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어머니 같은 선생님으로..."

평화뉴스
  • 입력 2004.05.13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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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원초등 박상자 선생님...
결손가정 남매 2년동안 돌봐준 사실 알려져 화제


스승의 날을 앞두고 최근 대구 교육청 앞으로 흐뭇한 내용이 담긴 편지가 한 통 왔다. 14년 전 초등학생 남매를 친자식처럼 키워준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편지를 쓴 사람은 당시 두 아이의 학부모였던 류태선(서울 강남구 논현동. 55)씨. 지난 1990년 류씨는 남편을 잃고 빚까지 져,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딸 지운이와 3학년이었던 찬우를 몇 달째 학교에도 못 보내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런 류씨의 두 아이를 기꺼이 돌봐준 사람이 당시 대구 동일초등학교에 근무하던 박상자(60) 선생님이었다.

교육청으로 온 편지의 주인공 박상자(60) 선생님.
교육청으로 온 편지의 주인공 박상자(60) 선생님.
지난 12일 만난 박상자씨는 "오래전 이야기가 갑자기 알려져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지만, 한편으로 나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어줘 기쁘기도 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씨는 1988년에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찬우의 담임 교사로 이미 인연이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다른 초등학교로 전근을 오면서 우연히 찬우 남매가 몇 달간 학교에도 못 나올만큼 어려운 상황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하는 어머니 류씨의 모습에 망설임 없이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박씨의 형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찍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2칸 짜리 사글세에서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의 세 자녀를 키우고 있었다. 박씨는 자녀들의 동의도 없이 무작정 두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자녀들은 싫은 내색 없이 오히려 친형제처럼 잘 지냈다.


수업이 끝나면 박씨와 아이들은 학교에서 숙제도 하고, 책도 읽은 뒤 함께 집으로 왔다. 박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매일 아침 도시락만 6개를 준비했고, 5명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도 빠듯해 항상 헌옷을 얻어 입혀야 했지만, 저도 우리 애들도 그때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 류씨의 빚 문제로 하루가 멀다하고 빚쟁이들이 찾아와 아이들과 박씨를 못살게 한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지운이와 찬우에게 "절대 어머니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며 "용기를 잃지 말자"고 격려했다.
그렇게 2년. 박씨의 노력 덕분에 류씨와 아이들은 마침내 다시 가정을 이뤘고, '97년에 이들이 서울로 이사가기 전까도 명절 때 만나곤 했다.

박상자씨는 사실 이들 남매를 만나기 전부터 결손 가정에 아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었다. 첫 아이가 8살 되던 해 남편을 하늘로 보내, 누구보다도 결손 가정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새 학년을 맡게 되면 생활기록부를 보면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안 계신 아이부터 찾는 것이 습관이 됐어요. 어떤 이유로든 한쪽이 빈다는 괴로운 일이고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는 일이니까요."

박씨는 이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일기장을 주로 이용한다. 직접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일기장을 통해 서로 이야기하고, 엄마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게 애정과 관심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물질적인 것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마음씀씀이가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박씨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가출을 시도했다가 집으로 돌아온 아이도 있고, 소년소녀가장에서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된 아이도 있다. 지운이와 찬우 역시 엄마와 같은 박씨의 사랑을 받고 성장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박씨의 세 자녀는 모두 단란한 가정을 이뤘고, 류씨의 아이들도 지운이는 사회에 봉사하면서, 찬우는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며 마음만은 풍족하게 자라고 있다.
박씨는 지난 2000년 퇴직했지만, 지금도 수성구 동원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며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노력한다.

30여년을 어머니 같은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쳐 온 박상자씨.
"선생님이란 말이 퇴색해버린 요즘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보다 훨씬 더 애쓰시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담당한 젊은 선생님들이 몇 배는 더 잘 할 거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박씨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글.사진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pnsun@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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