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화책을 사랑하는 까닭"

평화뉴스
  • 입력 2007.07.20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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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차정옥(동화작가).
"늪이 많은 길, '유치해지길 마다 않는 자세'가 좋아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할 때, 혹은 하고 싶을 때 당신은 주로 어떤 것을 선물하는가? 꽃? 옷? 보석? 상품권? 아니면, 현금?

그런데,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꽤 있다. 값이 매겨주는 물질적 가치가 곧바로 정성의 가치로 연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책만은 받는 사람에겐 지적 우월감을, 주는 사람에겐 고상한 품격을 덤으로 얹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꽤 괜찮은 이 선물이 안고 있는 치명적 딜레마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물 받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독서 취향이 분명하기 때문에 선물용으로 받은 책이 취향에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취향에 맞는 책일 경우엔 이미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반대로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인 경우엔 공짜로 들어온 책이라고 억지로 읽을 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다.

나 역시도 책 선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 돈으로 도서상품권을 사주면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어서 괜찮지만.
그런데 웃긴 것이, 정작 나 자신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을 하고 싶을 때 늘 책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 선물은 경험상 상대가 이미 읽었을 가능성 0%, 선물 받고 읽지 않을 가능성 0%인 선물이다.
이 예측이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왜냐? 바로 그 책은 만화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화책은 책이고, 어엿한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통상 ‘책’이라고 부르는 것들과는 천양지차의 대접을 받는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나중에 어떤 인물이 될지’ 기대가 크지만, 만화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는지’, 걱정이 크다. 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고상한’ 사람으로 이해받지만, 만화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그 뿐인가. 책에 대한 이야기는 ‘토론’이지만 만화책에 대한 이야기는 ‘잡담’이다.

나는 만화라는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저급한 사회인식이 슬프고 때로는 화가 치민다.
사랑을 모르는 자,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했던가? 그 말을 그대로 빌려서 만화책을 두둔하자면, ‘만화 읽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자, 감히 예술을 말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는 사형제의 모순에 대해서 스콧 터로의 ‘극단의 형벌’,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보다 고다 마모라의 ‘교도관 나오키’란 만화책에서 더 큰 깨달음과 감동을 얻었다. 성교육 강사로 일하면서도 몰랐던 에이즈에 대한 오해가 스위스의 젊은 만화가,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자전적 이야기인 ‘푸른 알약’이란 만화책을 보고 비로소 풀렸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가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하루 다섯 시간은 자면서 읽었다. 그러나 오세영 화백의 ‘토지’는 밤 새워 읽었다. ‘도토리의 집’은 또 어떤가? 장애인들의 삶을 비장애인 작가가 이만큼 밀도 있게 그려낸 책을 본 적이 있던가?

우리 사회에 깊게 박혀있는 만화책에 대한 오해는 그 뿌리가 참 깊다.
그리고 원인을 찾자면 끝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화책을 일단 한 수 아래로 보고 들어가는 까닭이 무얼까 곰곰이 생각하다 우리 속에 자리 잡은 지식에 대한 노예 근성을 보았다.

고상한 지식은 결코 재미있게 습득할 수 없다는 생각, 지식은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기에 지적 우월감은 돈이나 명예를 과시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란 생각. 그래서 사람들은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만화책을, 고상해보이지 않는 만화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내가 만화책을 사랑하는 까닭 또한 바로 거기에 있다.
만화가들의 열린 사고와 그들의 자유로운 생각들, 그리고 유치해지길 마다 않는 자세가 바로 진정한 예술가들의 자세가 아닌가 싶어서.

학문이 업인 사람과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 지적 사유의 숲을 헤매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지적 사유의 숲이 세상 어느 곳보다 오만과 자만, 아집과 독선의 늪이 많은 길이란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도 그 늪에 종종 발을 헛디뎌서 오만과 독선의 진흙탕에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그 늪을 피해가기 위해서라도 만화책을 더 열심히 읽는다.
만화책 속에서는 지적 사유의 숲을 자전거로 씽씽 달려도 늪에 빠질 일 따윈 없기 때문에.

혹시 이 글에 공감해서 내게 좋은 만화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좀 어렵겠다. 그게 어떤 탄압을 받아가며 얻은 지혜인데, 거저 달라니...

술 한 잔 사겠다고? 그럼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하지만 술 한 잔 사겠다고 했을 때 내 대답은 아마 ‘죄송하지만 선약이 있어서 다음 기회에...’일 가능성이 99.9%다.
그리고 그 선약이 ‘집에서 만화책 읽기’일 가능성 역시 99.9%이다.


[주말 에세이 48]
차정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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