠 지경인데, 독서까지 시험을 치면 사교육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독서능력검증시험을 시행하는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독서지도 교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좋은 책을 지정해 시험범위로 하고, 시험난이도를 단계별로 만들어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독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험을 만들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학부모와 독서 관련 단체들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시험을 통해 독서 의욕이 높아지고 자율적 독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강요된 책읽기가 돼버려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등급을 따기 위해 정해진 책을 읽고, 한 등급 오르고 나면 더 높은 등급을 따기 위해 또 책을 읽고 시험을 치는 것은 결국 사교육의 범위를 넓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1일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아동문학학회 등 17개 단체로 구성된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에서 ‘독서능력검증시험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고, 전국어린이도서문화연구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1개 단체에서는 시험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학부모와 독서단체, 반대 성명서와 캠페인 잇따라...“과연 독서까지도 검증이 필요한가”

대구에서도 지난 17일에 치러진 첫 시험에 앞서, 14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전국어린이도서연구회 산하 ‘동화읽는 어른모임’의 대구, 영천, 김천, 경주 등 경북지역의 회원들이 모여 독서능력검증시험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동화읽는 어른모임 경북협의회 회장 황순기(32)씨는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독서능력검증시험을 시행하면서 사교육 기관에 후원을 받아 문제가 되기도 했고, 시험 응시료도 적게는 1만5천원에서 많게는 5만원이나 한다”며 “이런 점을 생각했을 때 선생님이라는 인지도를 이용한 상업적 목적을 배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국가공인기관도 아니면서 각 학교의 도서담당교사에게 시험결과를 생활기록부에 등재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고, 시험신청서를 발송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며 “시험 결과를 생활기록부에 등재하는 것은 학교장의 재량이지만, 만약 그렇게 될 경우 독서보다는 시험결과에 치우쳐 사교육화가 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구 모임의 홍영숙(38) 회장은 “시험뿐 아니라, 출제되는 문제도 어른들의 시각에서 지식을 시험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독서능력검증시험 자체가 사라질 것을 요구하며 끝까지 반대할 생각이고, 가능하다면 교육청에 항의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은 이런 항의가 거세지자, 뒤늦게 “무료로 시험을 시행한 후 결과를 연구하여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이미 접수된 시험료를 환불한 후 시험을 진행했다. 시험연구와 결과가 어찌됐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독서가 "시험을 통해서까지 검증돼야 하나"라는 반발의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pnsun@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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