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특권 하나도 악용하지 않기를” - 경북일보 김정혜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4.05.1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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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 저녁 우연히 보게 된 엠비씨 2580. 기자는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하나하나 꼬집어 내고 있었는데, 혀를 끌끌 차는 아버지와 달리 내 속은 내내 불편했다.
동네 삼류 기자를 자칭하는 나는, 아무튼 이 직업을 갖고 나서 저들보다는 조금 스케일이 작은, 그러나 이제 그것이 인지 아닌지도 감이 잘 안 올 정도로 서서히 잊어버리고 있는 그런 특권을 누리고 있다.
공짜 전화. 혈세로 제공되는 식사와 음료수. 편안한 휴게실=기자실. 정보공개청구 없이 속전속결로 되는 자료청구권. 무조건 연결되는 전화통화...이외에도 많지만 다른 건 스스로 거부하고 있어 기록하지 않으련다.

1년에 한번 있는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은 많은 양의 자료를 공무원들에게 요청한다고 한다.
되지도 않는 것들을 무조건 요구한다는데, 죽어라 고생해 갖다줘도 좋은 얘기는커녕 목에 깁스하고 지랄할 것이 분명한데 준비하는 공무원의 심정은 오죽할까.
그리고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여러모로 더 나을텐데 말이다.

자료를 요청하는 김모기자의 전화.
회사의 열악한 노동 조건이나 불평하면서 현장은 가지 않고 앉아 지껄이는데, 좋은 기사가 아닐 것이 분명한데도 안주면 더 나쁘게 쓸 것이고...알려주는 공무원의 마음은 편하겠나.
게다가 기자들의 잘못된 특권의식은 국회의원처럼 고발될 일도 없다. 어찌보면 더 위험한데...

'기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선배의 가르침에 감동하는 표정을 지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요즘은 특권이란 생각도 종이처럼 얇아지고 있는지, 못하게 되면 받아들이기는커녕 도리어 화를 낸다.

'거대한 강물도 조그만 샘물에서 비롯되고 거대한 떡갈나무도 조그만 상수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오스카 와일드).
우수한 펜은 아니나 손놓을 그 날까지 “작은 특권 하나도 악용하지 않기를” 내게 경고한다.

경북일보 김정혜 기자(tolerance@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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