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11.21 목 21:44
> 뉴스 > 지난 기획.연재 | 기자들의 고백
   
"왜 기자가 됐어요?" - 한겨레신문 박주희 기자
2004년 04월 27일 (화) 11:29:38 평화뉴스 pnnews@pn.or.kr

신문사에 들어 온 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별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기자만큼 좋은 직업이 없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자부심 넘치는 '기자'가 된 지 꼭 1년6개월 뒤부터는 그런 대답을 하지않는다. 내 기준에서 '좋은 직업인 기자'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자'가 다르다는 걸 알게되면서 부터다.

내게 그걸 깨닫게 준 사람은 한 스님이다.
지난해 이맘때 쯤이었다. 취재할 일이 있어 대구 시내에 있는 한 절을 찾았다. 미리 전화를 하고 갔더니 '홍보 담당 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절에도 홍보 담당이 있다는 것부터가 '깨는 일'이었다.

절을 둘러보면서 절에서 운영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소개를 받았다. 어쩌면 그렇게 필요한 얘기를 술술 해주시던지 더 이상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설명 중간 중간에 곁들여지는 '무소유와 나눔'에 대한 강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질에 집착하시면 안됩니다. 결국 빈 몸으로 돌아가니까요. 기자님처럼 사람을 많이 만나는 분들은 사람을 통해서 충분히 베풀 수 있습니다. 움켜쥐려고 하지 마시고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오후에 마감시간을 앞두고 급하게 나간 취재였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님의 얘기를 들었다. 스님 얘기에 적잖게 감명을 받아서 절 문 앞에서 '어려운 이웃돕기 바자회'를 하길래 강정 한 봉지를 샀다. 스님이 강조한 '나눔'을 절 문을 나서기도 전에 실천했다는 뿌듯함으로 차에 올랐다.

차에 타기 전에 스님이 쓴 에세이집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한겨레>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5만원 이하의 선물'인데다 책이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침 신호에 걸려 차를 세운 동안 책을 펼쳐 봤다.
책 중간에 흰 색 봉투가 하나 들어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 봉투를 열어보는 순간까지 '불경에 나오는 좋은 말씀을 적은 인쇄된 편지' 정도로 생각했다.

봉투 안에는 만원짜리 지폐가 들어있었다. 눈 짐작으로 10만원쯤 돼보였다. 11만원이나 9만원을 넣지는 않았을 테니까 틀림없이 10만원이었을 거다.
머릿속에 무소유와 촌지봉투가 뒤엉켰다. 물론 그 전에도 몇번 봉투를 거절한 적은 있었지만 온화한 미소를 띄며 나를 맞아 주던 스님과 사무실에서 일하던 이들이 그 돈 봉투를 준비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째서 내가 촌지 따위를 받는 기자라는 인상을 줬을까’ 자책도 했다. "감사하다"며 책을 받아 들고 나가는 뒷통수에 대고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차를 돌려서 책을 돌려주고 싶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퀵서비스를 불러 그 봉투를 돌려보냈다. ‘책만 감사히 읽겠다’는 쪽지와 함께.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자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늘 그렇게 해오던 터라 별 생각없이 그랬습니다."
늘 그렇게 해왔단다. 그 절을 다녀갔던 다른 기자들이 늘 그렇게 촌지봉투를 받아갔다는 얘기다. 그들도 어김없이 마주앉아서 ‘무소유와 나눔’에 대한 얘기를 나눴으리라. 그 날 깨달았다. 기자라는 명함을 내미는 순간 ‘ 촌지와 갖가기 편의를 누리는 좋은 직업’의 이미지가 예외없이 나한테도 따라붙는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면서 밥벌이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지금도 ‘기자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어디가서 그런 말을 꺼내지 않는다. 적어도 ‘좋은 직업’의 의미가 내 생각과 같아질 때까지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겨레신문 박주희 기자(hope@hani.co.kr)





---------------------------

<기자들의 고백>은,
대구경북지역 기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싣는 곳입니다.
평화뉴스는, 현직 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고백들이
지역 언론계의 올바른 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기자들의 글을 월요일마다 계속 싣고자 하오니
지역 언론인들의 많은 참여와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글을 써 주신 기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화뉴스 http://www.pn.or.kr

이 글이 좋으시면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본 신문에 게재된 기사, 링크에 대한 모든 법적권리와 책임은 기사작성자 평화뉴스 에게 있습니다.
* 평화뉴스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제호 : 평화뉴스 * 편집.발행인 : 유지웅 * 창간.발행일 : 2004년 2월 28일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대구 아00010 * 정기간행물 등록 연월일 : 2007년 3월 14일
(우)41266 대구시 동구 국채보상로 155길 54 (상가동 202호) | 대표전화 053-421-6151 | 팩스 0505-421-61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지웅
Copyright 2008 평화뉴스. All rights reserved. 전자메일 pnnews@p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