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죽 맛있게 드시던 어머니..."

평화뉴스
  • 입력 2008.05.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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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시어머니 모신 대구 이월향(73)씨.
..어버이날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아이고... 어머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저보다 더 기뻐하셨을텐데...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덕분에 제가 이런 큰 상을 받습니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23세 되던 1958년에 시집을 왔다고 한다. 아주버니가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자 차남이었던 남편은 그 이후부터 '장남 노릇'을 했다고 한다.

결혼한 지 어느덧 51년... 반세기가 넘는 51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셨다. 특히 20여년은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하는 홀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었다. 그녀는 이번 어버이날을 맞아 나라에서 주는 '큰 상'을 받는다.

"'고마 마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은 아예 입 밖에도 안나왔어예.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 한 것 뿐이라예. 카고 그 어른(시어머니)이 내한테 참 잘해주셨어예. 어머니 덕에 이런 상도 받고... 어머니한테 감사한 마음 뿐이지예"

지난 6일 대구시 중구 대봉1동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월향(73.여)씨를 만났다. 이씨는 7일 오후 6시 대구시 중구 아카데미극장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한다. 어버이날을 맞아 상을 받는 대구지역 5명의 효행공로 수상자 가운데 국민훈장 수장자는 이씨가 유일하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20여년 동안 간병, '효'를 실천해 온 것이 그녀의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 이유다.

이씨는 1958년 8월, 슬하에 8남매를 뒀던 박관불 할머니의 차남 김광연(77)씨와 결혼했다. 이씨가 시집오기 몇 해 전, 시아버지는 6.25 전쟁 때 지병으로 숨졌고, 장남이었던 아주버니 역시 6.25 때 학도병으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이때부터 남편 김씨는 장남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결혼 후 이들 부부는 대구 칠성시장에서 노점상부터 시작, 자수성가해 단란한 가정을 이뤘다. 이씨는 "그 때는 어머님도 정정하셨고, 다들 고생은 했지만 참 행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1988년, 박관불 할머니가 화장실에서 발을 헛디뎌 무릎을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 때 박 할머니의 나이는 85세였다. 부부는 병원을 찾아 할머니의 다리 수술을 하려 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이들을 말렸다. 박 할머니가 워낙 고령이라 마취를 하면 더 좋지 않는 상황이 올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부는 수술을 포기했고, 이때부터 시어머니를 위한 이월향씨의 헌신적인 간병이 시작됐다.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 재활을 위해 1주일에 3회씩 어른을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 20여년을 한결 같이 시어머니의 손과 발이 된 이씨였다. 그 와중에서도 이씨는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한편, 시누이와 시동생을 모두 교육시키고 출가시켰다.

3명의 딸을 모두 출가시키고 6명의 외손자.손녀 뒷바라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남편은 "이 사람 내조 덕에 동생과 누이들 모두 교육시키고, 출가시킬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형제와 어머니한테 얼마나 잘했는지 몰라요. 그 고생 내가 압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효심과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평소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5~6년 전부터 매월 지역의 홀몸 어르신들에게 익명으로 성금을 내고 있다. 대구시 중구 대봉1동 주민자치센터 사회복지 담당하는 손달인(55.여)씨는 "연세가 많으신 데도 불구하고 매년 어버이날이나 노인의 날이 되면 지역 경로당을 방문해 조촐한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담당은 "아마 이월향 할머니가 집안에서부터 어르신을 섬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그러한 선행을 할 수 있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13일. 이씨가 극진히 모시던 시어머니 박관불 할머니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5세. 남편 김씨는 "조금만 더 살아계셨더라면 '훈장' 받는 이 사람 모습 보고, 칭찬해 주셨을텐데..."라며 울먹였다. 그는 "이 사람 고생 진짜 많이 했어요. 고맙죠... 내가 못하는 거 이 사람이 다 해주고, 연세가 많아 수술 말리던 여든다섯만 해도 고령인데 몸 불편하신 그 어른을 그때부터 수발해 100살이 넘는 천수를 누리게 했으니 얼마나 고맙노..."라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어버이날이 다가오자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이 더욱 난다는 이월향씨. 그녀가 시어머니를 회상한다.
"위가 좋지 않던 어머님 위해 아침마다 찹쌀 죽을 해드렸는데 그걸 얼마나 맛있게 드셨는지 몰라요. 남편보다 훨씬 많이 드시는 어머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효자, 효부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다. 가족의 해체와 불화가 흔한 이야기가 된 요즘,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20년 넘게 간호한 이월향씨는 5월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하늘이 내린 '효부'였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이 글은, 2008년 5월 7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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