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2.28과 5.18, 대구와 광주 ”

평화뉴스
  • 입력 2004.05.1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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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덕률의 시사칼럼 14 >
...“ 역사를 잊은 국민에겐 미래가 없다 ”





오늘은 5.18 광주 민주항쟁 24주년 기념일이다. 먼저 24년 전 오늘, 광주에서 권력에 눈먼 신군부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숱한 젊은이와 죄없는 광주시민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그 때의 비극을 딛고 오늘 위대한 광주를 일궈낸 광주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광주시민들은 수준높은 시민의식으로 뜻을 모아, 광주를 세계가 인정하는 ‘인권의 도시’, ‘민주 성지’로 우뚝 세워낸 것이다. 어느새 세계 각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뛰는 일꾼들이 광주를 기억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연구하는 세계의 석학들이 광주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24년 전, 비극의 현장 광주를 비디오에 담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는 최근 지병이 악화되자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알려 왔다고 한다.

오늘도 광주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지도부, 그리고 국내외에서 많은 참배객들이 망월동 국립묘지를 찾을 예정이다. 16일부터 광주 금남로와 전남도청 앞에서는 광주전남 시도민 대동한마당이 열리고 있다.
전국의 민중단체와 5.18 관련 단체들 그리고 광주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영령들을 위로하고 5.18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정신계승 국민대회, 학술대회, 역사캠프, 시민한마당, 노동자문화제, 마라톤 등, 내용도 다채롭다. 덕분에 그 날 억울하게 희생된 젊은이들도 이제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
헛된 죽음이 아니었다고 위안하면서 하늘나라에서만이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파수꾼이 되겠노라 다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고 광주시민으로서는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그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 인권 유린에 앞장섰던 정치인들이 휘젓고 다니고 있고, 전두환씨와 이순자씨가 엄청난 비자금을 몰래 굴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역사 청산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 주고 있다. 1960-70년대의 대표 지성이었던 장준하선생의 의문사 문제조차 아직까지 풀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나라에서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슬픈 현실이,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면서 청산할 것을 청산하고 기릴 것을 기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광주 5.18> 24주년...“민주성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광주 시민은 그 날의 아픔을 잊지 않고 그 때의 아픔과 한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거름으로 승화시켜 쏟아냈던 것이다. 자신과 자기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흘린 피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한마음으로 지혜와 용기를 모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끈질기게 정치권과 중앙정부를 설득했던 것이다. 결국, 아직 진행 중인 과제가 없지 않지만, ‘5공 청산’, ‘광주항쟁 진상 규명’, ‘광주 민주화운동 보상법 제정’,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 조성’ 등을 쟁취해낸 것이다. 아니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파수꾼’이라는 광주시민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광주를 ‘세계 속의 인권 도시, 민주성지’로 키워낸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잠시 대구를 생각하게 된다. ‘대구에도 자랑스러운 역사가 없지 않은데……’ 하고 혼잣말을 뱉게 된다. 그러면서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게 된다. 멀리 올라가지 않더라도 1960년의 2.28 민주화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44년이 지났다.
2.28 학생 민주의거는 이승만 독재를 끝장내게 한 시발점이었다. 1960년 2월 28일, 경북고등학교와 대구고등학교 등 당시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치켜든 민주주의 횃불은 3.15의거와 4.19혁명으로 발전해 결국 한국 민주주의를 세워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인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대구였던가?

하지만 돌아보면 그 뒤 대구의 2.28은 광주의 5.18과는 너무도 달랐다.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았다. 귀찮은 역사로 짓밟힌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특히 30여년 계속된 TK 정권 하에서 2.28민주의거는 잊혀져야 할 역사로 취급받았다. 그러면서 지방정부도 대구시민 자신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표명한 것도 2000년의 40주년 기념행사에 김대중대통령 내외가 참석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28 기념행사라고 해 봐야 대구 기관장과 몇몇 관계자들이 두류공원의 2.28기념탑 앞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치르는 것이 전부였다.

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 내 아들 녀석도 2.28민주화운동을 잘 모른다고 답한다. 대학생들에게 물어도 제대로 아는 학생이 드물다. <2.28 민주의거 기념사업회>가 있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도 대구시민들은 잘 모른다. 2.28 민주운동의 핵심 주역들도 이상하게 2.28 기념사업에서 비켜 서 있다. 오히려 대구가 낡은 지역주의와 수구의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만든 장본인들 가운데는 소위 변절한 2.28세대가 중심에 서 있을 정도다.
심지어 기념사업회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열심히 뛰어서 일궈낸 중앙초등학교 부지의 공원화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어, ‘2.28 기념 중앙청소년공원’으로 이름을 바꿔내는 과정에서 시민단체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 절차가 문제되어, 2.28 기념사업회의 공동의장이 시장으로 있는 대구시와 함께 원망을 사기도 했다.
과연 ‘위대한 2.28정신’의 그림자라도 대구 어느 곳에 남아 있는지, 최소한 2.28 기념사업회에서라도 제대로 기억되고 있고 또 계승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대구 2.18> 44주년...“자랑스런 역사마저 잊어버리고 자존심도 일궈내지 못하는가”


그와 같은 광주와 대구의 차이는 너무도 큰 것이다. 그 차이는 두고두고 광주와 대구의 앞날에 빛과 어둠으로 작용할 것이다. 역사를 잊는 국민에겐 미래가 없다 했지만, 그것은 지역이나 집단이나 개인에게도 통하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아픈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고 자존심을 일궈낸 광주에게 역사는 미래를 기약할 것이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마저도 잊어버리고 자존심도 일궈내지 못한 대구에게 역사는 미래를 기약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지난 2002년 대선과 한 달 전의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광주는 지역주의를 극복해 가는 도시로 평가받고 있지만, 대구는 여전히 낡은 지역주의의 굴레에서 한발치도 나아가지 못한 도시로 손가락질 받고 있지 않은가?
광주는 자신의 아픈 역사 체험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근대 보편주의를 체득함으로써 세계를 향해 열린 도시로 성장했지만, 대구는 그 보편주의 이념을 계승하지 못한 채 닫힌 도시로 전락해 가고 있지 않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24주년 기념일에, 2.28 학생민주화운동 44주년 기념일을 썰렁하게 보낸 대구를 생각하면서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은 필자만의 소회인가? 그래도 금년 2.28 기념일에는 이 <평화뉴스>가 창간된 것으로 위안삼을 수 있었지만 내년 2.28 기념일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2.28 기념사업회에서조차 비켜 서있는 2.28 학생민주화운동의 핵심 주인공이면서 지금도 그 정신을 지키며 살려고 애쓰시는 선배들을 찾아 위로의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허락하신다면, 지금이라도 2.28정신을 제대로 기억해 내고 계승하기 위한 제대로 된 사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의논드려야겠다. 가야할 길이라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길을 내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학교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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