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는 고독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8.09.0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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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지역언론, 제발 서울 가서 출세한 분들 '대서특필' 좀 고쳤으면"

"하나의 모범 사례는 1,000개의 이론만큼 가치가 있다."

IMF 수석 부총재를 지낸 스탠리 피셔의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마이클 만델바움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결과를 보고 변화하지, 듣기만 해서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자신들과 동일한 누군가가 잘나가는 것을 보아야 설득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원리는 특히 모든 여건이 열악한 지방에서의 혁신을 이루는 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예컨대, 지역언론 발전만 해도 그렇다. 1,000개의 이론과 주장보다는 아주 작은 규모일망정 어떤 매체 하나가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물론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디 얼마나 잘 하나 두고보자”고 팔짱 끼고 구경하거나 아예 구경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선구자는 고독하다.” 고독하기만 한가? 모멸도 감수해야 한다. 그 모멸은 우리 모두가 저지르고 있는 ‘집단사기극’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지역발전을 위해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아니다. 그걸 온몸으로 느낀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아무리 취업난이 심각하다 해도 얼마든지 서울의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가지 몹쓸 생각을 하고 말았다. 자신의 역량을 지역을 위해 발휘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그걸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우려를 능가하는 격려일 것이다. 우려는 그 젊은이들이 앞으로 직면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대비하라는 뜻에서 필요하겠지만, 일단 고귀한 결정을 내린 이상 일이 잘 되게끔 격려와 더불어 말로나마 도움을 주는 일일 게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주변의 냉소적인 반응에서 고독과 더불어 모멸감마저 느끼고 있다. 지역에서 일하면 서울로 떠난 젊은이들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한 걸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고, 바로 이들이 그런 상처를 준다. 이들은 일단 서울가서 출세한 뒤 낙하산 타고 지방 고위직에 내려오는 게 정석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사례들을 많이 접한 나로서는 언제부턴가 ‘지방의 낙후’에 대해 ‘서울 탓’을 믿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그랬는지 몰라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젠 모든 원인마저 지방사람들의 마음과 몸으로 이전되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 당연한 귀결로 답은 지방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돼 있는데, 지방은 여전히 서울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힘 없는 지역언론일망정 지역언론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이제 제발 지역 출신으로 서울 가서 출세한 분들을 대서특필하는 버릇 좀 고치면 좋겠다. 좋은 뜻으로 그러는 것이겠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시라. 인재는 역시 서울로 가야 한다는 속설을 재확인해주고 강화해주는 효과를 한번쯤은 두렵게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언론인들이야말로 대부분 지역에서 성장하고 지역을 떠나지 않은 이들이 아닌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부디 지역의 작은 선구자들을 외면하지 마시라.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낙관하는 건 지역내 각 분야에 수많은 선구자들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1,000개의 이론을 능가하는 모범사례로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선구자는 남 탓을 하지 않으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열악하고 적대적인 환경마저 껴안고 사랑한다. 선구자들은 고독하고 모멸감을 느끼는 일이 많더라도 모든 걸 웃으면서 너그럽게 포용한다. 누구나 다 선구자 할 수 있으면, 거기에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남들이 알아주건 말건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지역의 선구자들께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선샤인뉴스 <강준만 칼럼>(2008.9.8)]강준만(전북대 교수. 선샤인뉴스 대표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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