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학부모의 길에 들어서다"

평화뉴스
  • 입력 2008.01.2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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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정희경(방송작가)
"초등학교 예비소집, 가슴 한아름 학원 유인물만 받았다"

아이의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다녀왔다.
괜히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주인공인 아이는 태연하다 못해 심드렁한 표정인데
엄마 혼자 얼굴이 발개져서는 연신 쉼 호흡을 했다.
초보 학부모 티를 너무 냈나 싶기도 하다.

예전 내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과 비교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책상 수가 30개 남짓,
그때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크기는 얼마나 큰 지
함께 따라 온 엄마들, 아빠들이 앉아도 편할 정도였다.
교실 안에 대형 텔레비전도 들어와 있고
컴퓨터도 있고,
요즘은 이렇구나......
입까지 벌린 채 두리번 두리번.
누구나 다 아는 것도
내가 안 보면 까막눈이고,
모르면 촌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걸 실감했다.

“이름 말해 볼래요?”
“집 주소도 알고 있어요?”
“학교에 오면 재미있을 것 같나요?”
“3월 3일 입학식에 오세요”

예비소집은 오후 2시부터였지만
아침 눈뜨자마자부터 마음준비를 했는데 이 네 마디가 전부였다.
정말 이게 끝??
허망했다.

첫 아이 임신 8개월쯤이었을 거다.
만삭이 가까워지면 아이의 성별을 알려줄 지도 모르니까
미리 의사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얘기하자고
남편이 그랬었다.
아기가 나오는 그 순간, 우리가 확인하자고.
그런데, 미처 말도 꺼내기 전에,
‘아들이네요.’
‘..........’

그 경험 때문이었을까.

“예비소집? 그거 어떻게 하냐면...“
“아.. 됐어 됐어.. 내가 가보면 되지.. 말 안 해 줘도 돼.”

무슨 대단한 경험에 나서는 사람처럼
주위 학부모 선배들 말에 귀를 막았는데..
겪고 보니 미리 좀 알아보고 갈 걸...... 싶었다.
5분도 채 안 걸리다니......
말 그대로 예비소집인데
내가 너무 대단하게 생각했구나 싶었는데......

정작 대단한 환영인파는 바로 학교 교문 앞에 있었다.
입학을 축하합니다!
사탕도 주고, 풍선도 주고, 학용품에 가방까지......

♡♡학원
▲▲태권도장
□□학습
★★영어
◇◇논술
학교에서 받은 안내장은 달랑 한 장인데
학교 앞에서 받아들어야 했던
갖가지 학원 유인물은 가슴 한 아름이었다.
보는 앞에서 버릴 수도 없고,
그 유인물 챙겨 드느라 아이 손을 잡을 수도 없었으니......

그래 시작이구나.
실감이 났다.
갖가지 사교육의 유혹을 잘 피하고
무엇보다 맘껏 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믿음을 잘 지키며
늘 아이를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고난도 학부모의 길에 내가 들어선 것이다.

휴~~
이제부터는 진짜 긴 호흡이 필요할 것 같다.

[주말 에세이 66]
정희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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