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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바람 머리 때리는 버스 안에서.."
[주말에세이] 이명희.
"버려라 하셨던 권정생 선생님..버릴 생각 없는 내가 부끄럽다"
2007년 08월 17일 (금) 10:52:28 평화뉴스 pnnews@pn.or.kr
   

지금 내가 일하는 사무실엔 에어컨이 두 대나 있다.
40-50평 규모의 공간이 트여있다 보니, 시원찮은 에어컨 한 대로는 더위를 식힐 수 없어 늘 2대 다 틀어놓고 지낸다. 4층짜리 건물에 4층인데다, 창문이 통유리인지라 창문을 제대로 열수도 없으니 한낮에 열받은 사무실은 꽤나 후끈후끈하다.

에어컨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건 처음인지라,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에어컨이란 놈 때문에 많이 힘들다. 평소 남들보다 더위를 덜 타는 편이기도 하지만, 좀 덥게 지내는데 내 몸이 익숙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루종일 에어컨에 노출된 난 닭살 돋고, 급기야 겨울에 사무실에서 일할 때 걸치려고 놔둔 외투까지 걸치곤 한다. 그리고 틈틈이 에어컨 온도를 높이고(적정 실내온도 26-28도), 한번씩 에어컨 2대 중 1대를 슬쩍 꺼놓기도 했다. 하지만 좀 있으면 금새 온도는 낮춰지고, 2대가 다 돌아가고 있다. 물론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덥겠는가...

사실 사무실 에어컨 보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건 출퇴근 길 버스다.
맘대로 조절할 수도 없는 세찬 시내버스 에어컨 바람은 정말 아침부터 스트레스지수 올려준다.
머리 바로 위에서 내뿜는 에어컨 바람은 책조차 읽지 못할 정도로 내 머리를 마비시킨다.
비록 20분 안에 내리지만, 그래도 머리가 띵~하다

그럴 때마다 생각해본다. 고속버스처럼 조절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고..
심할 땐 이것도 하나의 폭력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에어컨을 끄자거나 온도 좀 높이자고 하면, 난 이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거다. 소심한 난 속으로만 투덜대면서 꾹~ 참고 있다가 내리는데, 후끈 달아 있는 거리는 이럴 땐 따뜻하다고 느낄 만큼 고맙다. 하지만 급격한 온도 차이를 내 몸은 잘 견뎌내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왜 이리 더워할까? 정말 더운걸까? 하고 이래저래 생각해본다.
물론 정말 더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것도 습관일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시원해야 심지어 냉기가 돌아야 시원하다고 느끼는, 몸이 그 냉기에 익숙해져버린...습관적으로 에어컨을 틀고, 그게 돌아가고 있어야 시원하다고 느끼는...

주택 2층인 우리 집은 더운 편이다.
찬물에 샤워를 하고 나와도 조금 있으면 더워지니, 남편은 종종 선풍기를 틀곤 한다.
그런데 이 선풍기가 오래된 것이다 보니, 바람 조절도 다양하지 못하고, 가끔 삐걱 소리도 낸다.
몇 일 전엔 ‘요새 나오는 선풍기들은 기능도 많은 것 같던데’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남편이 얼른 한마디 한다.
"멀쩡하잖아. 그리고 당신이랑 10년을 함께 한 놈인데..."

그러고보니 10년 전 처음 독립해서 자취를 시작했을 때, 활동비도 못 받던 시절 어렵게 장만한 그 선풍기가 탈도 안 나고 지금까지 버텨주는게 참으로 용하다 싶다. 그래 혹 했던 마음 접고 올여름도 이 선풍기로 잘 지내보자 하고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두바이에 삼성이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을 짓는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신문기사를 보며, 그 어마어마한 건물에서 사용하게 될 전기, 에어컨은 도대체 몇대나 될까?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짓는 이런 건물을 자랑스러운 한국기업이 건설한다고 광고하는데, 거기다 찬물 끼얹는 나 같은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 여름 아침 햇살에 자전거로 출근하는 남편에게 손 흔들고, 세찬 에어컨 바람이 머리를 때리는 버스에 앉아 괜시리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 있다.

얼마전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께서는 몇 년전 이라크파병 문제로 시끄러울 때 "자동차를 버려라"고 하셨다.
그 명료한 한 줄엔 많은 것들이 담겨 있기에 내 가슴에 와 박혔었는데, 그새 잊어버리고 자동차를 소유해버린 내가, 그러고도 버릴 생각은 없는 내가 새삼 부끄러운 여름이다.


[주말 에세이 50]
이명희(대구사회연구소 사무국장. 전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이 글은, 2007년 8월 10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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