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투기'

평화뉴스
  • 입력 2008.03.03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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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과잉투자 부른 선정 과정..왜 로스쿨만 '특별대우'하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가인가 결과가 알려지자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럽다. 다행히 우리 지역은 신청 학교인 경북대와 영남대가 모두 선정되었지만 다른 곳은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고려대학은 배정된 학생 정원이 적다면서 가인가를 반납하겠다는 말까지 꺼냈다. (물론 슬그머니 도로 집어넣었다.)

일반 국민은 대학이 왜들 이러는지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 이유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로스쿨 선정 과정을 투기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투기’라고 하면 우리에게 제일 친숙한 것이 아파트 투기다. 분양 즉시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을 뿐 아니라 세월이 지나면서 더 큰 불로소득이 발생하기 때문에 너나없이 아파트 분양에 가세한다.

로스쿨도 그렇다. 로스쿨을 유치하는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는 당장 학교 명성에서 차이가 난다. 또 법조인 동문을 배출하는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는 미래의 동창회 위상에서 상당한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너나없이 로스쿨 유치경쟁에 뛰어 들었다.

부동산 투기가 그렇듯이 로스쿨 투기도 심한 부작용을 낳았다. 로스쿨 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학교마다 급하게 교수를 채워 넣고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건물을 지었다. 이렇게 무리를 했으니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도 낭비고, 특히 탈락한 학교의 손실은 말할 것 없이 크다. 탈락한 학교의 총장 등 간부는 학내외의 심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로스쿨 준비에 몰아주느라고 교수정원도 예산도 제대로 배정받지 못했던 학내 다른 학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또 지역사회나 동문도 도대체 학교는 무엇을 했느냐고 비난한다.

왜 이런 투기판이 벌어졌을까? 로스쿨 논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었고 주관 부서가 사법부에서 시작하여 행정부로 넘어갔으며 개인이 아닌 위원회가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사공이 많은 (또는 없는) 배처럼 어느 주체도 투기 문제를 포함해서 전체를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미 4년 전에 로스쿨 투기를 지적하는 논문을 쓰고 이곳저곳에 알렸지만 어디에서도 반응이 없었다.)

로스쿨을 계획만으로 심사했다면 적어도 과잉 투자는 막을 수 있었다. 계획만 심사하여 가인가를 한 다음 실천 상태를 봐가면서 본인가를 했어야 했다. 계획과 실천을 평가하여 입학정원을 배정한다면 경쟁 유인도 충분하다. 또 처음부터 로스쿨 숫자를 지역별로 지정한 다음 기존 대학에 부설하지 말고 독립시켰으면 학교별 투기는 없었을 것이고, 로스쿨 교수도 기존 각 대학의 우수한 교수만 골라서 채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설 로스쿨을 중소도시에 배정했으면 지역균형을 위해서 더 좋았을 것이다.

사실 로스쿨은 처음부터 좋은 안이 아니었다.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어려운 길을 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변호사 수가 부족하다면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이면 된다. 돈 때문에 국민이 법률 지원을 못 받는 게 문제라면 국민건강보험처럼 국민법률보험을 두면 된다.

전문 변호사를 양성해야 한다면 사법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전문 분야별로 재교육하는 것이 더 낫다. 예를 들어 화학전문 변호사에게 필요한 화학 지식은 학부 화학과에서 가르치는 학술 지식보다는 화공업계의 실무 지식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또 의사처럼 변호사 자격을 이원화해도 된다. 사법시험 합격자에게는 일반변호사 자격을 주고 재교육을 충실히 받으면 전문변호사 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또 로스쿨로 인해 국민이 누리는 법률 서비스가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일반 국민은 돈이 무서워 변호사를 이용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런데 앞으로 배출될 변호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더 비싼 교육비를 들였으므로 수임료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변호사 수가 대폭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물론 대폭 늘어날 것 같지도 않지만) 전반적으로 수임료가 내리기보다는 수임료와 서비스 질의 양극화 현상이 생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로스쿨 기준에 따르면 학교 시설과 교수 처우가 대학의 일반 수준보다 훨씬 높다. 왜 로스쿨만 특별히 대우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로스쿨을 빌미로 법학도에게 우월감을 심어주고 법학 교수에게 특혜를 주고 그런 학교에서 배출된 법조인에게 특권의식을 조장하려는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이 사실이라면 사법개혁은 도로아미타불이다.

<김윤상 칼럼 9>
김윤상(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법과대학 행정학과 )



(이 글은, 2008년 2월 20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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