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한 개 200원, 밑지고 팔아요"

평화뉴스
  • 입력 2008.05.0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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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골 어린이 나눔장터
..."아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사회' 보여 주고 싶어요"

물건을 사고 파는 어린이들..[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이 마련한 '어린이 나눔장터'(대현1동 어린이공원)
물건을 사고 파는 어린이들..[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이 마련한 '어린이 나눔장터'(대현1동 어린이공원)


"인형 한 개에 200원, 밑지고 팔아요! 물건도 좋아요"
"호박 모종 하나에 200원, 봉숭아 씨, 해바라기 씨는 한 봉지에 100원입니다. 사가세요"

낮 최고기온 영상 26도의 화창한 날씨를 보인 5월 5일 어린이날, 대구시 북구 대현1동 어린이공원이 옛 시골 5일장처럼 왁자지껄하다. 이 날은 대구지역 주민공동체 <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이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나눔장터'를 연 날이다.

주인공인 동네 아이들은 직접 '전'을 열고 옷가지와 생활용품, 장난감과 먹을거리까지 갖가지 물품을 펴놓고, 또래 친구와 동네 주민들을 맞았다. 이날 장터에는 어린이와 자원봉사자, 주민을 비롯한 200여명이 다녀갔다.

어린이들은 재래시장에서 에누리를 하는 어른들의 흉내를 제법 내며, 물품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 보세염'...정유진 어린이
"여기 보세염"...정유진 어린이
"밑지고 팔아요. 물건도 좋아요. 한번 보시고 가세요"
큰 소리로 '호객'을 하고 있는 여자 어린이가 눈에 띄었다.

"이름이 뭐야?"
"유진이요. 정유진..."

신암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유진이(12)는 이날 친구와 함께 13개의 물품을 준비해 가게를 열었다.

"뭘 갖고 왔니?"
"학용품이랑 꼬마 때 갖고 놀던 인형이랑 안 쓰는 손수건 깨끗이 빨아서 갖고 왔어요"



유진이는 장터에 전을 펼친 지 30분만에 6개나 팔았다며 기뻐했다. 장터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냐고 묻자 유진이는 "학교에서 전단지 보고 친구랑 같이 준비 했어요"라고 말했다. 너무 싸게 파는 거 같은데 아깝지 않냐고 하자 아이는 "어차피 집에서 쓰지도 않고, 버리긴 아까운 거 모아서 갖고 왔어요. 친구들이랑 어울릴 수 있고, 다른 친구들 도울 수도 있고... 아깝지 않고, 오히려 재미 있어요"라고 했다.

동네 아이들의 방과 후 공부를 돕는 감나무골 '작은학교'에 딸을 보내고 있는 주부 김미숙(35)씨는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친구에게는 소중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이 될 수 있잖아요. 이웃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를 지은이(7.신암초교 1년)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집에서 기르던 호박 모종이랑 가지 모종, 해바라기 씨, 복숭아 씨를 팔러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집에서 기르던 호박 모종을 설명하고 있는 김미숙씨와 딸 지은이
집에서 기르던 호박 모종을 설명하고 있는 김미숙씨와 딸 지은이


"한 날, 우리 승현(11.신암초교 5년)이가 학교에서 전단지를 하나 갖고 왔어요. 읽어보니 감나무골 어린이나눔장터를 홍보하는 내용이더라요. 어린이날에 놀이공원 가는 것도 좋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 아이들에게 공동체 정신을 길러주는 것도 좋겠다 싶어 아들 손 잡고 나왔습니다. 근데 장사가 너무 안되요. 좀 팔아주세요. 호호"
아들과 함께 온 배승희(40.여)씨가 말했다. 아들 승현이는 "제가 어릴 적에 읽던 위인전인데요. 아저씨도 한번 읽어보세요. 내용도 참 좋아요. 단돈 200원"이라면서 제법 '행상' 흉내를 냈다.

예쁜 페이스페인팅
예쁜 페이스페인팅
어린이나눔장터 말고도 아이스크림과 떡볶이 등을 파는 먹을거리 장터, 페이스페이팅, 헬리곱터 만들기를 비롯한 놀이마당, '감나무골 생명가게'의 환경물품 판매 행사도 열렸다.

특히 아이들의 인기를 끈 것은 먹을거리 장터였다. 더운 날씨 탓에 아이스크림은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으며, 자원봉사를 하는 어머니들이 만든 떡볶이와 김밥도 인기를 끌었다. 고

양이 얼굴, 무당벌레 모양, 하트 등를 그려주는 페이스페인팅에도 아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애기 아빠가 <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 초창기 멤버예요. 결혼과 함께 감나무골을 알게 돼 13년째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어요. 오면 올수록 사람이 참 좋더라고요. 이젠 애기아빠 보다 제가 더 열심이죠"

떡볶이를 만들고 있던 주부 이수정(39)씨가 말했다. 이씨는 "자주는 못 와도 한 달에 한번은 감나무골을 찾아 홀몸 어르신들에게 반찬 봉사를 해주고 있어요. 봉사정신, 이런 거 같이 우리가 평소에 모르게 지나칠 수 있는 소중한 것을 자라는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래요"라고 덧붙였다.

먹거리코너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팔고 있는 이수정씨(사진 맨 왼쪽)
먹거리코너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팔고 있는 이수정씨(사진 맨 왼쪽)


이날 장터는 <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 회원들이 어린이날을 맞아 지역 아이들과 함께 뜻 깊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 마련됐다. 감나무골 '작은학교' 실무를 맡고 있는 이춘희(42.여)씨는 "아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물물교환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개념을 길러주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 특히나 요즘에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이 없다"면서 "물건을 사고 팔면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 게 하고,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장터를 열었다"고 덧붙였다.

'감나무골'은 대구시 북구 대현2동에 있는 작은 동네로 옛부터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골'로 불리고 있다. 칠성시장과 경북대학교 사이에 있으며 6.25 피난민들이 신천이 흐르는 이 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은 방과 후 대안학교인 '작은학교'와 친환경 재활용 가게 '생명의 가게'를 열고, 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지역 공동체를 일궈가는 단체다.

친환경 코너에서 '쌀뜨물 발효액'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는 감나무골 '생명가게' 자원봉사자
친환경 코너에서 '쌀뜨물 발효액'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는 감나무골 '생명가게' 자원봉사자


<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은 장터 수익금의 50%를 가난하고 아픈 다른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기부할 예정이다. 이춘희씨는 "큰 액수는 아니겠지만 아이들이 직접 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나눔과 기부의 의미를 알아갈 수 있도록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을 통해 수익금 일부를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밥을 썰고 있던 주부 홍정애(51)씨는 "칠곡에 살거든요, 북구 태전동. 거리가 조금 멀어 자주 오진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은 감나무골을 찾아 아이들에게 책읽기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날 우리 지역 아이들에게 나눔의 의미를 일깨워준 어린이나눔장터. 감나무골, 이날 만큼은 들꽃같이 아름다운 공동체,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리고 공동체를 이야기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물품 정리를 도와주고 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물품 정리를 도와주고 있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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