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창동 낡은 공장, 이미지 반란은 성공했는가?

평화뉴스
  • 입력 2008.11.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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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아트인대구2008...'이미지의 반란' 展

▲  10월 31일 아트인대구2008 전시회가 옛 전매청 별관건물에서 '이미지의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  10월 31일 아트인대구2008 전시회가 옛 전매청 별관건물에서 '이미지의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지난 10월 31일 금요일 저녁 구 전매청 KT&G의 별관창고였던 책임웰딩건물에서는 대구시 주최로 아트인대구2008 <이미지의 반란>전이 열렸다. 대구의 현역작가들을 주축으로 전국의 유명작가들이 참가한 이 전시회는 작년 나름 성공적인 기획시도로 평가받은 바 있는 아트인대구2007의 뒤를 이어 열린 행사였다.

특히 문화관광부가 지난 23일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창작벨트 조성 2009년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한 5개사업중 하나로 이 곳 대구 구 KT&G 연초창이 선정되었고 이 전시회는 이 곳을 대구문화창작발전소로 조성하기 위한 첫 활용사례로 열리게 되었다. 특히 산업시설현장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오다 방치되어있던 유휴공간이자 근대역사적 의미를 가진 이 곳에서의 미술 전시회는 대구출신의 이인성이나 이쾌대 같은 한국미술사의 중요 화가들이 졸업했던 수창초등학교 바로 앞이어서 그 감회가 더 새롭게 다가왔다.

왜 이미지의 반란인가?

아트인대구2008의 운영위원장을 맡은 미술평론가 장미진은 전시 팸플릿 소개글에서 전시회의 제목이자 화두인 「이미지의 반란」에 대해 설명하면서 후기산업사회를 통과중인 현대미술의 동시대적 특징을 ‘형상성의 귀환과 반란’으로 들고 이것이 현재 다양한 이미지들의 출현과 기존문법에 대한 반란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반란의 형태로 출현중인 다양한 이미지들은 후기산업사회에서 겪는 삶의 리얼리티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법들과 조형어법의 등장에 기인한 것이며 이는 역사적 필연성을 가진 운동으로 보아야할 것이라 덧붙였다.

대구출신 영상설치작가 박현기의 [TV 모니터. 돌] 1978
대구출신 영상설치작가 박현기의 [TV 모니터. 돌] 1978

물론 나는 그녀의 견해에 동의한다. 탈근대주의 혹은 포스트모던이라 부르던 거대한 유행병적 문예사조가 휩쓸고 간 이후 당분간은 더 이상 그런 츠나미 식의 해일은 밀려오지 않을 것임을 국내외적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추세이다.

현재의 국제적 경제위기와 석유자원을 둘러싼 이라크전이라는 열악한(?)추세를 보아도 짐작이 가듯 당분간 국내외 미술계에서 국지적 형태의 유행과 교류는 일어나겠지만 전면적인 형태로 새로운 물결이 들이닥치기에는 아직 시대적 조건이나 환경이 덜 무르익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중국미술의 성장과 그 여파가 아마도 현재 국제미술계의 가장 큰 이슈거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잠재되어있던 새로운 시장의 발견과 성장 혹은 소통의 문제이지 그 자체가 새로운 사조의 출현을 예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어쨌거나 그런 점에서 이 전시회는 그런 거시적 환경 변화 속에 놓여있는 국내 미술계의 흐름, 즉 국제적 맥락 속에서 파악된 한국미술의 현재를, 특히 대구의 현대미술작가들과 그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점검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을 것이다.

전시회 유람 가이드

앞서 언급된 것처럼 「이미지의 반란」이라는 제하에 진행중인 이 전시회는 구 전매청 별관 건물의 1층과 2층 공간을 사용하여 모두 네 개의 주제별 섹션으로 나뉘어져 전시되고 있다. 각 섹션은 각각의 커미셔너들이 맡아 섹션별 기획주제를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작가들을 선정하여 전시기획의 효율성을 기했는데 이를 기획주제별로 살펴보면 제1섹션 텍스트성: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미술평론가 장미진), 제2섹션 이야기와 이미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안규철), 제3섹션 경계선상의 창발(단국대 교수 이원곤), 제4섹션 이미지 난장 (대구시립미술관 개관준비팀)등으로 짜여져 진행되었다.

섹션1(텍스트성:이미지와 텍스트 사이)과 섹션4(이미지 난장)가 진행된 전시장 2층 공간
섹션1(텍스트성:이미지와 텍스트 사이)과 섹션4(이미지 난장)가 진행된 전시장 2층 공간

 일단 각 섹션별로 보자면 1 섹션 ‘텍스트성: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 에서는 상당부분 대구에서 꾸준히 작업을 해왔던 중견작가들, 특히 나름 대구에서 알려진 작가들이 선정되어 작품을 선보였다. 이중 이명미의 설치작품 <Game For KT&G>과 노원희의 <청천하늘에 잔별도 많고>, 섬유미술가 차계남의 설치작품이 눈에 띄였다.

섹션1(텍스트성:이미지와 텍스트 사이)과 섹션4(이미지 난장)가 진행된 전시장 2층 공간
섹션1(텍스트성:이미지와 텍스트 사이)과 섹션4(이미지 난장)가 진행된 전시장 2층 공간

2섹션 ‘이야기와 이미지’에서는 오래된 사진 프린트에 색을 입힌 최민화의 <이십세기> 연작과 신화 속 형상들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삶의 일상 이미지 속에 끌어들인 권여현의 <비너스의 탄생>같은 작품들, 그리고 임현락의 설치작품 <나무들 서다>같은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3섹션 ‘경계선상의 창발’은 섹션기획주제에서도 드러나듯 주로 영상을 이용한 설치작품들이 눈에 띄였는데 대구 출신으로 작고한 영상설치작가 박현기의 과거작품들이 전시되었고 특히 거대한 푸른 눈동자들을 공중에 들어올린 하광석의 <Gaze Of The Blue Eyes>, 미니어쳐 건물을 소형 비디오카메라로 실시간으로 찍어 보여주는 정정주의 <명옥헌>, 극사실적 인상을 주던 한조영의 <검은 야경> 연작 등이 눈길을 끌었다.

2섹션과 3섹션은 주로 대구가 아닌 타지출신의 작가들이 선정되어 전시가 진행되었는데 4섹션 ‘이미지 난장’은 대구의 젊은 신진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별다른 섹션별 기획주제없이 이름에 걸맞는 난장으로 다채로운 자신들만의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이중 거친 표현주의적 터치가 돋보였던 김영삼의 작품들과 추종완의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형상작업인 <탈 Emergence> 연작, 아름다운 현대적(?) 유년시절을 연상시키던 정세용의 <별자리>, 여성특유의 유려한 감성이 느껴지던 이화전의 <My Pond In The Air>, 낯선 질감들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효과들을 작품으로 구현한 손파의 작업들이 인상적이었다.

화이트 큐브에서 탈출하기, 역사적 현재로 돌아오기

작가이자 미술평론가로 잘 알려진 브라이언 오도허티(Brian O'Doherty)는 저서인 <하얀 입방체 안에서 - 갤러리 공간의 이데올로기>(2006, 시공아트)에서 화이트 큐브, 즉 조롱의 의미에서 모던 갤러리를 통칭하는 공간에 대한 매우 의미심장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즉 현대의 갤러리 공간이 만드는 이데올로기적이고 환영적인 공간은 예술작품 자체를 사회적, 세속적 맥락으로부터 구분하거나 격리하고 시간과 공간의 틈입을 방해하며 그 속에 자리매겨지는 작품들을 불변의 것, 이상적인 것 혹은 제의적인 것으로 만드는 작용을 한다고 언급한다.

이는 작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관람자들에게서조차 현실적인 삶의 맥락을 제거하고 오로지 정신적이거나 초월적인 존재, 시각만을 가진 존재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화이트 큐브를 나서는 순간 개인 모두에게 정신적 소외와 박탈감으로 다가오고 그런 까닭에 예술품은 끝없이 구매되며 욕망의 대상으로 탈바꿈하고 대체우상의 지위를 손쉽게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과 지적들을 염두에 두었을 때 전시장소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고 이를 전시기획의도에 반영하는 문제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즉 중구 수창동이라는 지역적 고유명사, 근대문화유산으로 불릴만한 대구의 오래된 건물들과 명소들과 흔적들이 산재한 한 때의 그 곳(Once There)에서 현대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바로 이 곳(Now Here)의 만남 말이다. 그러한 사회역사적 맥락이나 의미들이 전시기획의 의도나 의의에 충분히 반영되었더라면 한층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전시장이 있는 관할 지차체인 중구에서 근대문화유산 골목길 답사같은 의미있는 문화교육 프로그램들을 시행하고 지원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더욱 그러한 것이다.

한 때 공장의 작업장이었던 공간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한 때 공장의 작업장이었던 공간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수창동 인근의 사창가를 비롯한 열악한 주거환경과 부족하고 낙후된 공공문화예술시설을 고려했을 때 해당지역 주민들과 보다 친근감있게 다가서서 예술문화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미술부대행사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번 전시와 같이 마련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가져본다. 도심을 재생하고 다시 재개발하는 것이 단순한 도시계획이나 행정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문화적 의미를 가진다고 봤을 때 이러한 일에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하는 것은 그 곳에서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동네주민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그들의 관심과 지지도 없이 그러한 공간이 문화창작의 산실로 백 번 태어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설치작가 정정주의 <명옥헌>
설치작가 정정주의 <명옥헌>

여러 정황과 진행배경을 살펴봤을 때, 물론 이 정도 규모의 대형전시회를, 그것도 미술작품 전용공간이 아닌 낡은 공장 건물의 버려진 작업공간에서 빡빡한 준비기간 안에 치러내는 것은 자랑할만한 대단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평가해보았을 때도 전시회의 내용이나 기획의 충실성 면에서 남부끄럽지 않은 대형 미술 전시회였다.

 

다만, 앞서 지적한 바처럼 어쩌면 가장 큰 화젯거리이자 관심의 초점이 되어있던 '장소성'의 문제가 현대미술전시회라는 내용의 틀에 밀려서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은 두고 두고 아쉬워해야할 점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 곳 대구가 현대미술의 메카로 여겨질만큼 왕성한 미술인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실천활동이나 생활예술운동의 장이 펼쳐지지 못하고 관습적으로 화이트 큐브만을 고집하는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한 편으로는 기획의 시도 차원에서 대단한 진일보를 거둔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기획의 실제 차원에서 뒷걸음친 것이다. 그러니 과연 이미지들은 반란에 성공했는가? 아님 그저 지나는 길에 버려진 공장을 견학온 것인가? 판단은 독자들이 전시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아주 색다르다는 것만큼은 자신있게 보장한다. 전시는 11월 13일까지 계속된다.  

 

 

 

[평화뉴스 문화현장 5]  글.사진 최창윤(예술마당 '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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