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집 구하기도 너무 힘들어요"

평화뉴스
  • 입력 2008.09.0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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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김씨 "아파트 이미지 때문에 이사 오지 말라니.."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대학을 졸업하고 전동휠체어가 들어 갈 수 있는 집을 알아보기 위해 10곳이 넘는 부동산을 전전했습니다.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공간과 계단이면 경사로 설치가 가능한지 확인부터 했습니다.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저는 집주인과 계약하려고 했지만, 제가 장애여성이라고 밝히고 경사로를 설치하게 해달라고 하면 집주인들은 하나 같이 똑같은 대답이었습니다. 경사로 설치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제가 '장애인이라 월세를 놓지 못하겠다'고 말이죠"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대구에서 자립생활을 꿈꿔온 여성 중증장애인 김춘림(31)씨가 적은 글이다. 뇌병변 1급 장애가 있는 김씨가 어렵게 말을 이어나가자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연희 사무국장이 김씨의 글을 대신 읽어 끝을 맺었다.

김춘림씨와 이연희 사무국장(오른쪽)
김춘림씨와 이연희 사무국장(오른쪽)
김씨는 같은 장애를 가진 동생 2명과 함께 지난 달 28일 대구시 중구 A아파트로 이사를 준비하다 속상한 일을 당했다. 집 주인과 월세계약까지 마쳐 이달 1일부터 새로운 집에 살기로 돼 있었지만, A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주민들이 김씨 등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사 오는 것을 반대해 이사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이사를 도운 이연희 사무국장은 2일 "이사 준비 중이던 지난 8월 28일 관리위원회 측이 장애인 3명이 들어와서 사는 것은 아파트 이미지와 민원을 고려할 때 곤란하니 다른 곳으로 이사갈 것을 자립생활센터에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이연희 사무국장은 "이번 일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봤을 때 명백한 법 위반이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 16조(토지 및 건물의 매매.임대 등에 있어서의 차별금지)는 '토지 및 건물의 소유.관리자는 당해 토지 및 건물의 매매.임대.입주.사용 등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분리.배제.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 달 29일, 지역의 장애인단체들이 반발하자 A아파트 주민 16명으로 구성된 관리위원회 측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문제가 된다고 하니 그냥 들어와 살아라"고 통보해 와 이사는 할 수 있으나, 김씨는 이번 일로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아직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꼈다.


장애인 다니면 아파트 이미지 나빠진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6개월째를 맞았지만 장애인은 생활 곳곳에서 차별받고 있다.

이연희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관리사무소에 확인하고 8월 13일 집 주인과 계약했는데, 28일 관리위원회가 갑자기 경사로를 설치하면 장애인이 마음대로 돌아다녀 아파트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것을 요구해 왔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이번의 주거권 침해뿐 아니라 장애인들은 일상 속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관리위원회 측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관리사무소, "아파트 낡아 장애인 안전 우려가 있어서..." 해명
반면, A맨션 관리사무소 박모(32.여) 소장은 "딱히 장애인이라서 주민들이 반대한 것은 아니다"면서 "아파트도 공동체다 보니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아파트) 지은 지도 오래됐고 엘리베이터도 낡아 안전의 우려가 있다는 주민 의견이 나온 것을 가지고 그 분들이 오해했다"고 해명했다. A아파트는 1978년도에 지어져 재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과'와 관련해 박 소장은 "그들의 안전을 우려한 주민들의 의견이었기 때문에 사과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고, 이제 이사와 살기로 했으니 문제가 커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연희 사무국장은 "엘리베이터 안전의 우려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가지고 있는 거고, 만약 나중에 사고가 나면 그것은 장애인 분과 우리가 감내하면 된다"고 말했다.

복지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의 임시 거처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노동단체(2008.9.2. 대구시청 앞)
복지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의 임시 거처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노동단체(2008.9.2. 대구시청 앞)


한편, 이번 일과 관련해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소속 회원 30여명과 비정규직교수노조 경북대분회는 2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장애인 주거권 침해 관련 규탄 및 대구시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주거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임시주거가 가능한 체험형 자립홈을 구.군마다 설치할 것을 대구시에 촉구했다. 체험형 자립홈은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공간으로 대구지역에는 하나도 설치돼 있지 않다.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노금호 집행위원장은 "장애인들은 살만한 공간을 얻기도 어렵고, 구하더라도 주위의 차별적 시선 때문에 너무 힘들다"면서 "대구시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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