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호 못하는 '보호법'

평화뉴스
  • 입력 2008.08.1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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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민사회 '기륭전자 노조' 지지 릴레이 단식
...대구노동청 '비정규직' 현황도 없어

이미영(28)씨.
이미영(28)씨.

"디지털 위성라디오와 네비게이션, 지상파 DMB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코스닥에 상장 됐을 당시, 열심히 일했다는 게 인정받아 회사로부터 선풍기 선물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300여명의 노동자 중 250여명은 비정규 파견직 노동자였습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이 어떠한지 그때서야 알게 됐습니다. 2005년 8월 200여명의 무차별적 계약해지 속에서 일방적으로 짤릴 수만은 없어 시작된 투쟁이 천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1천91일째를 맞은 18일 오전, 한나라당 대구시당 사무실 앞에서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이미영(28.여)씨는 이같이 말하며 울먹였다. 그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알려내는 싸움을 하면서 '세상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2005년 8월 24일 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사측의 집단해고에 맞서 첫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의 파업으로 구로공단 내 사업장에서 공공연히 벌어졌던 불법 파견 관행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측은 이듬해 12월 불법으로 파견업체 노동자들을 사용한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냈다. 이후 회사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불법 파견에 따른 벌금도 물고, 생산라인도 완전도급으로 바꿨다는 게 그 이유다.

노조는 “지난 6월 7일 사측이 3년 만에 처음으로 '기륭전자가 설립한 자회사에 1년 근무 후 정규직화'하겠다는 협상에 합의했지만 이를 일방적으로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기륭전자로의 직접 고용은 불가하다'는 입장이고 노조는 불법 파견 노동자들의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32명의 조합원 중 10명은 지난 6월 11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건강상의 이유로 8명이 단식을 중단했지만 김소연(39) 분회장과 유흥희(38) 조합원은 끝까지 버티다 결국 단식 67일째인 지난 16일 병원으로 옮겨졌다. 특히 유씨는 폐에 물이 차기 시작해 단식을 계속할 경우 호흡곤란을 일으켜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노조는 해고된 노동자의 전원 복직과 정규직화, 합의안 이행, 위로금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대구 비정규직 40만명"...대구노동청, '비정규직 현황'도 없어

차별을 없애고,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 1년을 넘겼지만 기륭전자 사태에서 알 수 있듯 비정규 노동자는 사실상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법이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같은 규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 시행 후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감소했지만 비정규직 중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용역직과 기륭전자와 같은 파견직, 시간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구노동청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태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실태조사가 강제성이 없고, 각 사업장이 노동청에 알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구노동청 남성욱 감독관은 "대구지역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현황은 우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300인 이상 사업장이나 비정규직을 특히 많이 고용하는 업체에 대한 조사는 가능하지만, 실태파악이 사업장에서 노동청에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영세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실상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지난 5월말에 내놓은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국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563만8천명(2008년 3월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만5천명(2.3%)이 줄었다. 또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5.2%로 지난해 3월에 비해 1.5%p 하락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정규직의 감소는 한시적 노동자의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실제 고용불안은 더 심해졌다. 비정규직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기간제 노동자는 32만명으로 줄었지만, 용역과 파견을 비롯한 '비전형노동자'와 시간제노동자는 각각 8만6천명과 6만9천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조사한 '대구지역 노동자 현황'(2007년 11월 기준)을 보면 대구지역 총 취업자 116만1천명 가운데 임금노동자는 78만2천명이다. 이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시직 27만명과 일용직 13만명을 포함해 모두 40만여명에 이른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여기에 사업자 등록을 한 자영업자를 포함해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합하면 지역 비정규직 노동자는 50만여명(전체 63%)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정규직법, 사실상 실효성 없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최성택 교육선전부장은 "비정규직보호법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금지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해준다는 법인데도 외주화 등으로 그들은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태와 현황을 파악해 실질적인 보호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종 노무사는 "비정규직법의 가장 큰 문제는 실효성이 사실상 없다"면서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이 필요한 직무와 직종 등에 '사용사유 제한'을 두는 형식의 실질적인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대구지역 공동대책위'(비정규 대구 공대위)는 18일 오전 한나라당 대구시당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륭전자 투쟁을 지지하는 릴레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비정규직 대구공대위'가 한나라당 대구시당 앞에서 '기륭전자' 노조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2008.8.18)
'비정규직 대구공대위'가 한나라당 대구시당 앞에서 '기륭전자' 노조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2008.8.18)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해 지역에서 릴레이 단식농성에 나서는 것은 전국적으로 보면 전북에 이어 대구가 두 번째다. 비정규 대구 공대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기륭전자측은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 했고,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이를 직접고용하거나 정규직화 하기는커녕 대량해고만 계속 했다"면서 "대구지역 시민단체는 노동자들에게 광우병인 비정규직을 없애는 길에 함께 하기 위해 기륭전자 투쟁에 함께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정규 대구 공대위는 18일 인권운동연대를 시작으로 매일 한나라당 대구시당 앞에서 24시간 릴레이 단식농성에 들어간다. 19일에는 공공노조 대구경북본부가, 20일 성서공단노조, 21일 민중행동, 22일 한국사회당 대구시당.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23일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24일 장애인지역공동체가 단식에 나선다. 다음 주에는 진보신당 대구시당(준)과 대구여성회 등이 나설 예정이다.

비정규 대구 공대위는 또 지역언론과 인터넷매체를 이용해 기륭전자 투쟁에 대한 홍보활동을 진행하고, 선전물을 제작해 시민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이미영씨는 "단식농성을 하던 조합원 두 분이 병원에 실려 갈 때 가장 힘들었다"면서 "조합원 중에 취업을 앞둔 두 딸이 있는 한 아주머니는 내 딸에게 비정규직의 삶을 물려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이 싸움에 함께해 주는 대구지역 시민단체와 정당 등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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