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의 '한글' 첫 경험

평화뉴스
  • 입력 2008.02.0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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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이진이(동화작가)
"아직도 미지의 세계, 알아갈수록 가슴이 요동칠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웃을 일일지 몰라도,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글을 읽을 줄 몰랐다.
그 무렵 부모님들은 다들 그랬듯이, 우리 부모님은 먹고 살기 바빴고,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식 교육이 절실하긴 했으나 현실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유치원은 좀 사는 집 아이들이나 다니는 것인 줄 알았던 시절, 한글은 취학 전에 미리 깨치지 않아도 학교에 가기만 하면 으레 다 알게 된다는 것이 그 당시의 통념이었다. 1학년 1학기 안에 한글을 깨치지 못한다면, 그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 따름이었다.

나는 정상적인 아이였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간지 한두달 만에 한글을 다 깨쳤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 앞에서 국어책을 큰소리로 읽는 시험을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시험에 통과하는 것이 1학년 신입생의 최고 과제였던 것 같다. 무척이나 떨렸지만, 나는 무사히 국어 교과서 몇 쪽을 또박또박 읽었고, 제법 잘 읽었다고 해서 상까지 탔었다.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타본 상, 나는 TV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상장을 흔들면서 엄마를 부르면 집으로 달려가는 상상을 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자식이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받아오는 상장을 보고 무척이나 감격스러워 하셨다.

지금도 교감선생님 앞에서 국어책을 읽던 내 모습과, 상장을 받아들고는 거기에 적힌 글을 한자한자 짚어가며 읽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글에 대한 나의 강렬한 첫 경험. 한글은 한두달이면 쉽게 깨치고 읽을 수 있을만큼 쉬운 말이었다, 그것도 여덟살짜리 여자아이에게조차도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한글에 얽힌 또다른 체험 하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우리 국어선생님은 좀 유별난 분이라서 국어시간에 우리에게 에스페란토어를 가르쳤다. 이제 갓 알파벳을 배운 중학생에게 에스페란토어가 왠말인가 싶겠지만, 솔직히 에스페란토어가 영어보다 읽고 쓰기 쉬웠다. 발음 규칙에 예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어선생님이 국어 수업을 등한시했던 것은 아니다.
그 선생님의 교수법이 좀 별나긴 했지만, 우리말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강했던 분이었다.
에스페란토어를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예외적인 발음 규칙 없이, 알파벳을 소리나는 대로만 읽을 수 있다면, 언어의 장벽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고, 나아가서는 한글의 우수성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한글이 알파벳처럼 풀어쓰기를 한다면 에스페란토어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게 선생님의 주장이었다. 한글이 지금처럼 사각틀 안에 갇힌 것은 한자가 그러한 모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표음문자인 한글이 표의문자인 한자의 표기 방식을 따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같은 표음문자인 알파벳처럼 풀어쓰면 한글의 가능성은 더욱 무궁무진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채기 힘들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때 그 수업이 나에게 생생한 체험으로 남아있는 걸로 봐서, 나는 분명히 선생님의 의견에 많이 동의했던 것 같다. 아니, 실제로 한글을 풀어써보니, 생각보다 쉬웠고, 알파벳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그때 국어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아름다운 우리말과 가장 우리말다운 글쓰기는 지금도 내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말이 그처럼 아름답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있으며, 영어나 한자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학창시절에 영어를 무척 좋아했다. 아울러 국어도 좋아했다. 그래서 다른 과목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국어와 영어는 항상 상위권이었다. 수학, 체육, 과학, 가정 선생님에게 나는 문제아였지만, 국어선생님에게는 눈에 띄는 제자였고, 영어선생님에게는 평균점수를 올려주는 기특한 학생이었다. 영어를 좋아했던 건 국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언어는 서로 상통하는 것이니까.

국어를 좋아했고, 아울러 영어를 곧잘 했던 건,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말로 쓰여진 아름다운 시와, 밤을 새워 읽어도 좋았던 소설책들이 나의 사춘기를 풍요롭게 만들었고, 그것이 국어를, 또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늦게 배운 한글이었으나, 글읽기를 즐겼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글쓰기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지금은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글쟁이가 된 것도 그때의 소중한 경험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한국어는 단순히 대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 그 이상의 무엇이다.
나에게 한국어는 피와 살 속에 흐르는 그 무엇이며, 나의 영혼을 규정하는 그 무엇이며,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 인생관을 집약해주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 한국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한글이 없었다면 나는 ‘그 무엇’을 제대로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하얀 백지를 꺼내서 당신의 생각을 가장 빨리, 가장 손쉽게 써보라. 영어로 쓰시겠는가? 한자로 쓰실 건가?
아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한글로 쓰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한글로 표기된 모국어라는 것이다. 물론 한때이긴 했지만, 영어를 전교 1,2등 하던 나도 영어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영미권의 유치원생보다 못했다. 그것이 바로 외국어라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영어광풍이 불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는 요즘, 내가 한글과 처음 만났던 그 짜릿했던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한글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던 중2 국어시간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직도 나에게 한글은 신천지 같다. 내가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잔뜩 숨어있는 것 같고, 그 세계를 하나씩 알아갈수록 가슴이 더욱 세차게 요동칠 것 같다. 한글은 정말 재미있고, 경이로운 언어다. 한글로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음에 다시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주말 에세이 68]
이진이(대구MBC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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