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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책을 덮자"
[주말 에세이] 차정옥(동화작가)
"세상과 소통하러 가야겠다. 마음 단단히 먹고.."
2007년 10월 26일 (금) 10:03:32 평화뉴스 pnnews@pn.or.kr
가을이 막 시작되는 어느 날,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모처럼 느긋하게 책 읽을 수 있는 하루를 통째로 얻은 날이라 기분 좋게 사 둔 책을 들고 서재 소파에 앉았다.
한데, 기분이 묘하게 어지러워서 책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

그 어지러움의 정체가 무언지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 채 열댓 장을 넘겼는데, 꾸역꾸역 읽어내려 가는 글들이 손에 든 모래알처럼 뇌에서 흘러나가는 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책이 재미가 없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저자의 책인 데다 전개 방식도 꽤나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즐겁지가 않았다.

책갈피도 끼우지 않은 채 그냥 책을 덮었다. 뭘까? 뭐가 문제인 걸까?
특별히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미뤄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골치 아픈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책에 빨려들지 못하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별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책장에서 다른 책을 골라 읽기로 했다.
그래서 읽지 않은 책들을 주욱 훑는데, 당혹스럽게도 아무 것도 읽고 싶은 게 없었다.
그 책들을 골라서 살 때만 하더라도 빨리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는데...
.
순간, 어지러움의 정체가 나를 확 덮쳤다.
이럴 수가... 지금 나는 ‘책’이 재미없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책 읽기’가 재미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책 읽기가 재미가 없다. 도대체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는 거지?
서재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그동안 내가 읽었던 잡다한 책들을 쳐다보면서 내가 저걸 도대체 왜 읽었던 걸까, 갑자기 막막해졌다.

글자를 깨친 그 순간부터 책 읽는 것이 늘 행복하고 즐거웠다. 책 읽기는 그 자체가 행복한 삶과 동일한 목표였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 그 생각거리들을 가지고 사유하는 즐거움은 정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지도 않고, 알아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늘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읽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런데 책 읽는 일이 재미가 없다니... 몇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까닭을 찾았다.
그러기를 사나흘.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소통하지 못하는 책읽기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처음 며칠은 그 '소통 부재'가 '내가 읽은 책을 함께 이야기 나누어줄 사람이 없음'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소통은 세상과, 현실과, 삶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이십 대에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는 것을 꽤나 즐겼다.
그런데 삼십대 초반 즈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끔찍하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너무도 힘들었다. 감성보다 논리가 앞서고, 삶의 이해보다 판단이 앞서고, 주의와 주장에 현실을 끼워 맞추고, 내뱉는 말을 회의하지 않고, 자기 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주장하고 움직여야 하는 일이 나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했다.
나도 확신하지 못하는 말을 내뱉고, 그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시 또 다른 말들을 내뱉고...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때 내게 필요한 것은 사유였다.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의심할 수 있는 여유가, 회의를 뒷받침해줄 철학이 간절히 필요했다. 나는 내 삶을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오랫동안 해왔던 일들을 다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접었다.

그렇게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 살면서 솔직히 나는 오랫동안 행복했다. 책과 만나는 시간들이 즐거웠고,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찾아가는 사유의 여정들이 늘 충만한 기쁨으로 나를 채워주었다.

그러나 지금에야 알겠다. 그 시간이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세상과 소통하던 시간들이 남겨준 결과물이었다는 걸. 책 속에는 길이 없다. 그 길은 늘 세상 속에 있다. 소통할 세상을 뒤로 한 채 얻는 지식이 얼마나 큰 짐이고 고통인지 절절히 깨닫는다.

어느 시인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 내려갈수록 나무들은 생채기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너무도 멀쩡하다고 가슴 아파했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 역시 너무도 멀쩡한 수피를 입고 있다. 그렇구나. 내 생채기들이 이렇듯 다 나았구나. 그걸 모르고 있었구나. 생채기가 없는 마음에 책과 사유가 어떻게 스며들겠는가.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
나는 이제 책을 덮어야겠다. 다시 내 수피에 생채기를 내러, 세상과 소통하러 가야겠다. 마음 단단히 먹고...




   

[주말 에세이 56]
차정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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