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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좌파"
[김윤상 칼럼]
"김진홍.서경석목사..기독교계 색깔론, 이해하기 어렵다"
2008년 08월 19일 (화) 20:20:24 평화뉴스 pnnews@pn.or.kr
   
최근 개신교계의 상당수 인사들이 좌파 혐오증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한 때 호감을 가졌던 김진홍 목사와 서경석 목사도 그렇고, 어떤 분은 촛불집회의 배후에 친북좌파가 있다고 색깔론을 펴면서 ‘사탄’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런데 기독교가 좌파를 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우선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필자는 특정 종교의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기독교계가 좌파의 ‘현실’을 못마땅하게 보는 것은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의 좌파 정권이 종교를 탄압했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계가 좌파의 ‘본질’을 혐오하고 스스로를 우파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쪽을 좌파, 미국에 가까워지려는 쪽을 우파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건 본질이 아니다. 평등을, 구체적으로는 복지와 분배를 지향하면 좌파로 분류하고 자유를, 구체적으로는 시장과 성장을 지향하면 우파로 분류하는 게 본질에 가깝다. [필자는 두 가치가 배타적이 아니라고 보고 양자를 통합하는 ‘평등한 자유’, ‘시장친화적 복지’, ‘정당한 분배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지만, 우리 사회의 다수는 단순 이분법을 채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지향은 어느 쪽일까? 종교와 무관한 사람도 아는 유명한 몇 구절을 마태복음에서 인용해 보자.

□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 39)
□ 오른 편 뺨을 치면 왼 편도 돌려대라. (마 5: 39)
□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마 18: 22)

또 예수는 스스로 대가 없는 사랑을 실천하였고 특히 세리, 창녀, 죄인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 먹고 마시기를 즐겨 하였다. 제자마저도 대부분 평범한 무학자였다.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는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이와 같은 예수의 언행은,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면서 냉정하게 대가를 주고받는 시장, 그런 시장을 통해 달성하려는 경제성장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예수는 단순한 좌파도 아니고 수준 높은 극좌파로 보인다. 그렇다면, 좌파를 혐오하는 일부 기독교계 인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김진홍 목사는 젊어서 빈민운동을 했고 토지공개념을 적극 지지했던 분이다. 그런 분이 갑자기(?)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맡더니 대선 과정에서부터 이명박 씨를 전폭 지지해 왔다. 뉴라이트 운동의 취지문을 보아도, 김 목사가 연재하는 “아침 묵상”에서 밝힌 이명박 씨 지지 이유를 보아도, 기독교의 지향과 무관하고 김 목사의 지난 인생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서경석 목사는 1980년대 후반, 경실련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해서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분이다. 당시 서 목사의 지향은, 비교적 온건하기는 했지만 기성질서에 비하면 분명히 좌파였다. 그래서 지금의 서 목사는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자신이 해명한 글을 보니, 좌파가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현실의 좌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현실의 우파로 ‘변절’할 이유가 될까?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미숙하고 과격한 좌파마저도 길 잃은 어린 양을 보듯 긍휼히 여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현실의 우파에도 별 사람, 별 일이 다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우파의 핵심인물인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락에서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수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것은 서 목사가 다시 좌파로 ‘변절’할 이유가 되지 않나?

손 안에 든 것을 내놓을 마음이 없는 기득권층에게는 나눔을 지향하는 좌파가 눈엣가시와 같다. 기득권층이 아닌 사람도 고정관념 때문에 새로운 질서를 수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도, 지킬 것이 많은 기득권층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보통사람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좌파를 혐오하면서 우파를 자처하는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혹시라도 자신도 모르게 예수를 다시 처형하는 데 가담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김윤상 칼럼 13>
김윤상(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법과대학 행정학과 )



(이 글은, 2008년 8월 11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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